[이태희의 심호흡] 최시원의 벅시 사랑은 ‘인간혐오시대’의 비극
이태희 편집국장 | 기사작성 : 2017-10-25 12:10   (기사수정: 2017-10-2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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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

‘반려(伴侶)’는 인간에게만 붙이는 단어, 반려견(伴侶犬) 시대는 ‘인간 짝’ 대신 ‘개 짝’을 선택?

원래 ‘반려(伴侶)’는 인간에게만 붙이는 단어였다. 국어사전에 ‘반려자(伴侶者)’는 짝이 되는 사람이라고 풀이돼있다. 남편 혹은 부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함께 돕고 위로하면서 험한 삶의 여정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 반려자이다.

우리나라에서 ‘반려(伴侶)’라는 단어는 그동안 독립적으로 쓰이지 않았다. 독립적으로 쓰이는 단어인 ‘반려(返戾)’는 돌려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반려(伴侶)’가 처음으로 ‘개’ 앞에 들어섰다. 그게 반려견(伴侶犬)이다. 평생을 남편이나 부인처럼 함께 살아가는 개라는 의미이다. 한국인들이 개에게 ‘가장 소중한 인간’, 즉 배우자의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때문에 반려견이라는 단어 자체는 인간 혐오를 내포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인간, 혹은 이제 염증을 느끼는 남편이나 부인 대신에 개를 삶의 동반자로 삼겠다는 선언이다. 

반려견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개 사랑’의 발로가 아니라 ‘인간 혐오’의 산물이라는 시각은 애견인들의 반발을 부를 것이다. 하지만 정황증거는 뚜렷하다.


한국의 청년과 노인들 ‘인간 짝’에 등 돌리고 ‘개 짝’에 사랑 퍼부어

30대 남성의 절반은 미혼. 황혼 이혼과 졸혼의 급증, 최악의 저출산 VS. 반려견 1000만

한국사회의 가족해체와 반려견의 등장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30대 한국남성의 미혼율은 45% 수준이다. 30대 10명 중 5명은 반려자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젊은이들이 인간 짝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만 그런게 아니다. 중·장년과 노년들도 인간 대신 개를 선택하고 있다. 급격히 증가하는 황혼 이혼, 졸혼 등은 나이든 세대들의 새로운 삶의 풍속도를 상징하는 신조어들이다. 

반면에 개를 키우는 사람은 1000만명을 넘겼다고 한다. 한국인구는 5170여만명이다. 1,2인 가구가 절반에 육박한다는 암담한 사정을 감안한다 해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가구에서 개를 키운다는 소리이다.

아마도 많은 젊은이, 중장년, 노인들이 ‘인간 짝’에 등을 돌리고 ‘개 짝’에 사랑을 퍼붓고 있는 셈이다.

절망적인 한국의 저출산도 ‘개 열풍’과 무관치 않다. 세계 최저인 한국의 출산율은 ‘개’가 있기에 가능하다. 결혼을 하고도 ‘인간 아이’ 대신에 ‘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톱 가수 이효리가 남편 이상순과 영위하는 목가적인 삶을 스케치한 TV 프로를 보면 경악할 수 밖에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효리는 결혼 후 출산하지 않고 유기견과 유기묘 십 수 마리를 키우면서 살고 있었다.

이는 이효리의 미담이 됐다. 버려진 동물들을 사랑으로 거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버려진 개보다 버려진 인간 아이가 한국사회의 더 심각한 문제이다. 왜 이효리는 버려진 아이들이 아니라 버려진 동물을 입양했을까? 버려진 존재에 대한 깊은 사랑을 실천하고 싶었다면 개보다는 아이가 더 눈에 밟혀야 하는 것 아닌가? 인간이 싫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 물고 다닌 벅시 방치, ‘인간’보다 ‘개’의 가치가 더 소중한 ‘가치 전도’ 현상

급진적 자유주의 철학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상식적 가치관 회복해야  

더 인정하기 싫은 진실은 ‘개의 가치’이다. 우리 시대에는 ‘개’가 ‘사람’보다 더 경제적 가치가 클 수도 있다. 사망한 한일관 공동대표 김 모씨(53)를 물었던 최시원의 프랜치 불독 벅시는 ‘반려견’이자 ‘비지니스 파트너’였다. 벅시는 최시원이 벌이고 있는 ‘캐릭터 사업’의 주인공이다. 부채, 옷, 액세서리 등에 벅시의 ‘무서운 얼굴’이 빠짐없이 박혀있다.

돈과 사랑을 함께 주는 존재가 벅시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벅시는 안하무인이었다. 최시원과 같은 슈퍼주이어 멤버인 이특도 벅시에게 물린 후 ‘개가 아니라 돼지’라는 글을 올렸다. 최시원 본인도 군복무 중 휴가나왔다가 벅시에게 코를 물린 적이 있다고 한다. 아파트 경비원도 수차례 공격당했다.

그러나 벅시에게 제재가 가해진 적은 없다. 집안에 벅시 같은 사고뭉치 ‘인간 가족’이 있었다면 부모나 형제들도 고개를 돌리는 ‘애물단지’가 됐을 것이다. ‘개 가족’인 벅시는 이점에서 완벽한 면책특권을 누렸다.

사망한 한일관 대표가 사망하기 사흘 전에 최시원 가족들은 벅시의 생일 파티를 해주었다. 그리고 SNS에 자랑스럽게 사진을 올렸다. ‘인간 자식’이 다른 사람을 때리는 사고를 치면 근신을 요구하는 게 상식이다. ‘개 짝’은 사람을 물어도 칭찬받는 것인가?   

한일관 공동대표 사망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최시원이라는 유명 배우 개인의 문제만도 아니다. 한국인이 겪고 있는 가치 혼란의 단면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한국인은 지금 ‘인간 짝’과 ‘개 짝’중 누가 더 소중한지 헷갈리고 있다. 모든 존재와 가치를 대등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급진적 자유주의’의 폐해이다.

사람을 물고 다녔던 벅시를 방치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쏟았던 최시원과 그의 가족은 ‘가치의 전도’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개 보다는 사람이 훨씬 소중한 존재라는 가치판단만 내렸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선해 보이는 최시원은 벅시 사랑으로 인생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인간혐오시대의 비극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자리를 개가 대신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다. 치료해서 상식적 가치관을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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