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심호흡] 김현미 장관이 명심할 보유세 인상 원칙
이태희 편집국장 | 기사작성 : 2017-10-1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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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

취임식 때 ‘다주택 투기세력과의 전쟁’ 예고했던 김 장관,8.2대책서 ‘서민 돈줄’도 조여

강남 아파트 10채 가진 부유층 투기세력은 웃고, 빈 손의 서민들은 울상

이상한 일이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6월 취임 당시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다주택자와의 전쟁’을 선포해놓고 정작 8.2부동산 대책에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규제 방안을 내놓았다. 실효성보다는 부작용이 커지는 미래를 향해 돌진한 것이다.

환자가 병에 걸리면 ‘환부’만 치료해야 한다. 신체 전체에 투약을 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과열의 핵심 원인인 다주택자의 투기 행보에만 단호하게 대처하면 됐는데, 전 국민의 주택 구입을 어렵게 하면 부동산 시장은 약의 남용에 따른 질병에 걸리기 마련이다. 

김장관은 이런 원리를 취임 당시에는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취임식에서 “주택시장이 과열됐던 올 5월에 무주택자의 주택구입은 감소했고 3주택 이상 보유자, 특히 5주택 이상 보유자들의 주택거래가 급증했다”고 실증적인 수치를 들었다. 5주택자 이상 보유자들의 주택 구입은 강남 58%, 송파 89%, 강동 70% 등의 가파른 증가율을 보였다는 설명이었다.

김 장관은 “강남 4구에서 주택거래량이 두드러지게 증가한 세대는 29세 이하였다”는 통계도 제시했다. 일부 부유층이 자녀를 동원해 아파트 투기에 나서고 있다는 매서운 비판을 가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다주택 투기세력과의 전쟁’을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뒤이어 선보인 8.2대책은 역대 정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했다. 투기와는 무관한 서민의 내 집 마련까지 싸잡아 규제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는 일부 담겼지만 대단히 취약했다. 

8.2대책의 핵심은 돈줄 조이기였다. 투기과열지구 및 투기지역을 기준으로 볼 때, LTV(주택담보대출비율)과 DTI(총부채상환비율)을 40%로 대폭 낮췄다. 물론 무주택 서민은 50%로 높여주고 다주택자는 30%로 낮추는 등 차등적 정책을 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에 봉착한 것은 부유한 투기세력이 아니라 일반 서민이었다. LTV 40%라면 5억원 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최대 2억원 대출이 가능하다는 소리이다. 서민들을 상대로 이런 규제를 펴는 선진국은 없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인 모기지(Mortgage)도 주택 매매가의 90% 정도까지 허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야 빈 손의 서민들이 집을 사서 원리금을 갚아 나갈 수 있다.

반면에 김 장관이 지적한대로 아들, 딸까지 동원해 강남의 아파트를 사들이는 부유한 다주택 투기세력이 보면 웃음이 나올 지경일 것 같다. 30%만 대출받고 나머지는 내 돈으로 투자 혹은 투기를 하면 된다. 강남 일대에만 아파트를 10채 이상 가진 일부 부유층은 “서민들만 불쌍하게 됐다”고 비웃었다고 한다.


‘환부’ 아닌 ‘몸 전체’에 투약하면 부작용 크듯이, 서민 주택 구입 억제는 시장 왜곡시켜

국토부 및 산하기관 1급 이상 공무원의 절반 이상이 다주택자라는 사실의 의미 주목해야

결국 8.2대책은 장기적으로 실효성보다는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환부가 아닌 몸 전체에 투약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왜 이처럼 취임사 내용과 다른 정책을 폈을까?  물론 그 원인에 대한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이 약했다. 그 물증의 일부가 지난 10일 나왔다.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1급 이상 고위 공직자들의 42%가 다주택자라는 수치가 공개됐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의 내용이다. 2주택자는 195명이고 3주택자 47명, 4주택자 17명, 5주택 이상 16명으로 나타났다.

가장 염려했던 상상도 현실로 확인됐다. 부동산 정책 주무부처인 국토부와 산하기관 1급 이상의 50% 이상이 다주택자였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합리적 존재’이다. 국토부 고위 공무원의 50% 이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주택자에 집중된 정책은 바로 자신을 겨냥한 칼날이다.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멍청이는 지구상에 없는 법이다. 

부동산 시장 과열 억제와 서민의 내집 마련이라는 ‘공익’보다는 다주택자의 이익보호라는 ‘사익’이 50% 이상인 그들에게는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다주택자의 사익을 보호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전 국민 규제’의 틀 속에서 ‘다주택자 규제’를 추가하는 방법이다. 이 프레임의 장점은 ‘전 국민 규제’의 부작용을 강조함으로써 ‘다주택자 규제’의 강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김 장관, 고위 공무원들의 보유세 관련 보고서에서 옥석을 가려내야

보유세 인상도 1주택자 놔두고 다주택자에게만 적용하면 실효성 커  

문재인 정부가 검토 중인 보유세 인상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보유세 인상은 집 한 채만 달랑 가진 서민이나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에게 경제적 충격파를 안길 것이라는 ‘역풍론’이 정부 안팎에서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반론은 8.2대책과 유사한 또 다른 물타기이다. 1주택자 보유세 인상의 부작용을 빌미로 삼아 보유세 인상이라는 중대 정책 자체를 폐기처분하려는 수순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1주택자는 ‘환부’가 아니다. 환부는 3주택 이상 소유자들이다. 그들에게만 보유세 인상과 같은 강력한 처방전을 쓰면 된다.

김 장관이 취임식 때 강조했던 5주택 이상 보유자 및 29세 이하 다주택자 등을 핀셋으로 집어내 강력한 보유세 인상카드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역풍’이 우려하듯이 집 한 채 달랑 가진 서민이 눈물 흘리는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양도세 인상은 효과가 없다. 여유자금이 많은 다주택자들은 정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또 이미 집값은 많이 올라 양도세가 올라가도 투자이익은 충분히 거둬들 일 수 있다. 보유세 인상만이 그들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해, 투기 목적으로 모아둔 강남 4구의 아파트를 매도하게끔 압박할 수 있다.

주식시장은 소수의 작전세력이 교란시킨다. 마찬가지로 부동산 시장도 한 줌의 투기세력에 의해 왜곡돼 왔다. 투기세력만 잡으면 ‘수요 공급의 법칙’에 의해서 정상화되기 마련이다.  

필자가 총리실을 취재하던 시절에 고위 공무원 K씨는 이렇게 고백했다. “역대 총리 중에서 솔직히 김종필, 이회창씨 빼고는 얼굴마담과 같았다. 김종필 총리는 워낙 국정에 밝았고, 이회창 총리는 깐깐하고 실무에 능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은 솔직히 국정 돌아가는 원리를 파악하기도 전에 사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 장관은 보유세 인상 문제를 결정하면서 K씨처럼 유능한 한국의 관료들을 경계해야 한다.


[이태희 편집국장 youyen2000@news2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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