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심호흡] ‘남한산성’이 알려준 문재인 정부의 ‘논쟁 실종’
이태희 편집국장 | 기사작성 : 2017-10-1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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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인조 조정에서도 벌어졌던 ‘김상헌-최명길’ 간의 격렬한 논쟁

지지율 높은 문재인 정부, 북핵 위기와 미국의 통상압력 속에서 ‘침묵’만 깊어

박근혜 식 받아 적기 폐지하려던 문 대통령, 각료와 수석들의 논쟁 부재 알고 있나?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

약간은 지루하고 지적인 영화 ‘남한산성’을 두고 정치권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북핵위기에 처한 현재의 한반도 상황이 병자호란 당시의 조선의 운명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아전인수격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소재로 삼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북 강경론’을 고수하는 야권을 ‘척화파’의 어리석음으로 빗대는 모습이다. 반면에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군주인 인조의 무능함이 국가적 굴욕과 민초의 비극을 초래했다는 논리를 구사한다.

하지만 남한산성이 담아낸 ‘병자호란’과 ‘북핵위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요즘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두 사건을 유사하게 취급하는 것은 둔감한 시각이다. 국제정치를 좌우하는 ‘힘관계’의 측면에서 봐도 그렇다. 병자호란은 절대강자인 청과 절대 약자인 조선간의 다툼이었다. 이에 비해 북핵 위기는 팽팽한 ‘세력균형’ 속에서 진행 중이다.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운 미국과 중국이 배후 실력자로 개입돼 있는 국제관계이다.

역사가의 눈으로 그 해법을 따져 봐도 마찬가지이다. 병자호란의 해법은 간결하다. 인조와 그의 신하들은 절대강자인 청의 무력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였다. 과거의 형님나라 명을 미리 버리고 청과 외교 교섭을 통해 국익을 보장받는 ‘사대외교’를 구축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 최선을 실천하지 못해 추후에 굴욕과 비참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북핵위기의 해법은 미궁과도 같다. 강대강으로 충돌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그리고 VIP관람석에선 즐기는 표정을 짓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간의 관계 자체가 미묘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 본토 공격을 협박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선 미국의 인정을 갈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체제 파괴’를 공언하면서 물밑 협상의 끈을 잡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북핵 개발을 방관하는 듯, 경제제재에 동참하는 듯 아리송한 처신으로 일관하는 중이다.

이처럼 병자호란과 북핵위기라는 두 개의 국제정치적 사건은 차이가 크지만, 문재인 정부가 배울 점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남한산성으로 쫓겨간 조선의 대신들이 인조(박해일 분) 앞에서 해법을 도출하기 위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에서 주화파 최명길(이병헌 분)과 척화파 김상헌(김윤석 분)은 청의 대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를 두고 정면충돌을 되풀이한다. 소설가 김훈은 탁월한 상상력으로 양인의 논리를 세밀하게 풀어낸다.

김상헌은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주장한다. 육신의 삶을 버려서라도 대의명분을 지켜내는 것이 진정한 생존이라는 논법이다. 반면에 최명길은 “죽음 속에서는 삶을 찾을 수 없다”고 호소한다. 사대외교라는 진부함에 찌든 조선의 조정에서 최명길은 명분을 주장하진 못한다.  ‘실리’의 소중함을 역설할 뿐이다.

이미 해법은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논쟁을 벌인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이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인조의 조정만 훨씬 못하다. 북핵 위기, 미국의 통상압박 등 정치경제적 위협이 쏟아져 나오는데 조용하다.

문 대통령이 집권 초기 박근혜 정부 당시 각료들의 ‘받아 적기’ 폐지를 선언했다.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엉뚱한 생각’이라도 제안하라는 주문이었다. 이후 엉뚱한 아이디어는 몇 건 나온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국익이 걸린 안보 및 통상 문제를 두고 국무회의나 수석회의 때 논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은 없다.

몰락한 인조의 조정에도 버티고 있었던 김상헌이나 최명길과 같은 인물이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는 문재인 정부에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북핵 개발을 방관하고 사드배치를 빌미로 한국을 겁박하는 중국의 정책을 외교 현안으로 올릴 법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각료와 수석들은 말이 없다.

백운규 산자부 장관이 현대자동차, LG화학, 롯데그룹 등이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겪는 피해를 강조하며 ‘대중 강경론’을 제기하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중외교의 민감함을 설명하며 ‘신중론’으로 맞받아치는 광경은 기대하기 어렵다.

송영무 국방장관이 북핵위기 해결을 위해 강경화 장관과 견해 차를 보였다는 뉴스도 없다.

한미간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합의 과정에서 강경화 장관이나 백운규 장관이 어떤 문제를 지적했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한미 FTA 재협상은 우리의 자동차 및 철강업계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지만, 책임져야할 각료들은 “걱정말라”며 백치같은 미소를 짓는다.

이처럼 위기국면에서 ‘논쟁’도 못하는 문재인 정부의 각료와 수석 비서관들은 자신의 견해없이 대세에 순응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백팩을 메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젊어 보이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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