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육아휴직자 상처주는 고용노동부의 철없는 ‘비밀보장’ 타령
권하영 기자 | 기사작성 : 2017-09-2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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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권하영 기자) 
 
‘육아휴직 갈등’ 신고하라는 고용노동부, ‘비밀보장’ 약속 지켜질 수 있나?
 
대부분 회사에선 ‘사내 눈치법’이 더 강력한 규범
 
“직장에서 예비 엄마, 아빠들에게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신 ‘사내눈치법’이 적용됩니다.”
 
모 중소기업에 다니는 4년차 직장인 A씨의 전언은 대다수 직장인들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육아휴직으로 1년을 남김없이 채우는 엄마는 회사에 대한 배려와 동료의식이 없는 직원이 되고, 하물며 육아휴직을 신청해보려는 아빠는 팔불출이 된다. 주머니 속 못처럼 ‘튀는 직원’을 누가 선뜻 자처할까. A씨 역시 회사와의 마찰로 육아휴직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전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겠다는 듯 ‘비밀을 보장할 테니 문제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신고해달라’고 단단히 호소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7일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거부하는 등의 남녀고용평등 위반 사례에 대해 한 달 간 ‘집중 신고 기간’을 가진다며 이 같이 밝혔다.
 
고용노동부 측은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해 신고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신고자 신분이 소속 사업장에 알려지지 않도록 근로감독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내 육아휴직 신청자 적은 중소기업, 사측이 ‘신고자’ 파악 쉬워
 
그러나 과연 고용노동부의 이 같은 방침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까. 정작 출산과 육아를 앞둔 노동자들은 허탈한 반응을 금치 못하고 있다.
 
‘육아휴직 갈등’은 규모가 작고 열악한 중소기업일수록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대기업의 육아휴직 도입률은 93%에 달했지만 10인 이상 30인 미만 중소기업의 도입률은 53%에 불과했다. 임산부 보호규정을 위반한 중소기업도 10곳 중 8곳에 이른다.
 
결국 소규모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일수록 출산·육아를 이유로 한 불이익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크고, 더불어 피해사실을 신고한다고 하더라도 ‘신분 노출’이 안 일어날 리가 없다. 열 명 남짓한 좁은 회사 바닥에서 육아휴직 신청자는 금방 추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가 ‘비밀 보장’을 자신하면서 무책임하게 신고를 독려하는 것은 정작 정부 부처가 직장 내 노동자들의 현실을 면면히 파악하지 못하고 ‘탁상공론’만 펼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더구나 법의 사각지대로 인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먼저 나서서 신고하라’고 하는 것은 고용노동부의 할 일을 무작정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책임 전가나 다름없다. 회사와 노동자의 ‘권력 불균형’이라는 근본 문제 앞에서 ‘한 달짜리’ 신고 기간은 무의미하기만 하다.
 
 
고용노동부는 무책임한 ‘신고 독려’보다 ‘상시 근로감독’ 실시로 사각지대 없애야
 
현재로서는 일손 부족을 이유로 고용노동부가 외면하고 있는 ‘상시 근로감독 체제’ 마련이 시급하다. 고용노동부는 그나마 올해 출산·육아휴직 관련 위반 사례가 많은 IT·출판업종 500개사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으나, 상반기가 지난 현재까지 겨우 98개사 점검에 그쳤다. 나머지 402개사에 대한 조사가 하반기 내 끝날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만 하다.
 
정부는 현장 근로감독을 늘리고 상시 감시 체제를 구축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신고에 기대는 것에 그치지 말고 정부 스스로 실질적인 감시와 집행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저출산 공포’를 부르짖으며 가임 부부를 재촉하고 있는 정부라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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