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심호흡] 김명수 후보의 위태로운 ‘동성애’발언과 ‘캐리 프리진’ 사건
이태희 편집국장 | 기사작성 : 2017-09-15 17:59   (기사수정: 2017-09-1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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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

‘동성애 차별 금지’와 ‘동성애 반대 권리’ 모두 인정한다는 김 후보자 해명은 모순의 극치

동성애 찬성과 반대는 한 시공간 내 공존 불가능, 숙명적으로 양자 선택적 가치

'진보 정치성향'으로 인해 논쟁의 중심에 섰던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닌 진짜 문제점은 ‘동성애’에 대한 관점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다른 이념적 사안은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의 발목잡기에 불과하다.

그만큼 동성애에 대한 김 후보자의 견해는 위태롭다.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다수자의 권리박탈을 초래하는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진실을 간과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자신이 ‘동성애 옹호론자’라는 비판에 대해 15일 적극 해명했다. 대법원을 통해 발표한 입장자료를 통해 “지금까지 동성애와 관련된 재판 혹은 판결에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동성애를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해서도 안 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도 하나의 권리로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자신이 ‘동성애 차별 금지’와 ‘동성애 반대 권리’를 모두 인정하므로 ‘중립적’성향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김 후보자의 이런 해명은 모순 그 자체이다. ‘동성애 차별 금지’와 ‘동성애 반대 권리’란 물과 불의 관계이다. 한 시공간 내에서 공존이 불가능하다. 불에 물을 쏟으면 불길이 소멸되고, 물을 말려야 불이 타오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동성애 차별 금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동성애 반대’ 권리는 소멸되기 마련이다. ‘동성애 반대 권리’의 인정은 ‘동성애 차별’을 인정하는 구도 속에서만 가능하다.

동성애와 이성애라는 가치는 숙명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 한 사회가 치열한 가치논쟁을 통해서 양자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김 후보자처럼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식의 무책임한 보신주의는 본질을 덮으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동성결혼 반대’ 밝히 미스 캘리포니아 프리진, 동성결혼 찬성파에 의해 왕관 박탈당해

동성애 찬성파 프리진의 누드 사진 찾아내, 극보수 트럼프도 못버티고 ‘자격박탈’ 선언

필자가 내세운 ‘양자선택 논리’는 ‘주장’이 아니라 ‘입증된 사실’이다. 2009년 미스캘리포니아 출신 캐리 프리진 사건은 단적인 증거이다. 이 사건은 동성애 인정이 이성애자에 대한 또 다른 차별로 둔갑하는 숙명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캐리 프리진은 미스 USA 최종결선에서 동성결혼 찬성론자인 심사위원인 페레즈 힐튼의 질문에 ‘동성애 반대’ 소신을 밝혔으나, 결국 그게 화근이 돼 미인대회 우승자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유명 방송 블로거인 힐튼은 무대에 나온 프리진에게 동성결혼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에 프리진은 “결혼은 남녀 사이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프리진은 당초 유력한 USA 진(1위) 후보로 꼽혔으나, 2등에 그쳤다. ‘동성애 반대’ 발언이 원인이었다는 게 당시 미언론들의 분석이었다.

그러나 ‘역차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성애 찬성파들은 아예 ‘미스캘리포니아 자격’ 박탈을 요구했다. 프리진은 ‘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힌 것이다.

대회 주최 측은 일단 버텼다. 그러나 동성애 찬성파들은 ‘관용’하지 않았다. 프리진 흠집내기 작전에 돌입했다. 마침내 프리진이 10대 때 찍은 ‘반누드 사진들’이 발견돼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포됐다. 프리진은 “모델 활동의 일환으로 촬영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동성애 찬성파들의 분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미스캘리포니아 대회 주최 측은 프리진의 자격박탈을 발표했다. 연쇄적으로 미스 USA 2등 자격도 원인무효가 됐다. 이유는 군색했다. “프리진이 누드사진 촬영사실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게 주최 측과의 계약위반”이라는 설명이었다.

놀랍게도 미스 캘리포니아대회 조직위의 소유주는 현재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였다. 물론 트럼프는 프리진을 감싸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과격한 보수주의자인 트럼프가 밀렸을 정도이니 당시 동성애 찬성파의 프리진에 대한 ‘분노’의 크기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차이에 대한 관용’을 표방한 군대내 동성애 허용은, 이성애 사병들을 위험에 노출시켜

생물학적 본성을 거스르는 가치에 대한 관용, 인류의 또 다른 ‘오만함’에 불과  

이처럼 동성애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은 양립 불가능한 가치이다. 한 국가 혹은 공동체가 동성애에 대한 하나의 입장을 정립하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심각하다. 예컨대 동성애 찬성론자로 알려진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청 앞에 동성애자 집회를 수시로 허용해, 반대론자들의 미움을 사고 있다. 이런 판국에 대법원장 후보자가 동성애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도 없이 눈치를 살피면서 ‘소수자의 권리’ 운운하는 것은 기만적 발언이다.

필자는 동성애 반대론자이다. 동성애 찬성은 ‘가치의 대혼란’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찬성론자들은 말한다. “너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차이를 관용하지 못한 탓”이라고 꾸짖는다.

하지만 동성애 찬성파의 ‘무해한 차이에 대한 관용론’은 허구이다. 이성애자 입장에서 동성애는 위협이다. 간단한 사례만으로도 ‘동성애 위험론’은 입증된다. 인간은 이성에게 자신의 나신을 무방비 상태에서 노출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혐오한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운 몸매를 소유한 한 젊은 여성이 대중목욕탕에 갔을 때, 중년의 여성 동성애자가 그의 몸매를 즐기는 상황이 과연 ‘무해한 상황’인가?  중년의 남성 이성애자가 여탕에 들어가 젊은 여성의 몸매를 감상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 중년의 남성 이성애자와 중년의 여성 동성애자 모두 그 젊은 여성의 몸을 성적인 대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동성애 혹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할 경우 이성애자들이 겪을 정신적 육체적 피해는 심각하다. 최근 논란이 됐던 군대 내 동성애 허용도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이 어설프게 떠들 듯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차이에 대한 관용’은 자신에 대한 육체적 공격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

필자의 오래된 친구가 30년 전 군대 일병 시절에 동성애자에게 성폭행에 가까운 피해를 겪은 적 있다. 100kg에 달하는 거구의 동성애자인 선임병은 취침중인 필자의 친구를 덮치고 협박하면서 성관계를 요구했다.

친구는 필사적으로 반항해 성폭행의 위기를 모면했지만 다음날부터 그 선임병에게 모진 구타를 당해야 했다. 휴가 나온 친구는 그 선임병에게 맞아 시퍼렇게 멍이 든 가슴을 보여주기도 했다.

동성애가 위험한 것은 이처럼 ‘이성간의 잠자리’를 분리한다는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는 성폭행 및 성추행을 방지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서 출발한다. 결코 ‘차이’를 관용하지 못하는 편협함의 산물이 아니다.


군대에서 동성애를 합법화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동성애자인 사병들은 명찰에 ‘표식’을 하고 숙소도 따로 마련해줘야 한다. 아니면 다수의 이성애자인 사병들이 ‘무지의 상태’ 속에서 창졸지간에 피해자가 될 위험성이 상존한다.

‘차이’에 대한 관용의 정신은 인류의 문명을 풍요롭게 일궈온 원동력이었다. ‘소수자의 권리’ 증진은 인본주의를 더 깊고 품위 있게 가꾸어왔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다. 생물학적 본성을 거스르는 가치마저도 관용한다면, 인류는 그 ‘오만함’에 대한 징벌로 ‘가치 아노미’라는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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