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JOB기획: 멀어진 아메리칸 드림]② EB3 비숙련,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
정진용 기자 | 기사작성 : 2017-08-2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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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3 비숙련 이민자들이 많이 일하는 닭 가공공장. 육가공공장의 실태를 조사한 빈곤전문 NOG기구인 옥스팜 아메리카에 따르면 이곳 근로자들은 분당 35~40마리의 닭을 처리하고 있다. [출처=샤롯 옵저버]

미국 이민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현재 미국에 거주중인 한국인 이민자 수는 106만명. 2015년 기준 전체 미국이민자 수 4300만명 가운데 2.4%를 차지한다. 2000년 이전까지 급증했던 한국인의 미국 이민건수는 2010년을 고비로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미국은 여전히 한국인의 이민선호 1순위 국가다. 하지만 올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정부가 출범함과 동시에 이민문호를 대폭 조이면서 미국으로 향하는 길은 더 멀어지고 있다. 더 높아진 미국이민 문턱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점들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정진용 기자)


비자승인 계속 지연될 경우 수백억 원대 소송 사태 불러올 듯

비자문제 책임소재 애매해 이주업체-신청자간 갈등 격화 예상



“비숙련취업이민(EB3)은 사실상 시한폭탄입니다.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터질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수천 명이 관련돼 있는데도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비숙련취업이민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이모(35)씨는 답답함부터 호소했다. 이씨가 EB3 비숙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5년말.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낄 시점에서 미국이민을 생각하게 됐고, 서울 강남의 한 이주공사를 찾아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EB3 비숙련 이민상품을 추천 받았다.

영어실력을 따지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짧은 기간 내에 영주권을 딸 수 있다는 제안에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이름도 낯선 주에 가야 하는 것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닭공장 일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1~2년만 열심히 일하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계약했다.

노동허가가 나오고 I-140까지는 순탄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주한미국대사관 영사인터뷰가 문제였다. 영사는 인터뷰를 마치자 마자 블루레터를 쥐어줬다. 비자승인보류에 해당하는 AP(행정심사)였다. AP는 서류미비 혹은 영사가 비자신청 건에 대해서 의심이 들어 좀더 조사를 하겠다는 뜻이다.

이 씨는 “금방 비자수속이 재개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라면서 “더욱 답답한 것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답을 주는 곳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이민관련 카페에 안타까운 사연들 = 이 씨의 케이스는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미국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미준모 카페(café.naver.com/gototheusa)에는 비숙련 EB3에 관한 글들이 지난해부터 집중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대부분 비자승인보류에 관한 내용들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승인보류 처분을 받고 기약 없는 대기상태에 놓여 있는 것일까? 미 국무부나 이민국 사이트를 들어가 봐도 비자승인보류에 관한 통계는 나오고 있지 않다.

다만 추정할 근거는 있다. 신청만 하면 별 문제없이 비자가 나오던 2015년의 경우 2058명의 한국인이 비숙련취업이민 비자를 받은 것을 감안하면, 최소 2000명 이상이 연관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I-140를 받고도 승인보류를 우려해서 비자인터뷰를 신청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숫자는 이보다 더 올라갈 수 있다.

EB3 비숙련의 경우 수속비는 인기가 한창일 때는 4000만원대에 팔렸지만 대략 2000만원에서 3000만원 선에 집중적으로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에는 진행이 어렵다는 소문에 단가가 낮아져 이보다 낮은 가격에 진행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인당 평균 2000만원만이라고 하면, 피해액은 최소 4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송이 벌어진다면 수백억 원대 소송이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EB3 비자취득이 완전히 끝났다는 공식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아직은 피해액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될 경우 결국은 진행포기자가 속출할 것이고, 그에 따른 환불문제가 불거질 것이 자명해 보인다. 환불이야 계약서대로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쉽게 생각할 수가 있지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많은 이주업체들이 계약 당시 환불규정을 집어넣었지만 계약자 스스로가 포기할 경우 환불을 받기가 쉽지 않다.



▲ EB3 비자취득자들이 많이 일하는 곳으로 알려진 미국의 닭 가공회사 콕푸즈. [홈페이지]

환불사태 벌어지면 피해보상 길 막막 = 비자거절이 미국 고용주의 문제인지, 신청자 개인사유인지가 불분명한 상황도 환불을 둘러싼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비자승인보류가 길어져 기다리다 지쳐서 진행을 포기할 경우 그 책임이 누구에 있느냐의 문제도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이주업체들도 답답함을 호소한다. 2014년과 2015년에 별 문제 없이 EB3 비자가 나와서 상품을 팔았는데 갑자기 미국정부가 한국에서의 과다한 비자신청을 문제삼고 나온 것을 어떡하느냐는 항변이다.

이주업계 관계자는 “2015년만 해도 영사인터뷰 신청만 하면 대부분 비자승인이 나왔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미국정부의 비자정책이 이렇게 달라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책임론과는 별개로 과연 이주업계가 경제적 책임을 질 여력이 있는지도 논란거리다. 자본금이 큰 이주업체도 있겠지만 대부분 책임과실에 따른 보증보험 범위가 수억 원대에 불과해 소송이 본격화하고 수천 명이 소송에 참여한다면 모두 피해보상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이미 수속비용 가운데 상당액수가 중간브로커들에게 비용으로 넘어간 점도 보상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업계에서는 이주업체와 미국 내 EB3 고용주를 중간에 전문적으로 연결해주는 미국 내 에이전트 J씨가 최근 수년간 EB3 비숙련 상품 하나만으로 1000만달러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EB3 비숙련 진행자 김 모(44)씨는 “분명히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이상한 상황”이라면서 “누구도 책임을 질 수 없다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댈 곳은 정부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직접 나서 사태를 해결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정진용 기자 carnation24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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