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 이야기](14) ‘노예 공관병’ 논란의 해법, 남재준과 이기식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7-08-1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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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쪽)지난 9일 오전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이 열린 청와대 충무실에서 진급 장성들이 신고식을 위해 자리하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군 장성 진급자들과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청와대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문재인 정부의 첫 군 수뇌부 인사는 군대문화 혁신의 신호탄

정부는 지난 8일 국무회의를 열고 첫 군 인사에서 8개자리 중 7개가 바뀌는 대장급 인사를 의결했다. 합참의장을 제외한 여섯 자리 모두는 진급인사였다.

정경두 40대 합참의장(前공군총장)은 이양호 의장(25대, 공군), 최윤희(38대, 해군)에 이어 세 번째 비 육군 합참의장이 되어 해군장관, 공군의장 군 지휘부 라인업은 1948년 창군 이후 6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또 육사 37기와 38기는 이번 인사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이는 전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의 공관병 사건과 38기 진급 대상자에 대한 갖은 투서 남발에 대한 후유증이라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아무튼 해·공군의 진급에 비해 적체되어 있던 육군 장성 진급이 해소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동아일보 이철희 논설위원은 “8.8육치일”이라고 사설에 게재했다.

이를 예상이라도 한 듯 문재인 대통령은 진급 보직 신고식에서 “軍중심은 육군, 육사가 근간이란 것을 국민이 안다”며 “육군·육사 섭섭해 하지 말라”고 말하며 군 인권 침해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군대 문화 혁신을 기대했다.



ⓒ그래픽=뉴스투데이


노무현 정부 시절 남재준 총장의 실질적인 군대문화 혁신이 귀감돼야

생일선물도 되돌려 보내는 '청렴결백'을 실천한 남재준식 솔선수범이 필요할 때


군 개혁, 군대문화 혁신은 창군 이래 70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장 잘 써먹는 정책기조였다.

김영삼 정부가 군 개혁이란 미명으로 “하나회”를 척결하면서 국민과 군의 호응을 얻어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도 군 개혁을 위해 유임시켜 임명한 첫 번째 육군참모총장은 전 국정원장인 남재준 대장이었다.

필자도 40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체감한 군 개혁을 손꼽으라면 남재준 총장이 솔선수범하면서 시행한 군대 문화 개선이었다.

남 총장은 초급 장교 시절부터 「원칙주의자」로 소문이 난 선비였다. “군 장교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신적, 도덕적 용기이지 요령 있는 처세를 의미하는 융통성이 아니다”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전형적인 야전군인으로서 자신의 생일날 부하 장교가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선물을 준비해오자 그는 그것을 돌려보냈다. 청렴결백한 그는 현재까지도 단 한 칸의 아파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총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대대급 이상 주둔지에 간부체력단련을 위해 설치된 테니스장에 근무하는 사병을 없앴다. “볼을 전투를 위한 사병들이 주우면 안 되고 간부들이 직접 주어라, 심판도 간부들이 봐라.”라고 했으며, 전출입하는 간부들이 지휘관 숙소를 방문하는 것과 본부대장과 군인 가족이 공관에 출입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이것을 어길 시에는 사단장이라도 보직해임을 공헌하여 군내 잘못된 관행을 일소 시키고 군 본연의 임무수행에 전념토록 기풍을 조성하였다.

필자가 참모로 근무할 시절, 인사참모가 지휘관에게 전입 인사 갈 것을 충고할 때 몹시 당황했었다. 지휘관 공관으로 인사갈 때 선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또한 남재준 총장은 인사 청탁하는 자에게는 불이익을 부여하도록 강조했고 군대 내의 학연·지연·혈연 등을 없애는데 주력하였다.

그런 그에게 2004년 국방부 앞에는 ‘남재준 총장이 자기 사조직 인사들을 지난 10월 인사 때 대거 장성으로 진급시켰다’는 괴문서가 뿌려졌다. 군 검찰은 진급심사를 한 육군본부 인사참모부를 사상 처음으로 압수수색했다. 이에 반발한 남 총장은 전역 지원서를 냈으나 반려됐다. 괴문서 사건은 결국 그가 개입한 정황이 없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군 내부에서는 당시 군 인사, 군 사법개혁 정도를 걷던 남 총장에 대해 일부 세력이 그를 흔들기 위한 공작을 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이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문구를 완전히 삭제할 방침을 세웠을 때도 남 총장은 ‘북한 주적론’을 고수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런 그가 참모총장 시절 남긴 이 말은 지금까지도 유명하게 회자되고 있다. “나는 군에 복무하는 사람이다. 나는 조국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나는 조국에 대한 헌신과 봉사가 나의 최고의 가치가 아닌 순간, 조국을 위해 과감히 군복을 벗겠다.”

또한 2003년 육군 장교들을 대상으로 ‘장교의 도’를 강연하며 다음 같이 강조한 바 있다.

“장교는 절대적 자유혼을 지닌 자유인으로서 스스로 선택한 장교의 책무를 다해야 하며, 이것이 장교가 갖추어야 할 가치관이다.”

남재준 대장은 2005년 4월 육군참모총장 이임식을 마치고 전직 총장에게 관행적으로 제공되는 관용차를 마다하고, 본인이 직접 20년된 소형 승용차를 운전하여 떠났던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뜻은 이러했다.

“국가예산을 한 푼도 허투루 사용할 수 없다.”

총장 재직 시절 그는 군의 정치적 중립과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의 삶을 실천하여 '참군인'으로 후배장교의 존경을 받았다. 또한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고 부하들과 동거동락을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골프를 배우지 않고 달리기로 체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회식 때에는 군가를 즐겨 부르며 군인임을 잊지 않았다.

그는 군을 떠났지만 강직하고 소신껏 참 군인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해 얽힌 에피소드들은 과거 “한신”, “채명신”장군과 함께 참군인의 표상으로 후배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 (왼쪽)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과 이기식 전 25대 해군작전사령관 [사진-해군작전사]


‘천안함 최후의 종결자’ 이기식 제독을 휴일 방문했던 추억이 남긴 교훈

지휘관 승용차 반납하고 소형 개인 승용차 사용 공사(公私) 구분으로 해군 전투력 강화


이기식 前해군작전사령관(중장)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직후부터 약 두 달간 천안함 브리핑을 맡았다.

당시 합참 정보작전처장(준장)으로 재직 중 대잠수함 작전 전문가였기에 가장 적임자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천안함 브리핑 당시 그는 많은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천안함이 침몰돼 바닷속에 있는 것만 확인 됐을 뿐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는 40년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좌초설, 기뢰 충돌설, 미군 잠수함 충돌설부터 자작극이라는 말까지 천안함 괴담이 확산됐을 때라고 고백한다. 가짜뉴스가 언론에 도배돼 괴담이 확산되고 남남갈등이 초래된 때문이다.

훗날 중앙일보의 천안함 폭침사건 7주기 대담 취재에서 그는 “북한이 어뢰로 공격하기로 결정한 것은 기존처럼 수상전을 반복해서는 한국 해군을 이겨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며 “잠수정 어뢰로 은밀하게 공격해 물증을 남기지 않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이유에 대해 이 제독은 두 차례의 연평해전(1999년·2002년)과 대청해전(2009년)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기습 공격을 했지만 한국보다 더 큰 피해를 보고 패전했다”며 “그 때부터 복수를 다짐하고 다양하게 준비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제독은 “천안함 폭침사건의 경우도 끈질긴 수색작전을 통해 우리가 어뢰를 찾아내 결정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었다”며 “북한은 우리가 어뢰를 찾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희생 장병과 유족을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하고 또한 감사하다”며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순직한 한주호 준위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하며 “이들의 투철한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한동안 말을 잊었다. 그러곤 눈물을 쏟아 급히 손으로 닦았다. “천안함 생존자들이 아직도 심리적 충격으로 고통 받고 있다. 국가는 희생자 유족과 생존 장병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안함 폭침사건 발생 2년 뒤인 2012년 천안함이 소속된 2함대사령관(해군소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한 일간지에서는 그의 2함대 발령을 두고 “천안함 최후의 종결자 부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2함대사령관 재직 시 필자는 사관학교 동기생인 이 제독을 격려하기 위해 2함대사령부를 방문했었다. 사적인 방문이라 휴일을 택해 이 제독과 고교동창인 학군장교출신 친구와 함께 그를 찾았다.

부대 정문앞에 도착하여 초병에게 사령관을 만나러 왔다하자 초병은 연락을 받았다며 정문 밖에 있는 사령관 공관 방향을 안내해 주었다.

공관에 도착하자 이 제독 부부는 반갑게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런데 주차장에 조그마한 소형차가 서있었고, 이 제독은 그 차를 타라는 것이었다. 당시는 휴일이기 때문에 운전병도 휴식을 취해야 하고 사적 방문이기 때문에 부대 지휘관 승용차를 쓸 수 없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필자와 같이 방문한 친구들은 몽둥이로 얻어맞은 충격을 받았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공관병의 노예사병 사건은 이런 군인이 있는데 왜 발생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사령관이 직접 운전을 해서 전시된 천안함을 관람하고 연평해전 전사자들의 추모비에서 묵념도 했다. 부대 소개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정문 옆에 있는 복지회관에 도착했다.

그 때 복지회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비서실장과 부관에게 이 제독은 점잖게 타이르는 것이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매우 화난 표정이었다. 공식행사가 아닌데 휴일 날 비서실장과 부관이 왜 나왔냐고 질책을 하며 바로 복귀하여 가족과 함께 휴무를 즐기라는 엄명이었다.

잘 준비하기 위해 성의를 표한 비서실장을 질책하는 이 제독이 얄미웠지만(?)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는 이제독이 한편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 제독은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을 거쳐 1차로 3성장군이 되어 해군사관학교장으로 부임했고 그곳에서도 공사(公私)를 명확히 구분하며 부하를 한결같이 아꼈다고 한다.

그리고 “천안함 최후의 종결자” 역할을 위해 25대 해군작전사령관으로 보직을 옮겨 “상비필승”의 기치아래 최고도의 전투태세 확립을 추진하고 엄정한 작전기강 유지 및 원칙에 입각한 합리적인 부대운영을 통해 해군 전투력 강화에 기여했다.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 명예롭게…지휘관은 ‘어항속의 금붕어’임을 깨달아야  

지난 11일엔 육군 및 공군참모총장 이·취임식이 계룡대에서 거행됐고 그 전날까지 신임 1·2·3군사령관이 취임을 하였다.

노예사병 논란으로 4성 장군이 전역도 연기된 채 군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고 매스컴에서는 계속적으로 기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 간부들은 한신, 채명신, 남재준 장군과 이기식 제독처럼 참군인으로 군 명예를 위해 노심초사하면서 국가와 군을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15년 계룡대 해군간부들을 대상으로 ‘군인의 길’이란 강연을 했던 남재준 장군은 41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세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나 자신이 두려웠다. 사소한 이익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경계했다. 둘째, 내가 부하들도 믿고 따를 수 있는 상관인지 성찰했다. 끝으로 내 자식들이 두려웠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서 내 자식이 손가락질을 받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에 대한 이런 일화를 보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은 군 지휘관을 위한 것이 아닐까 미소 짓게 한다.

특히, 모든 조직사회에서 상관은 속일 수 있어도 부하를 속일 수는 없다. 가장 측근에 있는 공관병 같은 부하들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다. 그래서 지휘관은 ‘어항속의 금붕어’에 비유되기도 한다.

손자병법에도 ‘시졸여애자 고가여지구사(視卒如愛子 故可與之俱死)’ 라며 병사보기를 사랑하는 자식같이 해야 한다. 그러면 함께 죽을 수 있다. 라고 장수의 지휘통솔기법을 알려주었다. 이를 실천한 많은 지휘관들은 이런 자세로 근무한 결과 현직 및 전역한 후에도 부하 장병의 결혼 주례를 도맡아 하기도 한다.

그렇다. 사관생도들은 4년 동안 귀가 따갑도록 국가관과 리더십을 교육받고 체험한다. 그래서 많은 장군 및 군 간부들은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 명예롭게…” 라는 구호를 마음속에 다지며 군 생활이 끝나고 전역 후에도 애국하는 자세로 살아간다. 끝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편집자주 : 본 칼럼은 전문가의 특정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뉴스투데이의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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