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81) 손희지展 ‘골목길’
윤혜영 선임기자 | 기사작성 : 2017-05-25 09:04   (기사수정: 2017-05-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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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 - A tranquil childhood Ally 캔버스에 유채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똑같은 공간이지만 기억의 회상은 저마다 다른 ‘ 골목길’의 여유와 온기
 
 
경주에 정착하여 사귀게 된 언니가 있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주 화요일 만나서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기를 일년 째 하고 있다. 주부가 되고 나니 모든 일상이 남편과 아이 위주로 돌아가는지라,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특히 타인을 만나 즐거움을 공유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를 통해 만난 유치원이나 문화센터 엄마들은 어쩐지 벽이 존재하여 조심스럽다.

이 언니는 미술에 관심이 많고 무엇이든 배우는 것을 좋아하며 마당발이다, 경주에 문화행사가 있으면 나를 호출해 이리저리 소개도 시켜주고 데리고 다니니, 천성이 게을러 집콕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우 고마운 지인 중의 한 분이다.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를 의논하며 차를 타고 가다가 ‘따신밥’이라는 간판을 발견하곤 바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따신밥’이라는 제목이 주는 정다운 선입견, 주방장 손맛은 미지수이지만 애정이 담긴 집밥의 느낌을 내포한 단순명료한 상호가 발길을 잡았다.

메뉴는 두 가지였다. ‘선어회 정식’과 ‘돼지찌개 정식’ 우리는 선어회 정식을 주문하고 일주일간 어찌 지냈느냐, 요즘 반찬은 뭘 해먹느냐, 시댁은 안녕하신가 등등, 아줌마들의 단골 관심사를 교환하며 주문한 식사를 기다렸다.

점심 무렵이라 가게는 금세 들어찼고, 옆 테이블에도 인근 공사장의 일꾼들이 서너명 들이닥쳤다. 그들은 앉기도 전에 생수를 벌컥 들이키더니 밥을 주문하고는 냉장고로 다가가 소주 한 병을 꺼내었다.

“아지매. 소주 한 병 꺼내가니더, 주전부리 반찬 먼저 내주소”

“낮인데 벌씨로 술인교?”

“아지매야, 술 먹는데 낮밤이 어딨는교. 그런거 따지믄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닌기라”

나는 이런식의 대화를 엿듣는게 즐겁다. 그야말로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이 드러나는 귀로 듣는 단편소설이다. 목욕탕에 가면 탕이나 사우나에서 계란과 커피를 마시며 잡담하는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도 꽤 즐겁다. 오고 가는 대화속에는 사람사는 세상의 활기가 넘친다.

시락국과 잡채, 두부조림, 미역무침과 함께 보리밥에 미주구리를 올린 횟밥이 나왔다. 물가자미를 경상도 방언으로 미주구리라 부른다. 비빔밥은 체면을 차릴 수 없는 음식이다. 초장을 두르고 곁들여 나온 채소와 함께 쓱쓱 비벼 크게 벌린 입을 향해 몇 숟가락 왕복하다 보면 어느새 빈그릇만 남는다.

계산을 치르고 식후 커피를 마신 후, 경주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언니가 예술의전당 지하에 위치한 ‘라우 갤러리’에서 경주 작가 릴레이展이 열리고 있으니 구경가자고 했다.


▲ 골목 - A tranquil childhood Ally 캔버스에 유채

라우 갤러리’는 경주 최초의 사설 갤러리로 봉황대 문화의 거리에 있다가 예술의 전당 지하 1층으로 이전하였다. 문화불모지라고 비하하는 경상도 지역에서 꽤 수준 높은 전시를 유치하여 매니아들의 호응이 두터우며 해외교류전과 여러 기획전 외에도 경주 지역작가들을 발굴하여 전시를 여는 '경주작가 릴레이展'이 매우 참신하여 빼놓지 않고 가서 보려고 노력한다.

이번 릴레이展은 '손희지'작가의 골목길이다. 마침 오픈날이어서 작가가 나와 있었는데, 까만 생머리를 어깨 뒤로 넘긴 앳된 아가씨였다. 대화를 하다 나이를 물으니 94년생이라고 하였다.

전시장에 디스플레이 된 골목길들은 경주가 아니라 부산의 동네 골목길들을 그린 것이라고 하였다. 느낌이 오는 골목길을 사진 찍어두고 유화로 정밀히 재현한다고 설명하는데, 동그란 안경속의 눈빛이 당차게 반짝거렸다.


골목길은 어린 시절의 평온했던 기억과 즐거웠던 추억의 공간이다.
유년기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많이 사라져 가고,
그 골목길을 행복한 마음과 다양한 감정을 담아 색으로서 재해석해본다.
색의 상징성이 작용하여 자신을 치유해주며 심리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심상을 표현한다.

- 작가노트 -


▲ 골목 - A tranquil childhood Ally 캔버스에 유채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잃어버리는 것들은 여유와 온기이다. 빌딩과 아파트 숲에서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속에 편안함은 쉬 발견되지 않는다. 속도, 미니멀리즘, 정확성 같은 단어들이 어울린다. 경직된 표정으로 가장한 무심함에서 내면은 읽히지 않는다. 차갑다.

골목길에 앉아 나물을 다듬는 노인들이나 친구들과 노는 꼬마들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조금 더 변두리로 나가보아도 행인만 스쳐지날뿐, 노인들은 요양병원이나 경로당에서 놀고, 아이들은 기관이나 학원에서 논다.

여유는 느림이라는 의미와도 상통하는데, 우리의 일상은 이미 마음으로도 이 단어들을 만끽할 낭만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 대신에 연휴를 몰아 돈으로 휴가를 산다. 대형 체인리조트나 호텔이 제공하는 공간에서 잠시나마 토막 휴식과 여유를 즐기며 숨통을 조금이나마 확보한다.​

여행이란 마취제로 삶이 주는 고통을 어느 정도 억제시키고, 다시 일상으로 뛰어든다. 반복이다.​


▲ 골목 - A tranquil childhood Ally 캔버스에 유채


작가가 그린 골목길의 느낌이 매우 밝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감으로 표현한 골목길들은 작가의 심상이 담기며 실물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혼이 담긴 작품으로 승화된다.​

내가 생각하는 '골목길'이라는 단어에 연상되는 것은 어두움, 남루함, 신촌블루스(조금 뜬금없지만), 골목길 사진작가 김기찬, 독거노인, 기다림 등이다.

작가에게 물으니 유년시절을 골목길에서 보냈기에 사람들과의 소통이 활발했고, 많은 이야기들을 수집할수 있었다고 했다. 똑같은 공간이지만 기억의 회상은 저마다 다르다.

그녀의 골목길은 남미의 음악이나 열대과일처럼 밝고 쾌활하다. ​ 마치 골목 어딘가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


▲ 골목 - A tranquil childhood Ally 캔버스에 유채


전시 첫날이지만 작품 밑에 빨간딱지가 꽤 많이 붙어있었다. ​불경기의 전시치고는 판매율이 훌륭하다. 제목옆에 작게 적힌 판매가를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말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으로 작품가를 매겨놓았던 것.

작가에게 물감값 수준밖에 안되는 판매가라고 말했더니, 그녀는 “그림이 비싸서 쉽게 구매하지 못하잖아요. 요즘처럼 뒤숭숭한 시기에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며 조금이라도 기쁜 마음을 가지시라고 가격을 낮게 책정했어요” 라고 말했다.

옆에 서 있던 언니가 “아이구, 착해라. 너무너무 마음이 이뻐요”라며 칭찬을 끌어부었다.


▲ 골목 - A tranquil childhood Ally 캔버스에 유채


손희지 작가의 전시는 6월 4일까지이다. 경주 예술의 전당 B1층에서 만날 수 있다.
이후에도 경주작가 릴레이展은 계속된다. 천년고도 경주에 여행오시면 유적지와 맛집 탐방만 하지마시고 예술의 전당에도 발걸음 하셔서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한결 순화된 아름다운 정서로 '영혼의 귀족'이 되어 보시길 권한다.


▲ 골목 - A tranquil childhood Ally 캔버스에 유채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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