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 이야기](11) 구보는 생도들에게 잊지 못할 ‘휴식’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7-05-22 15:13   (기사수정: 2017-05-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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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미대 지망생이었던 필자가 생도시절이었던 40여년 전에 그렸던 육사생도들의 구보 모습. ⓒ 그림=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5월 '생도의 날' 축제 앞두고 벌어지는 파트너 조달작전은 아련한 추억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다.
그런데 생도시절 5월은 “생도의 날” 축제가 있어 더 더욱 여왕의 계절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자 친구가 없는 생도들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다. 게다가 더 피곤한 것은 같은 조(분대)의 상급 생도이다.

주로 조(분대)별로 행동을 하게 되는데 4학년 선배들이 1학년 후배의 파트너가 없으면 2,3학년 생도들에게 후배 관리 면에서 선배 노릇도 못한다며 심한 핀잔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제 한두 달 전부터 상급 생도들은 외출을 통제 받는 1학년의 파트너를 구해주기 위해 미팅 주선으로 바빠진다. 물론 자신의 파트너도 구해야 하기도 하다.

‘생도의 날’을 앞두고 ‘파트너 조달 작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훗날 임관한 육사출신 장교의 부인들이 서울여대 출신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태릉골 육사의 길 건너편에 있는 서울여대생들과  급하게 미팅을 주선 하다가 눈이 맞아 결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필자가 1학년 생도였던 그해 5월 어느 토요일에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2학년 이상 선배들은 생도의 날 축제를 앞두고 모두 외출 외박을 나갔고 1학년 생도들만이 생활관에 남아 육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홀로 남아있는 생활관 창밖의 빗방울 소리는 더 처량하고 외롭게 들려 왔다.

그때 문뜩 몇 일전 화랑대를 떠난 친구들이 생각났다. ‘구보’와 ‘시험’이 쉴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사관학교의 교육일정은 초인적인 정신력을 요구한다. 버티지 못하고 어렵게 들어온 학교를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입교생 중에 통상 20~30%가 졸업을 못하고 퇴교 당한다.

특히 생도생활은 구보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전투복을 입고 단체로 구보를 한다. 물론 매일 아침 점호 후에도 운동복 복장으로 뛴다.


사관생도에게 구보는 생활의 일부, 어떤 시련도 이겨낼 극기 정신 키워

단체 구보는 처음엔 비무장으로, 다음엔 단독군장으로, 그 다음엔 완전군장으로 복장을 바꿔하며, 뛰는 거리도 3km, 5km, 10km씩 계속 변경 반복된다. 20kg에 달하는 완전군장을 메고 10km를 뛸 때에는 거의 반주검 상태가 된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은 뛰고 난 후이다. 간혹 체력 미달로 또는 배탈이 났거나 등의 이유로 낙오를 한 사람이 생기면 단체 얼차려 기합을 먼저 받고 당사자의 개별 기합도 또 받는다.

게다가 더 더욱 힘든 것은 체력 고갈로 지쳐있지만, 마냥 퍼져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될 때이다. 만약 그 다음날 정기 시험이 있으면 시험 공부도 해야 된다.

매년 전반 학기가 끝나기 전이라 아직 적응이 덜된 1학년들에게는 5월이 계절의 여왕이 아니라 지옥이 될 수도 있다. 그때 즈음이 되면 벌써 10여명의 동기생들이 퇴교를 당한다.

시험에서 한 과목이라도 낙제를 하면 재시험을 치루고 거기에서도 점수가 미달이면 다른 과목을 아무리 잘하더라도 바로 퇴교이다. 중간에 퇴교 당한 친구들은 소위 SKY대학에 바로 합격하기도 한다. 혹독한 육사 생도교육과정을 경험한 사람은 사회에 나가 시련과 도전을 이겨낼 역량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고된 훈련을 마치고 땀에 절은 생도들이 서로 찬물을 부어주며 즐거워하는 광경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 그림=김희철

'외로운' 1학년 생도들, 구보할 때 받는 시민들의 박수에 힘얻어

외출 나갔다가 일요일에 복귀하면 바로 옆자리가 비어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재시험을 통과 못해 퇴교 당한 것이다.

간혹 특이한 경우도 있다. 화려하게만 보이던 생도생활이 뛰고 또 뛰고 얼차려 받고 늘 긴장해야하는 생활이 힘들어 스스로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고 퇴교한 친구도 있다.

본인이 자퇴를 신청하면 제대로 후배 교육을 못 시켰다고 상급생도가 질책을 받고, 동기생들은 동기애가 없다고 얼차려 받는 경우가 종종 생기니까 이런 방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퇴교하는 순간에도 전우애를 발휘한 친구들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대부분의 생도들은 구보를 즐긴다. 왜냐면 육사 정문을 통과해 시내 도로길에서 군가를 부르면서 뛰고 있을 때, 시민들의 박수도 받고, 민간 버스와 택시도 볼 수 있고, 입교 전 각오와 생활을 회상하며 즐길 수 있는 시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든 구보를 하기 전에 선배들은 말한다.
“뛰면서 생각해라. 구보는 군인에게 있어서 휴식이다..!”

끝.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편집자주 : 본 칼럼은 전문가의 특정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뉴스투데이의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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