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칼럼] 비정규직 노동자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법
박희정 기자 | 기사작성 : 2017-02-24 17:24   (기사수정: 2017-02-2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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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칼 여행에서 목격했던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환한 미소'가 아름다워

비정규직 근로자와 청소년 알바에 대한 '갑질'이 '한국적 어두움'의 근원
(뉴스투데이 릴레이기고=김정민/고려대 자유전공학부 신입생)

연초에 대학합격 소식을 받아들고 가족들과 포르투갈 여행을 떠났었다.  대학입시를 끝낸 해방감으로 설레였던 이 여행에서 나는 예기치못했던 경험을 했다.

서로 존중하는 사회분위기와 삶의 여유가 인상적이었다. 거리의 청소부 들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했고, 시내버스 운전기사는 마을 사람들과 손 인사를 하면서 운전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여유로운 태도로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이 이국적인 풍경보다 더 아름다웠다.

문득 한국의 버스 운전기사나 청소부에게서는 웃음기를 찾아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공항버스에 탑승했을 때 일이다. 기사 아저씨는 웃지 않고 경직된 자세로, 짐을 올려주고 내려주기만 했다. 그 치친 어깨를 바라보면서 유쾌했던 포르투갈 기사들이 생각났다.

요즘  뉴스 댓글에는 택시 기사나 고속버스 기사가 불친절하다는 의견이 종종 보인다.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한국의 서비스 직종 종사자들의 표정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인 것 같다. ‘갑’이 아닌 ‘을’의 직군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어두움은 개인보다는 사회구조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개인의 특성이라면 포르투칼의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대부분 밝은 표정으로 근무한다는 사실을 설명할 길이 없다. 포르투칼 사람은 성격이 좋고 한국인은 기질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논리는 누가봐도 부당하다.

기독교 정신으로 출발했던 이랜드의 임금체불 사건에서 한국의 구조적 문제는 확인된다. 이랜드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이대며 근로자 4만여 명의 임금 83억원어치를 체불했다. 예컨대 근무 시작 10분 전에 일을 시작하게 만들고 근무시간 10분을 넘기도록 해놓고 ‘20분 분량의 임금’은 떼먹는 방식이었다.

인간적 존중을 받지 못하고 법적으로 규정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어떻게 미소를 지을 수 있겠는가. 근로자는 부처나 예수가 아니다. 인간일 뿐이다. 

수능 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내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한 떡볶이 체인점에서 알바를 한 친구는 당시 최저임금이었던 6030원에서 30원을 깎은 시급 6000원을 받았다고 한다. 주휴수당은 꿈꿀 수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일하던 아르바이트 선배도 주휴수당이 뭔지도 몰랐다고 한다. 체인 분식점에서 일한 한 친구는 가끔 음식을 얻어 먹을 수는 있었지만 주휴수당을 받지 못했단다.

청소년 알바생들은 ‘을 중의 을’이다. 사장과 관계가 틀어질까봐, 아니면 마땅히 말할 곳이 없어서, 혹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문제제기를 못한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다른 OECD 국가 임금의 절반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것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알바생이 많은 것 같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최근 국회의사당 청소부 직원들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을 때는 인상적이었다. 그 분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바라보면서 한국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느낌이 들어 괜스레 눈시울이 적셔졌다.

비정규직과 알바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관련 법과 제도를 바꾸는 데는 현실적인 장애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인식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는 우리가 ‘마음’만 고쳐 먹으면 된다. 

기업이 근로자나 알바생을 ‘이익의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조만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특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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