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심호흡] 삼성 오너 이재용, 무엇이 두려웠나?
이태희 편집국장 | 기사작성 : 2017-01-12 16:23   (기사수정: 2017-01-1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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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


삼성의 최순실 일가 지원 두고 ‘당근론’과 ‘채찍론’의 대결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12일 특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두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제3자 뇌물죄’ 혐의에 대한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협력을 암시하면서 최순실 일가에 대한 지원을 압박했고, 삼성은 그 ‘거래’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삼성은 이에 맞서 최순실 일가에 대한 수백억 원 규모의 지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행위였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최고 권력자인 박 대통령의 거듭된 압력과 위세에 눌려서 강제로 돈을 뜯겼다는 설명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삼성 혹은 이 부회장도 선량한 피해자가 된다. 박 대통령만 ‘공갈, 강요, 직권남용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측의 법리공방을 관통하는 최대 쟁점은 삼성의 최순실 일가 지원이라는 명확한 결과물의 ‘동기’가 무엇인지에 있다. 특검은 ‘당근론’이다. 삼성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협력이라는 ‘당근’을 받아먹은 결과라고 단언한다. 반면에 삼성은 ‘채찍론’이다. 박 대통령이 뿜어내는 분노의 포스에 공포를 느껴 무릎을 꿇었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중이다.


대한항공 조양회 회장도 거부한 권력의 폭력, 이재용은 왜 굴복?

문제는 삼성의 주장이 삼척동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가했다는 위협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채찍론’의 핵심은 최순실에게 돈을 주지 않았을 경우, 삼성이 입게 될 피해이다. 삼성이 어떤 사업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판단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도 납득하고 특검도 설득할 수 있다.

물론 현행 대통령 제하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박대통령의 노골적인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는 게 삼성의 논리인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재벌들은 삼성처럼 벌벌 떨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면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은 최순실의 이권 요구를 거절했다. 딸 조현아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 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칙대로 처신했다. 때문에 평창 동계올림픽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대한항공이 치명적인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의 이권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정부부처 장·차관이나 실국장들은 문책 인사를 했다. 실제로 채찍을 휘두른 것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대상은 공무원에 국한된다.


삼성의 ‘채찍론’은 ‘반론’이 아니라 ‘비명’ 수준?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통령이 사욕을 충족시키려고 재벌기업들을 ‘하인’처럼 다룰 수는 없는 정도의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 주역은 국민들이다. 이 부회장은 그런 국민의 힘을 기반으로 부당한 권력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 점에서 조 회장보다 훨씬 우위에 있음은 분명했다.

더욱이 우리사회 구성원들은 대부분 대통령보다 삼성이 한국경제에 더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이 사익을 위해 한국경제의 중추인 삼성을 탄압한다면 국민들이 두고 보지 않는다. 일각에는 삼성이 감기를 앓으면 국민은 독감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는 극단적인 정서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이제 와서 ‘채찍’이 두려워서 최순실에게 돈을 줬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박 대통령은 삼성의 명줄을 좌우 할 힘이 없었고, 삼성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었다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초일류 인재들만 모인다는 삼성이 내놓은 반론은 궁지에 몰린 맹수가 내뱉는 단말마적인 ‘비명’ 수준이다.


비온 뒤 가로수 길 같은 ‘삼성과 박 대통령 간의 거래 시나리오’

반면에 특검의 ‘당근론’은 비온 뒤 가로수 길처럼 선명하다. 물증과 법적 논리가 완성된 상태로 보인다. 특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5년 7월 17일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국민연금 측에  찬성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측 외부 전문기관은 제일모직 대 구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인 1대 0.35가 국민연금에게 불리하다며 반대했지만 묵살됐다. 국민연금은 당시 제일모직 지분은 4.8%였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11.2%를 보유하고 있었다. 때문에 국민연금은 당초 양사의 합병비율을 1대 0.46으로 주장했다.

반대로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대주주이지만 삼성물산 주식은 없었다. 1대 0.35의 합병비율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이 합병이 성사됨으로써 이 부회장은 합병된 삼성물산의 지배력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음을 뜻한다.

그로부터 한 달쯤 후인 2015년 8월 26일 삼성전자는 최순실 소유 독일 회사와 승마선수 지원 관련 수백억 원대의 컨설팅 계약을 체결한다. 삼성이 집행한 컨설팅 비용은 대부분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가 사적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해 10월부터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에게 16억 2800만원을 후원하기도 한다.

당시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이 거래를 통해 모두 원하는 바를 얻었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일가를 지원함으로써 ‘경영권 승계’의 기반을 굳혔다. 박 대통령은 그토록 아끼던, 혹은 존경했던 최순실에게 거액의 자금을 제공할 수 있었다.


빅딜의 수혜자는 대통령과 삼성 오너, 피해자는 ‘국민의 노후’

특검의 논리에 충실하게 따를 경우, 이 빅딜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삼성이 주장하듯이 이재용 부회장이 아니다. ‘국민의 노후’ 이다. 구속 된 국민연금 실무책임자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고갈위기에 처한 국민연금이 부실화되면, 한국 국민의 노후가 그만큼 부실화된다.

삼성물산 지분율이 더 높았던 국민연금이 제일모직 지분만 가지고 있던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안을 지지하는 순간, 국민의 이익은 망각됐다.

이 부회장은 청문회에서 국민연금이 합병 삼성물산 주식 거래를 통해 충분한 이익을 봤다는 변명을 했다. 하지만 그 논리는 잘못됐다. 누구도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식 거래로 손해를 봤다고 비난한 적이 없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의 가치를 정당하게 매김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국민의 이익’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 부도덕의 극치를 이룬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이제 이 부회장은 향후 조사과정에서 최순실 일가 지원이 ‘거래’가 아니라 ‘굴복’이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기묘한 상황에 처했다. 대통령이 잘못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권력을 어떻게 협박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난감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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