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 이야기](4) 험난한 정의의 길에는 Beast Training이 있었다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7-01-04 21:03   (기사수정: 2017-01-06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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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입사 첫날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Beast Training(짐승훈련) '이 기다려

각 군 사관학교는 정식입교 한달 전부터 기업체의 신입사원 위크숍 처럼 기초군사훈련을 한다.
3·4학년 생도들을 주축으로 교관편성을 하고 4주 동안 신입생도들과 24시간 함께 생활하며 군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초교육을 시키는데, 일명 'Beast Training(짐승훈련)'이라고 불린다.

각자의 성장과정은 상이하겠지만 20년 전후 가정과 학교에서 누적된 사회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캔버스로 심신을 정화시킨 뒤, 사관학교에 정식으로 입교하여 자신의 멋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통상 신입생들은 이 기초군사훈련에서 체력부족과 의지박약으로 탈락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때문에 “가입교 생도”라고도 불리운다. 기초군사훈련을 마치면 대부분 신입생들은 국가를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질 각오가 된 상태로 정식 입교식을 치르게 된다.

그런데 모 동기생은 입교 첫날은 등록만 하고 정식 입교식에 다시 오는 것으로 알고 슬리퍼를 끌고 등록하려 했다가 급하게 집에 다시 가서 준비를 하고 재입교했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입교 첫날은 정신을 바짝 차려 입교안내서를 숙지하고 행동해야한다.



▲ [사진=김희철]


벼랑에 떨어진 새끼사자 중 기어올라 온 새끼만 키운다


필자는 절차에 맞춰 등록하고 생활관에 들어서자 하얀 백색줄이 선명한 화이버(철모)를 쓴 군인들이 친절하게 설명하며 사복을 갈아입도록 안내를 해주었다.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너무 친절하여 마음을 잠시 풀어놓았다. 몸에 잘 맞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입어보는 군복에 신입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군복으로 갈아입고 생활관을 나오자, 그 친절한 백테 화이버의 군인들은 성난 짐승들로 변해있었다.(그들은 군인이 아니라 선배 생도로 신입생을 지도하는 교관들이었다.)

정신이 없었다.

처음부터 존대말을 하면서 자상하게 안내하던 모습은 언제그랬냐는 듯 없어지고, 싸늘한 눈빛으로 돌변하더니 잡아먹을 듯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닌가?

우왕좌왕, 갈팡질팡 하면서 열과 오를 맞추고 고함지르고…

저녁을 먹고 광장에 집합했다.

당시에도 구타는 불허했으나 양손으로 가슴을 치는 풋싱은 허용이 되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라며 여기서 퍽.. 저기서 퍽.. 가슴에 충격을 못이겨 뒤로 밀리면 의지가 약하다고 힐책을 하니 오히려 앞으로 튕겨 나가도록 버티다보니 가슴이 얼얼할 정도가 되었다.

석양이 떨어지고 칠흑같이 어두워지자 가로등이 켜지면서 사열대에는 사관생도 예복을 입은 선배 생도들이 열을 맞춰 부동자세로 서 있었고, 그 밑에 대열을 갖춰 모여있던 신입생들은 바짝 긴장을 하게 되었다.

가장 높은 것 같은 선배 생도가 매서운 눈매로 내려다보면서 카랑카랑한 쇳소리 같은 우렁찬 목소리로 포효해 댄다.

“어미사자는 새끼를 벼랑 아래로 떨어뜨린 후, 혼자 힘으로 기어올라 온 새끼 사자만 키운다… 참아라, 참아라, 그리고 또 참아라..!”

Beast Training(짐승훈련)에서 살아남는 신입생 만 정식 입교가 가능하다는 뜻인 줄 알았지만 힘든 기초군사훈련을 앞두고 장엄한 분위기에서 선배 생도들의 당부를 들으며 강인한 각오를 다지게 하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 [사진=김희철]


지성·인격 등이 모두 빠져나간 백지상태가 되다


2월 늦겨울의 눈보라와 삭풍은 볼을 때리고 손발은 꽁꽁 얼지만 등줄기와 이마에 송송 맺히는 땀방울은 추위를 녹여버렸다. 군인이 되기 위한 제식훈련과 집단생활을 위해 열과 오를 맞추고 하는 단체적인 것에만 신경쓰다보니 나 개인은 없었다.

동트기 전 새벽 기상 나팔소리와 함께 문을 차고 들어오는 교관생도의 고함소리에 혼이 나간 몽롱한 상태로 군복을 입고, 침구와 신발들을 정렬한 뒤 광장에 나와 애국가를 제창할 때는 이미 목이 쉬어있었다.

아침 세면시간도 통제해서 비누도 제대로 씻지 못하고, 집합하여 식당에 가면 처음 해보는 직각식사 때문에 흘린 밥알과 국물이 군복을 적시고, 직각보행을 하다 발을 못 맞추면 연병장을 구르고 선착순을 하다 보니 다리에는 알이 배기고…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면서 적응이 되는가 싶었는데 피곤함에 기회만 되면 졸고, 계속된 체력단련속에 식사 때만 되면 정신없이 배고픔을 채우다보니 고교시절 지성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것, 심지어 종교생활하며 쌓아온 인격 등은 모두 심신에서 빠져나가고 오직 교관생도들에게 지적을 받지 안으려고 노력하는 잘 훈련된 짐승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얀 백지가 되어버린 머릿속에 교관생도들은 국가관, 군인관을 심어주고 있었다.



▲ [사진=김희철]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란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이 끝나 갈 즈음, 신입생도들은 어엿한 군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해보는 소총사격, 수류탄 투척, 각개전투…이러한 과정이 지나가면서 신입생도들은 국가가 지금 당장 북한으로 침투해 김일성의 목을 따오라하면 무모하지만 거침없이 달려나갈 마음가짐이 되새김질되며 굳어졌다. 또한 군복과 총기는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것이므로 내 생명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것임을 각인시켰다.

교관생도가 소총을 빼앗으려고 하면 젖먹던 힘까지 발휘해 소총을 지켰다. 총기 관리를 소홀이하여 빼앗기면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것을 빼앗겼기 때문에 매국노로 취급되었으며 엄청난 얼차려(기합)를 받아야 했다. 또한 취침할 때도 껴안고 자야하는 벌을 받기까지 했다.

함께 입소한 신입생도 중에는 이러한 과정들을 너무 힘들어 했고, 멋있게만 보였던 사관생도 생활에 대한 실망감으로 한 두명씩 탈락하여 집에 가는 생도들이 생겼다.

탈락자가 생기면 동기생을 떠나게 만든 단결심이 결여되어 동기애(同期愛)가 부족하다고 하여 남은 생도들은 또 얼차려(기함)을 받았다. 이때 생사고락을 함께한 관계로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초 군사훈련과 같은 생활관을 함께 했던 동기들은 생명을 나눈 친구처럼 되어있다.

하얀 캔버스 위에 국가(國家)라는 글자가 새겨지고, 말로만 외치던 애국(愛國)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국가를 위해서는 이 생명을 초개와 같이 던질 수 있는 마음을 다지게 되었다.

험란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며 멋있게만 보였던 사관생도가 되려고 왔다가, 1차적 욕구만을 생각할 정도의 짐승(자연적이며 순수해진 동물)으로 변하면서 오히려 진정한 국가관을 갖게 만들었던 Beast Training(짐승훈련) 덕택에 가입교 생도들은 안중근 장군의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 각인되어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진정으로 택하게 된 것이다. 끝.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현)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편집자주 : 본 칼럼은 전문가의 특정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뉴스투데이의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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