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의 창업자들] 용감한 형제① 소년원 출신이 ‘아이돌 대부’ 된 원동력은 ‘1만 시간의 법칙’
강이슬 기자 | 기사작성 : 2016-12-30 13:27   (기사수정: 2016-12-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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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가이자 자신의 소속사를 창업한 용감한형제소년원 출신에 중졸 학력이지만 스타 작곡가로, 수십억대 자산가로 성공했다. ⓒ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1막, 나이트 클럽 영업 부장(19세~)→  2막, 아이돌 제조기(25세~)→ 3막, 엔터테인먼트 회사 창업한 수백억원대 자산가(29세~)

빅뱅의  ‘마지막 인사’, ‘거짓말’, 손담비의 ‘미쳤어’, ‘토요일밤에’, 씨스타의 ‘나혼자’, ‘푸쉬푸쉬’, AOA 의‘사뿐사뿐’, ‘심쿵해’, 애프터스쿨 의 ‘Diva’, 포미닛의  ‘이름이 뭐예요?’ 등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이 히트곡들의 공통점은 바로 '용감한 형제(본명 강동철, 36)'가 작곡했다는 것이다.
 
용감한 형제는 수많은 메가히트곡들을 탄생시키며 저작권협회에 400곡 가량 등록된 스타 작곡가이다. '아이돌의 대부'라는 명칭이 어색하지 않다. 그의 곡을 받은 아이돌 그룹은 스타가 된다는 게 수년 동안 '업계의 정설'로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곡 뿐만 아니라 안무 감각도 대중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해왔다. 신인 아이돌 그룹은 물론이고 스타급 아이돌들도 그의 곡을 받으면 안무 지도를 받는 '패키지 상품'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프로듀싱한 아이돌 그룹들이 연이어 성공하자 급기야 창업자가 됐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설립해,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연 저작권 수입만 평균 40억 원에 달하는 수백억원대 자산가로 성장했다.
 
작곡가와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성공한 그의 성공스토리는 확실히 조금 남다르다. 그의 성공엔 ‘악보 볼 줄 모르는 작곡가’, ‘중졸 출신에 수백억대 자산가’ 등 독특한 수식어가 붙는다. 

17살에 소년원에 들어갔고, 19살에 유흥업소 영업부장으로 일하며 조직폭력배의 세계에도 발을 담궜다. 그의 인생을 바꾸게 한 건 20살 때 들었던 힙합 음악이다. 음악에 빠져 무작정 작곡이 하고 싶었던 그가 보스에게 무릎을 꿇고 조직에서 나가겠다고 애원해 허락을 받았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악보도 볼 줄 모르고 기본적인 음악 코드도 몰랐던 그는 혼자 음악 장비를 두드리며 작곡과 씨름했다. 결국 2004년 렉시의 '눈물씻고 화장하고'라는 곡으로 작곡가로 데뷔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연예계의 큰 손인 'YG엔터테인먼트'에서 작곡가로 일했다.

2008년은 그의 음악의 황금기였다. 손담비 '미쳤어', 빅뱅 '거짓말', 'BABY BABY', 브라운아이즈걸스의 'MY STYLE' 등 메가 히트곡을 내놓으며 독립 기반을 다졌다. 2008년에는 음악프로그램의 반절 이상이 용감한 형제가 작곡한 곡들로 채워질 정도였다.

작곡가로 성공가도를 달린 그는 2008년 29세의 나이로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대표자리에 올랐다. 작곡은 커녕 음악도 배우지 않았던 그는 어떻게 작곡가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 첫번째 원동력은 '1만 시간의 법칙'을 실천한 데 있다. 이 법칙을 실천하기 위한 끈기와 노력은 용감한 형제가 어두운 청소년시절을 보냈기에 오히려 가능했다. 깊은 수렁 아래로 빠져 본 사람은 불가능한 상황에 부딪쳐도 좌절하는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 소년원까지 다녀오는 '절망의 어둠'으로 단련돼 

그의 어린 시절은 어두웠다. 스스로 구덩이에 발을 집어 넣었다고 말하며 후회하고 있다. 중졸 학력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유명한 싸움꾼으로 소년원까지 다녀온 문제아였다. 가출한 용감한 형제를 보기 위해 어머니가 고등학교 입학식에 찾아갔지만 그는 입학식조차 결석했다는 일화도 있다.

용감한 형제의 어머니 정선옥 씨도 아들 용감한 형제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애가 밤에 늦게 안 들어오면 ‘또 경찰서에 가서 있나’ 마음이 두근두근거렸다. 빨랫방망이 두들기듯이 심장이 막 뛰었다”고 회상했다.
 
오직 강해보이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용감한 형제는 17살에 싸움이 커져 소년원에 구속됐다. 아들이 포승줄에 묶인 모습을 본 어머니는 거의 실신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소년원에서 용감한 형제는 깨달았다. “아 이건 아니구나. 지금 내가 잘못 가고 있구나.”
 
하지만 한번 빠진 구덩이에서 쉽게 나올 수는 없었다. 그는 “구덩이에다가 발을 집어넣으니까 계속 깊숙이 더 들어가게 되더라.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소년원에서 나온 뒤 19살 어린 나이에 유흥업소의 영업부장으로 일했다.
 
현재 그의 팔을 휘감고 있는 다양한 문신들도 과거 그의 상처를 담고 있다. 과거 자해를 많이 했고, 선명하게 남은 자해자국을 감추기 위해 문신이 하나둘 늘어났다. 자해는 오직 강해보이기 원했던 어린 시절 그가 남긴 흔적이다. 남아있는 그 흔적을 보는 게 너무 괴로워 문신으로 덮었다.


악보도 볼 줄 모르지만 골방에서 '나홀로 작곡법' 터득

6년간의 사투 끝에 출산한 첫 작품 렉시의 ‘눈물 씻고 화장하고’로 대박
  

그가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나이트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음악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곡을 듣고 돌연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지금도 그 음악의 이름을 모른다. 힙합계통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 정도로 음악의 '문외한'에 불과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콩나물 대가리'도 이해하지 못했던 상태이다. 지금도 그는 악보를 볼 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맨몸으로 부딪혔다. 그는 무작정 낙원상가 장비 가게를 찾아 물어보고 어깨너머로 보며 겨우겨우 노래를 만들었다. 해보고 해보고 또 해봤다. 눈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장비를 붙잡고 씨름했다.
 
형(강흑철)이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생활하고, 형이 음식이며 빨래며 살림까지 도맡아 도와주었다. 덕분에 용감한 형제는 거의 외출도 하지 않은 채 골방에 틀어박혀 음악 만들기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성공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분야에 1만 시간 이상을 꾸준히 노력했다는 성공학 이론이다. 이 법칙은 그를 빗겨가지 않았다. 1만 시간 넘게 하루 종일 음악과 사투하기를 6년, 2004년에 렉시의 ‘눈물 씻고 화장하고’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단숨에 인기 작곡가로 떠올랐다. 당시 그의 나이는 25세였고 작곡을 시작한지 6년째 되던 해였다.
 
지금도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코드도 모른다. 배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음악장비와 사투를 벌이면서 스스로 터득한 음감으로 작곡하기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 하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도 “내가 이 위치에 있고, 사람들이 날 알아보고, 내 노래가 히트되고, 제가 프로듀싱한 그룹들이 성공하고, 그들이 소속된 회사들이 성장하고. 이런게 나도 믿기지 않은 꿈같은 현실이다”고 신기해한다. 
 
용감한 형제가 골방의 세월 6년 동안 좌절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유년 시절에 겪은 어둠이 너무 짙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에게 과거의 어둠이 '절망의 어둠'이었다면 골방에서 작곡을 하면서 보낸 6년은 '희망의 어둠'이었다.  
  
이야기는 [인생 2막의 창업자들] 용감한 형제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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