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의 창업자들] 대우차 출신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① 자동차 대신 바이오에 눈돌린 2 가지 이유
이지우 기자 | 기사작성 : 2016-11-17 09:44   (기사수정: 2016-12-2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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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그래픽=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이지우 기자)
 
 
서정진의 메시지, “중년도 미지의 영역에 도전해 성공할 수 있다”
 
인구 고령화와 수명 연장으로 헬스케어 분야가 조명받는 21세기에 ‘바이오제약산업’이 새 먹거리로  주목되고 있다. 그런만큼 글로벌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다. 그 와중에 국내 기업 셀트리온은 바이오 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세계시장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2001년 서정진(59) 회장이 창업한 셀트리온은 올해로 15년 차에 접어들었다. 사실 다른 바이오제약기업과 비교하면 짧은 역사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큰 성과를 거뒀다. 국내 코스닥 시총 1위 기업의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의 경우에도 대표 제품인 ‘램시마’를 ▲유럽 12개국 (2월) ▲브라질·베네수엘라(4월) ▲러시아(7월) ▲호주(8월)등에서 판매허가를 받는 성과를 냈다. 램시마는 셀트리온이 개발 생산하고 있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이다. 존슨앤드존슨의 레미케이드(Remicade)를 복제한 바이오시밀러이다. 오리지널 제품과 동등한 약효를 발휘하면서 가격은 30~40% 정도 저렴한 게 강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서 회장이 바이오와 전혀 관련없는 대우자동차에서 근무했던 한 샐러리맨 출신이라는 점이다. 흔히 창업의 성공조건으로 '전문성'을 꼽는다. 자신이 땀을 흘려온 분야에서 사업의 가능성을 찾아내야 한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서 회장은  ‘미지의 영역’에 뛰어들어 성공한 창업자이다. 그것도 20~30대의 청년이 아니라 40대 중반의 나이였다. 때문에 그의 성공은 ‘인생 제 2막’을 준비중인 중년층에게는 대단히 희망적인 사례이다. 육체적으로 내리막길에 들어선 사람도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대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게 ‘서정진의 메시지’ 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출발선에 선 청년층에게도 교훈적이다. 자신의 전공과 같은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용기를 준다.
 
이 같은 이유로  ‘인생 제2막’을 성공으로 이끈 창업자 시리즈의 첫 사례로 서정진 회장을 선택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자동차 맨’이었던 서 회장이 전혀 새로운 분야인 바이오에 눈을 돌리게 된 2가지 이유”로 시작한다.
 
 
① 창고에서 사라진 ‘과거의 치즈’를 잊고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서라
 
 
서 회장은 1957년 10월 23일 충북청도에서 태어나 제물포고등학교를 나와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들어가 당시 대우자동차 판매 컨설팅일을 한동안 했다. 그의 열성적 컨설팅을 눈여겨 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의해 대우자동차에 스카웃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임원까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졌고 당시 김대중 정부는 부실기업 매각 및 구조조정 등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대우그룹은 그 정책의 핵심 타깃이었다. 1999년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서정진은 대기업 임원에서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나 서정진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동차 회사로의 재취업 혹은 자동차 관련 부품 업체 창업등을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에 전혀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스펜서 존슨이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주장했듯이, ‘사라진 과거의 치즈’를 그리워하기 보다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섰다.
 
그 계기는 우연이었다. 그 우연을 놓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기회를 손가락 사이로 흘려버리곤 한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우연이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변혁점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전력투구한다. 서 회장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서 회장은 1999년 대우자동차를 나와 같이 퇴직한 10여명의 직원과 사무실을 차렸다고 한다. 대우차 출신들이 모여 앞날을 걱정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마땅한 사업 아이템이 없어서 고민하던 중에 바이오 산업이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서 회장은 당시 판단을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연히 제약산업을 보게 됐다. 당시 세계 제약시장은 1000조원대의 시장이었다. 자동차는 500조~600조원 시장이었다. 한국이 세계 경제 10위권이면, 그 1000조원 중 100조원은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자동차가 창고에서 사라진 ‘과거의 치즈’라면, 바이오 제약은 앞으로 찾아나서야 할 ‘새로운 치즈’라고 생각한 것이다.
 
서 회장은 특히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에 주목했다. 미국과 유럽의 블록버스터급 바이오 의약품들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대거 특허가 만료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혁신적 바이오 신약들의 특허가 대거 만료되면 복제약 생산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바이오 의약품 원료가 되는 단백질은 오랜기간 배양기를 거쳐야한다. 단기간에 대량 생산체제를 갖출 수 없다.
 
서정진은 무릎을 쳤다. 바이오 복제약 대량생산을 위해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뛰어들면 ‘블루오션(Blue ocean. 경쟁없는 신시장)’을 선점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일종의 ‘역발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2002년 인천 송도에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위탁 생산을 할 수 있는 준비작업을 본격화한 것이다. 새로운 치즈가 바이오 의약, 그중에서도 바이오 시밀러라는 확신을 갖고 준비된 자의 길을 걸은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온갖 고초를 겪는다. 하지만 새로운 치즈를 정확하게 포착해낸 서 회장은 성공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② 모두의 조언을 경청하라…“요즘 바이오 산업이 뜬다”는 한 마디가 출발점
 
그렇다면 새로운 치즈로 바이오 제약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일까? 서 회장은 주변 말을 듣는 신중함이 있다. 서 회장의 ‘바이오 짝사랑’의 시작은 주변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서정진은 2000년 어느 날 대우자동차 퇴사자들의 사무실에서 모임을 가졌다. 사무실을 낸 지 해를 넘겼지만 구체화된 게 아무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누군가가  “요즘 바이오 산업이 뜬다”는 말을 꺼냈다.
 
그 누군가의 조언을 흘려듣지 않고 붙잡았다. 무작정 ‘바이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흘려듣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한 자양분으로 소화해내는 능력이 셀트리온을 탄생시킨 원천이었던 셈이다.
 
조언을 경청하는 서 회장의 철학은 셀트리온 창업 준비단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전 세계 40개국을 돌며 바이오 관련 전문가에게 직접 자문을 구했다. 문외한이었던 서 회장은 이러한 조언 청취의 과정을 통해 바이오 제약의 ‘문외한’에서 ‘전문가’로 재탄생하게 된다.
 
“3명의 행인이 지나가면 그 중에 반드시 한 명은 나의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공자의 어록이다. 서정진이 미지의 영역인 바이오에 눈을 돌린 이유는 바로 공자의 어록이 설명해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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