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신(God)은 죽었다!”
윤재은 칼럼리스트 | 기사작성 : 2016-09-12 10:21   (기사수정: 2016-10-1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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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신(God)은 죽었다!” - 오르려는 원숭이와 내려가려는 사자의 외줄타기!

(뉴스투데이=윤재은 칼럼리스트) 오르려는 원숭이와 내려가려는 사자의 외줄 타기! 원숭이의 재주는 세상을 흔들지만 깊이가 없고, 사자의 포효(咆哮)는 울림이 장대하지만 덕이 없으니, 세상을 구할 자! 초인(超人)밖에 없다. 니체는 인간과 신의 중간자적 존재로서 초극적(超克的) 존재, 절대자의 존재인 초인을 내세운다. 초인은 자기극복을 위한 인간의 목표이며, 신의 죽음을 통해 모든 가치의 창조자로서 새로운 생(生)의 창조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창조자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 신(God)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신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신은 세상의 모든 것이다. 하지만 신은 어디에 있는가? 신은 자신의 창조물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의 죽음은 인간의 탐욕에서 시작되었다. 질투와 모략과 배신에서 인간의 사악함이 드러난다.

자본주의의 풍요에서, 이데올로기(Ideologie)의 전선에서, 힘 있는 자들의 탐욕에서, 사회는 병들고, 도시는 악취로 진동한다. 신은 죽었다! 끝없는 다툼과 배려 없는 인간의 마음이 신을 죽인 것이다. 세계는 조화와 배려로 창조되었고, 그 순환은 사랑이었다. 그러나 사랑과 배려가 없는 세계는 조화를 잃어버렸다. 조화 없는 세계는 서로의 이익만이 난무하고, 타인의 삶을 전쟁의 포화 속에 묻어버렸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구원의 빛은 어디로 가고! 사막의 열기처럼 타오르는 뜨거운 빛은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얼음장처럼 차갑다! 우리의 가슴속에 뜨겁게 용솟음치는 삶의 기운은 어둠의 연기 속에 묻혀버렸다. 아! 아쉽고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시작이며, 마지막 희망인 신은 어디로 가고, 타락한 인간들이 세상을 활보하며, 신의 죽음을 조롱거리로 만든단 말인가? “저 숲 속의 늙은 성자는 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우리는 눈물 흘릴 여유도 없다. 아버지를 죽인 아들의 마음처럼, 참회하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해야 한다. 사라져버린 신의 죽음으로부터 희망의 빛을 되찾아 와야 한다. 그 길은 참다운 인간성의 회복에서 가능하다.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도와주는 그러한 사회 속에서 신은 인간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인간 의지의 정점인 신이 죽었다면, 우리는 어디서 구원을 구할 수 있을까? 우주의 탄생과 함께 찾아온 축복의 시간도 신의 죽음 앞에선 모든 것이 참담하고, 무겁기만 하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우리는 세상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리고 병들고, 힘없고, 고통 받는 자들에게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하여야 한다. 힘없는 약자들이 고도를 기다리는(Waiting for Godot) 것처럼!

독일 생(生)철학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 Friedrich Wilhelm)는 기존의  합리적 철학과 기독교적 윤리를 부정하며, 신의 죽음을 알리고 니힐니즘(Nihilism)을 주장한다. 니체는 선악의 피안에 서서 신을 대신할 초인을 통해 현실적 생의 긍정을 부여하며, 인간이 강자의 도덕을 가지고 초인(超人)의 긍정적 생을 지향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혁명을 통해 변해가는 자본주의 사회와 마르크스주의의 대두로 이어지는 이데올로기는 니체의 사상을 실존으로 이끌어 갔다. 그리고 신의 죽음을 통해 의욕을 상실한 인간에게 니힐리즘은 무(無)를 통한 또 다른 희망인 것이다. 기존 최고의 가치가 가치의 상실을 통해 목적을 잃고, 무엇을 위해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사회에서 초인은 신을 대신한 구원자이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Zarathustra)에 등장하는 초인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신과 인간의 중간자적 존재로서 자기를 초극해 나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초인은 신을 대신하여 모든 가치의 창조자로서 생의 실천적 자아이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매인 하나의 줄에서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인간과 신의 간극이 인간과 초인의 간극으로 좁혀진 사회에서 신은 우리의 구원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나약한 것은 영원한 삶이 보장되지 않고 ‘죽음’ 이라는 종착역을 달려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달리는 기차위에서 종착역을 향하는 나약한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의 구원을 기다린다. 초인에 가까운 사람은 삶의 과정과 생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동물에 가까운 인간은 탐욕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다.

신이 죽은 세계에서 인간은 삶과 죽음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가?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지평이 될 것이다.

삶과 죽음! 이것은 신이 사라져버린 이 세계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는 문제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Hamlet) 제 3막 제 1장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의 명언처럼, 인간의 삶은 사는 것과 죽는 것의 문제이다. 삶은 숨 쉬는 순간의 것이며, 죽음이란, 숨 쉬지 않는 것들의 시간이다. 숨 쉬는 순간의 삶은 찰나(刹那)이며, 숨 쉬지 않는 죽음의 시간은 영원하다. 시간은 숨 쉬지 않는 호흡 속에서 삶의 시간을 잠들어 버리게 한다.

인간의 일생에 있어 사는 것은 죽는 것의 문제를 넘어선 가치의 문제이다. 삶의 가치는 호흡의 길이를 넘어 가치의 깊이로 환원된다. 가치란 그 대상의 차이를 말하는 것인데, 삶의 가치는 한 인간의 깊이를 말한다. 물질 사회에서 삶의 가치는 물질의 가치와 혼합되어 본질이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깊이 있는 인간은 그 삶의 깊이를 빛의 세계로 드러내어 싱싱한 삶의 가치로 환원한다.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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