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심호흡] ‘김영란법’이 ‘피라미 사냥용’이 안 되려면
이태희 편집국장 | 기사작성 : 2016-07-29 17:09   (기사수정: 2016-07-2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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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


김영란법, 권력형 비리 근절에 도움될까?

세칭 ‘김영란법’이 9월 28일부터 시행되지만 그 실효성은 미지수이다. 이 법의 공식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금지된 금품수수 유형은 4가지이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넘기면 안 된다.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수수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을 한다. 동시에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의 부정청탁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안타깝게도 이 법은 그 이름에 걸맞게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구조를 도려내는 선봉장이 되기는 어렵다.

한국의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김영란법이 단속하려는 소소한 접대 행위에 있지 않다. ‘권력형 비리’에 좌절하기 때문이다.

권력형 비리는 큰 권력이 저지르고 또 다른 큰 권력이 감싸준다. 대한민국에서 큰 권력은 재벌가를 중심으로 한 경제권력, 검찰,법원 등의 법조권력,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정치권력 등이다. 경제권력은 돈을, 법조권력이나 정치권력은 이권이나 면죄부를 서로 주고받는 형식이다.


이권에 개입할 힘도 없는 기자와 사립학교 교사를 포함시킨 ‘김영란법’

이 점에서 볼 때 헌법재판소는 28일 우스꽝스러운 판결을 했다. 김영란법의 대상으로 언론사 기자와 사립학교교원을 포함시킨 조항을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헌재는 “언론과 교육이 국가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그 파급효과가 커 피해가 광범위하므로 공직자에 맞먹는 청렴성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조권력이나 경제권력에 비하면 기자나 사립학교 교사는 이권에 개입할 힘이 없다. 이권 개입 사례도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경제권력과 법조 권력에 의한 대형사건들이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히려 ‘공적 영역’이 아닌 ‘시장’ 종사자들인 기자나 교사들의 자유권 침해 소지가 있다. 긴급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헌법적 권리가 부정당하는 나쁜 선례가 될 성싶다.

예상되는 유일한 효과는 ‘피라미 사냥’이 활발해진다는 점이다. 어떤 기자가 5만원 넘는 식사를 기업체 홍보관계자에게 대접을 받거나 사립학교 교사가 학부모에게 6만원대 선물을 받은 사실을 적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영란법이 한국인을 불평불만자로 만드는 권력형 비리 잡기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만 재확인시켜준다.


진경준 게이트의 금품수수 방식은 ‘김영란법’ 머리 위에 존재

김영란법이 권력형비리 근절과 거의 무관하다는 점은 진경준 게이트만 따져봐도 금방 드러난다. 김영란법은 금품수수와 부정청탁을 금지하고 있다. 권력형 비리를 근절하려면 부정청탁 관행을 뿌리뽑아야 한다. 김영란법도 부정청탁을 근절시키기 위해 금품수수 상한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영란법이 규제하는 4가지 유형의 금품수수는 뇌물수수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진경준 검사장과 무관하다. 진 검사장의 금품수수 방식은 김영란법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다. 그가 과거에 4만원짜리 식사대접을 받거나 경조사비 15만원을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만약에 감사원 직원이나 경찰이 그런 소소한 혐의로 진 검사장과 같은 거물을 조사하겠다고 나선다면 ‘너 제정신이냐?’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진 검사장의 비리행태는 김영란법의 사각지대에서 정교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우선 넥슨의 김정주 대표는 진 검사장에게 넥슨의 비상장주식을 공짜로 넘겨서 12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기도록 해줬다.

진 검사장은 거액을 챙긴 것도 부족했는지 고급 승용차도 넥슨에게 빌려탔다. 넥슨홀딩스 명의로 리스한 제네시스 차량을 무상으로 타다가 나중에는 명의 인수비용으로 현금 3000만원도 챙겼다.

김정주 대표로부터 해외여행 11건에 대한 비용도 받아냈다. 진 검사장 가족과 김대표 가족이 동반 해외여행을 가면 김 대표가 결제했고, 진 검사장 가족만 단독으로 여행을 가면 김 대표가 사후 보전해주는 방식이었다.

진 검사장이 저지른 권력형 비리 중 가장 악취가 심하게 나는 건은 처남 강모 씨 명의로 이권을 챙긴 것이다. 강모 씨는 청소용역업체를 급조해 한진그룹 계열사로부터 100억원 대의 일감을 따냈다. 진 검사장이 한진그룹에 압력을 행사한 결과이다.

그러나 검찰은 넥슨의 김 대표나 한진그룹이 진 검사장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이유는 캐내지 못하고 있다. 돈이 왔으면 부정청탁이 가는 게 상식인데,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물론 김영란법이 대가성을 입증하지 않아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김영란법이 발효된 상태라면 진 검사장이 넥슨이나 한진그룹을 위해 행한 부정청탁을 밝혀내지 못해도 형사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권력형 비리의 청탁구조 규명에 무관심

그러나 김영란법이 권력형 비리의 청탁구조를 규명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역설도 성립된다.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현행 사법체제 아래에서 김영란법이 소리만 요란했지 피라미를 잡는 역할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정치권력, 법조권력, 경제권력 간의 견고한 유착구조를 자랑한다. 검사나 판사는 옷을 벗으면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의 고문 변호사로 취업한다.

이때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린다. 로펌에 있으면 대기업의 큰 일감을 따내서 돈을 벌고, 대기업에 재직하면 거액의 연봉을 오너로부터 지급받는다. 인간의 생리상 유착과 비리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도 로펌에서 효성그룹 형제간 분쟁을 맡았다가 다시 청와대에 입성한 케이스이다. 시장에서 경제권력의 편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공적영역의 권력자로 재등극한 것이다. 이런 ‘법조인력 유통구조’는 우 수석에 국한된 게 아니다. 비일비재하다. 공정성을 상실할 위험성이 상존하는 셈이다.

결국 김영란법은 권력형 비리를 못잡는다. 김영란법은 이런 ‘유통구조’에 대해 관심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 법을 제안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훌륭한 인물이지만 법조권력의 일원인 탓일까?


검찰권력에서 독립된 ‘공수처’ 신설 안되면 김영란법은 ‘요란한 빈수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와 같은 독립기구를 신설하면 딜레마는 해결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공수처’ 신설을 추진중이다. 국회의원, 판사 및 검사,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대통령 친·인척 등의 비리혐의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는 기구이다. 이 기구는 검찰이나 대통령 직속기관이 아닌 독립기관이 된다.

정치권력, 법조권력, 경제권력 간의 3각 유착구조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기관이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권’을 명분으로 내세운 검찰권력의 강력한 반발을 돌파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전례가 있다. 김대중 정부가 1998년 공수처 설립방안을 적극 검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그 방안을 보도하자 검찰과 국정원이 발칵 뒤집혔다. 집권 여당인 국민회의의 핵심 실무자였던 남궁진 제2정조위원장은 동교동계 실세로 분류됐지만 검찰권력의 반대를 돌파할 염두도 내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독립기관인 ‘공직자부패수사처’를 신설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이 공식 반대 의사를 표명해 무릎을 꿇었다.

한국의 법조권력은 최근 드러난 홍만표, 진경준, 우병우 등과 같은 거물 법조인들의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인해 최소한의 신뢰마저 상실했다. 국민들은 법조권력을 향해 조롱어린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들에 따르면 공수처 신설에 대해 응답자의 70%가 찬성의견을 냈다.

법조권력이 오명을 벗고 그 정당성을 회복하려면 길은 하나이다. 제아무리 결백하다고 외쳐도, 그런 비리는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강변해도 믿을 사람은 없다. 스스로 제살을 도려내는 데서 국민적 신뢰는 다시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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