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노예(奴隸)의식에서 주인(主人)의식으로
윤재은 대기자 | 기사작성 : 2016-07-11 09:38   (기사수정: 2016-07-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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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노예(奴隸)의식에서 주인(主人)의식으로’ - ‘생산(生産)에 관여하는 노동만이 실체의 생산자라 할 수 있다.’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으로 제기된 실체의 문제는 존재의 문제를 넘어 ‘생산에 대한 주체의 질문’이다. 생산이란 노동을 통해 무엇인가를 생산해 내는 것인데, 생산에 관여하는 노동만이 ‘실체의 생산자’라 할 수 있다. 생산된 실체의 주인이란, 생산된 것의 원인이며, 그것이 있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노동은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 생산해내는 생산의 주체적 활동이며, 고귀한 과정이다.

신은 말(Logos)을 통해 세계를 만들었다. 신의 말씀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는 노동의 땀이 배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6일간의 노동은 힘든 노동이었으며, 하루를 쉬어야 할 정도의 노동이었다. 따라서 신의 속성을 담고 있는 창조주도 노동을 통해 생산에 참여한 후 휴식을 취하셨다. 그리고 신은 자신의 노동에 의해 창조된 실체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의식이 ‘주인의식’이다.

전지전능한 신의 노동에서 얻어지는 자연의 모든 생산적 실체는 신의 것이다. 왜냐하면, 신의 땀과 노력으로 세계는 생산되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주인은 결국 신인 것이다. 신 앞에 한없이 나약하기만한 인간이 창조적 실체인 신에 의지하는 것은, 이 세계의 주인이 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생산의 원인이며 세계의 주인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신의 생산적 관계와 다르지 않다. 인간의 땀방울과 노동으로 만들어진 생산 대상은 생산에 참여한 자가 주인이다. 생산자는 자신의 노동과 땀방울로 대상을 만들고 그 결실을 통해 세계를 이끌어간다. 이처럼 생산자의 의식이 대상의 주인이 될 때 이것이 ‘주인의식’이다.

만약, 농부가 밭을 갈아 감자를 생산해 낸다면, 생산된 감자는 농부의 것이다. 농부는 자신의 땀과 노동을 통해 감자의 생산에 참여하고, 감자는 생산의 단계를 거쳐 실체화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산된 감자는 농부의 소유가 되고, 농부는 자신의 소유인 감자를 팔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다. 세계의 주인이 신인 것처럼, 감자의 주인은 농부이다.

이처럼 생산의 주체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주인의식의 세계’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는 생산의 주체가 주인이 되는 세계와 사뭇 다르다. 그것은 자본이 생산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모든 생산의 대상을 자본의 가치로 평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의 주체가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본의 주체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이 주인이 되는 세계에서는 생산의 주체인 노동은 주인의식으로부터 소외받게 된다. 소외받은 노동은 감자의 주인에서 감자의 ‘생산자’로 전락한다. 주인의 역할에서 생산자의 역할로 전락한 농부는 자신의 노동에 대해 가치를 평가 저하시켜버린다. 왜냐하면, 농부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생산성의 고귀함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인은 자신의 의지보다 사회의 시스템과 거대한 자본의 위력 때문이다.

노동과 생산은 고귀한 것이며, 생산적 사회에서 꼭 필요한 활동이다. 하지만, 노동의 가치를 모르는 탐욕자의 눈에 노동은 착취의 대상이 된다. 적정한 노동의 대가보다 값싼 임금을 통해 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는 탐욕자의 눈에 노동은 착취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생산의 실체인 생산자보다 자본을 투자한 자본가가 승리를 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예의식의 생산자는 그러한 처지를 자신의 무능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노예적 삶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응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깨어있는 주인의식은 그러한 사회적 현실을 극복하려고 한다. 정당한 노동과 생산을 통해 적정한 이익이 보장되는 사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노예의식에서 주인으로의 의식은 깨어있는 자만이 획득할 수 있는 의식이다.

사회는 공동체이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노동가치에 대한 관리부실로 사회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생산에 참여한 생산자가 자신의 노동대가를 적절히 받고, 자본을 투자하는 자본가가 자신의 투자비용을 적절히 받는다면, 이러한 사회는 이상사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한 자본의 비율이 노동과 생산의 가치보다 과도하게 많게 되면, 그 사회는 불평등한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Plato)은 국가론에서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소비하는 공산사회를 이상국가의 틀로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은 인간의 탐욕을 모르는 이상적 생각일 뿐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사회는 신분사회로서 언제나 신분의 차이가 존재했다. 강한 자가 생존의 법칙에서 항상 상위의 그룹에 들어가고, 약한 자는 자신의 노동과 생산을 적절히 평가받지 못하는 하위계급에 속해 있었다.

이러한 신분의 차이는 민주사회에서 타파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의 내면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도 자본과 권력에 따라 이러한 경향이 조금씩 남아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차별과 신분제도는 반드시 없어져야할 편견이다.

인간이 모두 평등하고 행복한 이상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노동과 생산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는 사회이어야 한다. 그리고 계급과 신분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사회이어야 한다. 노동은 생산의 원인이며, 생산은 삶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념의 논쟁이었던 사회주의 이론의 창시자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는 불평등한 사회의 구조 속에서 주인과 노예의 의식을 보았다. 그는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가 노예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의 노동 가치를 보지 못하고, 주인에게 의지하는 노예의식을 보았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불평등한 현상 속에 사로잡힌 노동자들의 삶을 보았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들의 노동에서 얻어진 생산 의식을 보았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외침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라, 노동과 생산의 가치에 대한 부르짖음이었다. 노동의 가치로 얻어진 생산의 가치는 땀 흘려 일한 그들에게 있다는 부르짖음이었다. 마르크스가 바라본 노동과 생산은, 사회에 있어 고귀한 열정이며, 사회의 구심점이었다. 노동이 없이는 생산이 가능하지 않고, 생산이 없이는 인간이 살수 없다는 것을 마르크스는 알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생산의 대가가 노동자에게 돌아가기를 바랐다.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은 각자의 역할에 맞는 노동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자신이 투자한 노동의 대가는 적절히 보상받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노동의 정당한 대가가 없는 사회는 불안사회가 되고, 분노사회가 된다. 이러한 분노는 사회의 불안을 야기하며, 개인의 파괴를 넘어 가족과 국가의 파괴를 초래하게 된다.

국가는 노동의 가치가 살아있고, 적절한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지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땀 흘려 일하는 생산자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노예의식에서 벗어나 주인의식으로 탈바꿈해야 하며, 자본으로 부를 축적한 사업가들은 공평하고 정당한 분배를 통해 사회의 리더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요구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공동체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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