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칼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25時 (38) 구월산 유격대 女將軍 ‘이정숙’

조영신 기자 입력 : 2016.07.06 11:36 |   수정 : 2016.07.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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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 맨위쪽부터 박근혜 대통령, 버지지아 라지 로마시장,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 메르겔 독일총리, 대처 전 영국총리, 골다메이어 전 이스라엘 총리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후 65년이 지난 2013년 2월25일에 최초로 여성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다.

금년 6월엔 2,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에서 사상 처음으로 서른일곱살의 버지지아 라지가 여성 시장으로 선출되었고, 5월20일에는 지난 1월 대만 총통선거에서 승리한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주석이 타이완의 14대 총통으로 취임하여 당나라 황후였다가 황제에 오른 측천무후 이래 중화권 첫 여성 지도자가 되었다.

그 밖에도 1953년 몽골의 수바트린 얀즈마가 대통령에 취임해 현대 세계 최초의 국가 수반이 된 이래 인도의 간디, 이스라엘의 골다메이어, 영국의 대처총리,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 유명한 여성들이 국가 지도자로 선출되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 지도자뿐만 아니라 6·25남침전쟁에서도 게릴라전을 펼치며 서해무장대를 조직, ‘구월산 유격대 女將軍’으로 불린 故 이정숙도 있었다.

그녀는 2012년 2월 국가보훈처가 선정하는 ‘이달의 전쟁영웅’에 여군으로 처음 선정된데 이어 6·25를 앞두고 국방부가 주는 충무무공훈장 수훈자로 결정됐다.

6·25남침전쟁 당시 구월산 유격대를 창설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남편 故 김종벽 대위에 이어 부부가 동시에 일반적인 공로훈장이 아닌 무공훈장 수훈자로 결정된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고 부부무공훈장 수훈은 전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사례이다.

구월산 유격대 女장군 이정숙은 1922년 2월 함흥출신으로 6·25남침전쟁 직전 공산군 손에 부모와 남편을 잃었다. 본인도 복역하다가 탈출에 성공하여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서해무장대를 조직, 무장대원 70여명과 농민군을 진두지휘하여 북한군과 싸웠다. 이후 서해무장대는 김종벽 대위가 이끄는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하였다.

일명 동키 제2부대로 불린 구월산 유격대는 동년10월 중순,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과 이도면 등의 반공청년들로 조직된 연풍부대를 모태로 하여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의 김종벽 대위가 후퇴 중 반공청년들의 자생적 무장조직을 규합한 최초 150여명으로 1950년 12월7일 창설한 유격대이다.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한 뒤 이정숙은 김종벽 대위의 보좌관 직책을 맡아 다양한 특수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특히 1951년1월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였고, 이외에도 월사리 반도 상류작전, 어양리 지역 상륙작전 등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전쟁중에 육군참모총장 표창도 받았고 “구월산의 여장군”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 ‘군번 없는 女전사’들과 이정숙(오른쪽) 여장군 [사진=국가보훈처, KBS]


여성 유격대의 상징으로 꼽히는 이정숙 구월산 여장군의 활약상은 1960년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바 있으며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서도 생생하게 그려져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나, 최근 보수와 진보의 정치논쟁과 보이지 않는 세력의 음모에 의해 전쟁영웅들의 활약상은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구월산 유격대와 더불어 백령도를 근거로 반공유격전을 펼쳤던 일명 “8240동키부대”의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윤보선 대통령이 1961년 8월 한국일보 사장 장기영의 협조를 받아 백령도에 “반공유격전적비”를 세웠던 것이다.

제 8240 동키부대는 황해도 일대의 마을 청년들이 스스로 결사대를 조직, 이름도 계급도 없는 유격대가 되어 마을을 지키고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중공군과 싸우고, 인민군들과 거의 맨손으로 싸운 구월산 유격대에 감동한 미군이 이들이 지낼 수 있는 막사와 싸울 수 있는 무기를 공급하면서 조직한 부대이다.

따라서 구월산 유격대는 그때부터 무소속, 무계급의 유격대가 아닌 제 8240부대 동키부대 소속이 되었고, 1951년 초에는 2,500명으로 늘어났고 휴전 직후 해체될 때까지 800명 규모를 유지했다.

그들은 생명을 바쳐 각종 유격전투를 하는 동안 적 사살 4,000여명 생포 57명의 놀라운 전과를 올렸으며, 1954년 백령도로 철수하기 전까지 아군과 연합군들의 사기를 올리고 작전수행에 큰 시너지를 제공했다.

하지만 지금의 옹진군 백석면 형제 바위가 있는 비산곶 전투에서 이들이 탄 배가 적 포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175명 중 171명이 전사하고, 백령도를 사수하기 위해 싸우다 결국 516명이 목숨을 바친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그런데 정말 더 가슴 아픈 것은 이러한 분명한 역사가 존재하지만 구월산 유격대의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보상 또한 미흡하다는 점이다.

세월호 사건에 따른 희생자 1명당 10억원에 가까운 보상금이 주어졌다고 한다. 10대 아직 꽃봉오리도 되지 못한 채 어른들의 잘못으로 희생돼야만 했던 참사는 국민 모두의 아픔이었다. 다시는 이런 후진국형 사건이 발생되지 않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 모두와 국회의원 전원이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10억원 가까이 보상을 했다.

그렇다면 2010년도 천안함 폭침사건 때 전사한 아군과 가족들에게는 얼마의 보상이 주어졌는가?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1인당 3천만원 정도라 한다.

현재, 구월산 유격대 박부서 회장의 말에 따르면 “구월산 유격대 생존자들에게는 정부에서 1인당 16만원을 지원하고 있다”고 하며 “과연 이것이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전사, 혹은 생존자들에게 주는 합당한 보상이냐..? ”라며 대부분 말도 안 되는 탁상행정이라고 분개하였다.

이들의 희생덕택에 오늘의 평안을 누리는 우리들은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서 정부와 국회 그리고 언론들은 이러한 현실을 널리 알리고 적정한 보상이 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편, 필자가 국방장관 보좌관실에 근무하던 시절인 2001년에 당시 김동신 국방부장관은 정책적으로 판단하여 국군 최초의 여성장군을 배출했다. 바로 간호사관학교 교장을 지낸 양승숙 장군이다.

이후 매년 단위로 여성장군이 계속 배출되었고 전투병과에서는 2010년에 최초로 손명순 장군이, 법무병과에서는 2011년에 이은수 장군이 진급을 하였고, 우리군은 세계적으로 여성 지도자들의 영역확대에 발맞춰 매년 2-3명의 여성장군을 갖게 되었다.

2014년 10월에는 전투병과 여군으로는 두 번째로 김귀옥 대령(여군31기)이 장군이 되었다. 이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한다. 부부무공훈장 수훈자인 김종벽·이정숙처럼, 김귀옥 장군은 남편인 이형석 소장(육사41기)과 함께 한국군 역사상 최초의 “부부장군”으로 탄생한 것이다.

아마도 6·25남침전쟁 시 이정숙 구월산 여장군의 전통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여성들도 대통령으로부터 여성장군, 각 정부 기관장, 여성 기업체장 등 많은 분야에서 멋있는 대활약을 하게 된 것이다.

모성애를 가진 여성들이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 남성들보다도 더 세심한 배려심 때문에라도, 앞서 언급한 전쟁영웅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도 더 구체화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마침, 이번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구월산 유격대 여성유격대원으로 조국을 위해 싸웠던 박애초(78세)씨 등 50여명에게 “호국영웅기장”을 수여하고 전쟁기념관에서 6·25남침전쟁 참전 유공자 위로연을 개최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세상이 아무리 평안해도 전쟁을 잊고 있으면 국가에 위기가 닥친다는 뜻의 사마법에 나오는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는 매년 치러지는 구월산 유격대 추모행사시 제단 앞에 놓여있는 액자(박정희 대통령 휘호)에 적혀있는 명언이다.

우리 국민들은 북한의 김정은이 여섯번째 실험만에 ICBM발사를 성공했다고 공언하고, 최고인민회의에서 셀프 국무위원장으로 추대되어 1인 독재체제구축을 완료한 이 시점에, 다시 한번 더 구월산 여장군 이정숙을 비롯한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충분한 보상 노력과 국가위기에 철저히 대비해야 함을 명심하고 각오를 다져야 한다. 끝.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현)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편집자주 : 본 칼럼은 전문가의 특정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뉴스투데이의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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