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바다의 경제(Sea’s Economic)’를 모르면, 경제를 말하지 말라!
윤재은 대기자 | 기사작성 : 2016-06-02 15:45   (기사수정: 2016-06-0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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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바다의 경제(Sea’s Economic)를 모르면, 경제를 말하지 말라!’  - ‘독식(獨食)의 경제를 넘어 상생(相生)의 경제로’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이러한 질문은 생명을 갖는 모든 생태계의 본질적 질문이다.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살아있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이처럼 먹고, 사는 문제는 삶을 소유하는 모든 생명체의 기본 욕구이며, 필연적 욕망이다.

인간사회에 있어 생존의 문제는 경제의 문제와 집결된다. 경제란 자본을 통해 생존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서, 필연적으로 노동과 생산에 의해 경제가 발생된다. 노동과 생산은 판매를 통해 잉여가치를 만들어내고, 잉여가치는 자본주의의 구심적 동력이 된다.

‘경제’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며, 자본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기반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활동은 치열한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자본의 욕구는 생산과 분배의 욕구를 넘어 축적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축적의 욕구는 욕망이 되고, 욕망은 갈등이 된다. 인간이 축적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는 것은 현재에 대한 욕망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나온다.

인간의 욕망은 자본사회에서 두 가지로 발전한다. 하나는 ‘공유하는 욕망’이며, 다른 하나는 ‘소유하는 욕망’이다. 공유하는 욕망은 자본의 경제에서 서로의 배려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공유의 경제학에서 배려는 자신에 대한 절제와 타인에 대한 배려를 통해 함께 사는 사회로 발전한다.

그러나 소유하는 욕망은 나에 대한 배려만 있을 뿐 타인에 대한 배려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욕망의 상태에서 타인은 경쟁의 대상일 뿐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사회는 갈등의 사회이며, 적대적 사회이다.

‘현대 사회는 생존사회이다.’ 생존은 삶을 위한 최소한의 자기욕구이다. 자본주의의 경제에서 자본은 생존이며, 삶의 도구이다. 최소한의 인간은 최소한의 삶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이며, 정당한 요구이다. 국가는 이러한 삶의 요구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국가의 존립목적이 구성원에 대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유지시켜주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경제정책에서부터 시작된다. 국가는 국민경제의 밑바탕이 되어야 하며, 국민은 그 밑바탕에서 경제활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국가의 경제 정책이 편중되거나 정의롭지 못하면 그 국가는 갈등국가가 되고, 국민의 행복지수는 저조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공평한 경제, 희망이 있는 경제, 함께하는 경제’가 되어야 한다.

공평하고, 희망 있고, 함께하는 경제가 되기 위해선 ‘바다의 경제학(Sea’s Economic)’을 배워야 한다. 지구표면의 70.8%를 차지하는 바다의 경제는 육지의 경제와 사뭇 다르지만 그 근본은 하나이다. 바다는 살아있는 생태계를 유지하면서도 3단계의 경제체제가 자연의 섭리를 통해 잘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바다경제의 1단계는 ‘플랑크톤 경제(Plankton Economy)’이다. 바다경제의 최소단위인 플랑크톤은 바다 생태계의 기초경제이다. 바다에 서식하는 모든 생태계는 플랑크톤의 먹이사슬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바다 경제의 밑바탕이 되며, 상위 포식자인 피시(fish)의 먹이가 된다. 바다에 피시가 살 수 있는 것은 플랑크톤이 있기 때문이다. 플랑크톤은 바다경제의 생태계가 유지되는 원인이다.

육지경제의 플랑크톤은 노동자이다. 생산의 주체가 되며, 모든 생산의 기초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육지경제의 기초가 된다. 육지경제의 모든 생산과 분배는 이들의 땀방울 수만큼 생산되고 분배된다. 이들은 육지경제 생태계의 근본이며, 원인이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건에도 만족하며, 삶을 살아간다. 이들의 경제적 활동요구는 인간의 기본권에 들어가는 최소한의 요구이다. 그리고 이들의 노동은 고귀하고 신성한 것이다.

바다경제의 2단계는 ‘피시 경제(Fish Economy)’이다. 물고기들은 바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중 하위생태계인 플랑크톤을 통해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플랑크톤의 작은 경제체계엔 관심이 없지만 그렇다고 고래나 상어와 같은 상위포식자의 그룹에도 관심이 없다.

이들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바다 속의 중심 세력이 되어 플랑크톤을 흡수하고, 상위포식자의 생존을 유지시킨다. 플랑크톤의 죽음을 통해 얻은 피시의 삶은 고래의 삶이되고, 바다는 끊임 없이 순환의 경제체계로 살아간다.

육지경제의 피시(Fish)는 샐러리맨(Salaryman)들이나 중소기업들이다. 이들은 육지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며, 국가경제의 주춧돌(Foundation stone)이다. 하지만 이들은 임금 노동자의 자리를 탐내지 않고, 그렇다고 슈퍼부자(Super rich)를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자본주의 경제체계 속에서 주어진 자리에 만족하며, 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룹이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목표가 있고, 안정과 성공이라는 두 갈래의 길을 꾸준히 가는 그룹이다.

바다경제의 3단계는 ‘고래 경제(Whale Economy)’이다. 이들은 물고기이 아닌 포유류이지만 바다생활을 하면서 최상위의 포식자에 들어간다. 이들은 몸집이 너무 커서 엄청난 물고기를 먹어야 산다. 물고기가 플랑크톤을 먹는 양은 비교도 할 수도 없다.

이들은 엄청난 피시(fish)들의 희생을 통해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로 살아간다. 이들의 생태계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고래가 아니라 피시이다.

육지경제의 고래(Whale)는 대기업이다. 대기업은 국가경제의 모든 것을 좌우할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다. 이들의 경제활동은 개인의 경제활동을 넘어 국가 경제까지를 좌우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그룹(group)군에 들어간다.

이들은 소수의 그룹 군을 가지고도 다수의 그룹을 리드한다. 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육지경제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이들의 잘못된 판단은 수많은 피시와 플랑크톤에게 삶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육지와 바다의 3가지 경제군은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만족하며, 약자에 대한 배려와 함께 성장해야한다. 만약 고래와 같은 포식자가 자신이 배고프다고 플랑크톤과 피라미 같은 물고기를 다 잡아먹는다면, 바다의 생태계는 혼란을 휩싸이며, 피시(Fish)류 들의 멸종을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피시의 종말은 결국 상위포식자인 고래의 종말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

플랑크톤과 피시(fish)가 존재하지 않는 바다경제의 생태계를 생각해보라! 아무리 최상위의 포식자인 고래라 해도, 먹지 않고는 살수 없다. 그들의 몸 규모는 너무 커서 작은 플랑크톤이나 피라미로는 배를 채울 수 없기 때문에, 피시의 종말은 결국 자신의 종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래의 종말에도 작은 규모의 플랑크톤이나 피시는 결국 살아남는다는 것이 바다경제학의 교훈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작게 먹고도 살아남는 법을 자연으로부터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기업이 혼자 살겠다는 욕망으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의 영역에 진출하여, 그들의 생존수단을 먹어치운다면, 처음에는 그들의 배가 부를 수 있지만 그 결말은 결국 대기업의 피해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기업은 한번 잘못된 길을 걸어가면 엄청난 경제적 파장을 가져오지만 소규모의 경제주체는 피해를 최소화해 다시 살아남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소상공인이 몰락한 사회에서는 중소기업이 몰락하게 되고, 중소기업이 몰락한 사회에서는 대기업 자신의 몰락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바다경제에서 배웠던 배려와 만족의 생태계가 바다경제의 생존원인이 되었던 것처럼, 육지경제에서도 각자의 경제규모에 맞는 경제활동은 육지경제의 생태환경을 유지시키는 기초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큰 기업이 중간 기업의 영역을 탐내고, 중간 기업이 소상인의 영역을 탐내는 것은 육지경제계의 생태계를 망치는 것뿐 아니라, 국가경제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 조그마한 탐욕이 큰 화를 가져오는 것처럼 대기업은 대기업으로서의 영역에서 큰 크림을 그리고,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의 영역에서 국가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때, 그 국가는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국가가 될 것이다. 이러한 국가의 경제체계 속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땀방울을 흘릴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라! 가난에 허덕이거나, 삶이 무게가 무거워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우리는 국가에게 힘을 주었고, 국가는 그 힘을 우리 모두를 위해 적절히 사용하기를 바란다.

관념주의의 완성자 헤겔(Hegel)은 ‘힘의 의지’를 강조한다. 힘의 의지는 의식에서 나오며, 자기의식의 발현이 힘의 발현이 된다. 자기의식의 발현은 절대정신에서 가능하며, 국가는 절대정신의 기틀아래서 경제정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힘은 어디서 나오는 가? 국가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의 국가에게 힘을 담보 맡기어 보호받기를 원한다. 보호받고자 하는 모든 국민들을 위해 국가는 힘의 의지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정의로운 국가는 정의롭게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힘이며, 힘의 의지이다.

만약,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의 영역을 탐낸다면 국가는 힘의 의지로 그것을 통제해야하며,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희망이 없는 삶은 죽은 사회이며, 희망이 없는 국가는 망한 국가이다.

아름다운 지구의 별에서 태어난 우리! 내 한 몸, 내 한 가족 지켜 줄 수없는 국가라면, 그 국가는 국가의 역할을 포기한 국가이다. 광활한 바다에서 서로 배려하며 자신의 영역을 지켜나가는 저 위대한 바다의 경제를 배우라! 그리고 말하라! 국가는 서로의 배려를 통해 상생으로 나아가는 국민경제의 나침판이라고!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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