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인간(人間)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윤재은 대기자 | 기사작성 : 2016-05-17 15:34   (기사수정: 2016-05-1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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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인간(人間)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 “묻고도 답을 들으려 하지 않는 나, 듣고도 말하지 않는 너”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대상은 의심할 수 없는 실체이다. 세계의 모든 대상은 항상 공간적이며, 시간적이다. 공간과 시간 앞에서 모든 대상은 존재하는 것이며, 실체하는 것이다. 인간은 시간 앞에서 현재라는 대상이 된다.

현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실체이다. 만약, 현재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부정된 상태에서는 세상 모든 것은 부정된다. 헤겔(Hegel, Georg Wilhelm Friedrich) 은 말한다. 현재는 존재이며, 실체인 것이라고...

현재의 나는, 지금의 나이며, 세계의 나이다.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세계, 우주, 실체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세계는 스스로의 나에게 질문한다.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이 질문은 단순하다. 인간에게 삶의 가치를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눈먼 자의 세상에서 세계는 암흑이듯이, 삶의 가치를 모르는 자의 눈에 세계는 또 다른 암흑이다. 어둡고, 어두운 세계의 터널에서 빛의 상쾌함을 맛 볼 자 누구인가? 우리는 암흑의 그림자와 빛의 그림자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짧고도 긴 우리의 운명과 함께 한다.

삶은 선택하는 자의 것이며, 선택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삶의 가치를 시간의 가치에 둘 것인가? 아니면 삶의 가치를 물질적 욕망에 둘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세상에 있어 가치 있는 것은 그 가치의 무게를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 삶의 가치는 살아 있는 동안 빛나는 것이지 죽은 자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겨있지 않다.

세계의 어떤 거부(巨富)라도 이러한 세계의 원리에서 빗겨나갈 수 없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모두에게 삶의 시간은 공평하다. 삶은 시간의 가치에서 동일하고, 물질적 가치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물질적 가치로 판단한다. 시간이 물질이 될 때, 세계는 물질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고귀한 정신은 자기의식으로부터 벗어나 물질적 의식으로 바뀌어간다. 물질이 시간의 가치를 잠식해 가는 것이다. 이제 세계는 삶의 가치에 있어 물질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수많은 희생자를 통해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다. 물질과 의식의 전쟁에서 끝까지 생존할 자는 누구인가? 물질은 시간이 가면 소멸하는 것이며, 죽음을 통해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순수한 정신은 영원한 것이며, 불멸하다.

물질의 가치는 시간에 따라 잠들어 버리지만, 정신이 갖는 고귀한 의식은 영원히 잠들지 않는 우주와 같다. 신은 물질을 통해 실체를 만들지만 실체의 존재의미는 의식에 있는 것이다. 의식과 물질 앞에서 고개 숙이는 자들과 당당한 자들을 볼 수 있다. 고개 숙이는 자는 비굴하고 나약한 자이며, 당당한 자는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개척해가는 자이다. 삶의 가치는 자신의 의식에 있으며, 절대적 정신 속에서 신과 함께 있다.

국가, 사회, 자본이라는 구조 속에서 물질은 자본이고, 힘이다.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로 약속한 순간부터 인간은 물질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하지만 물질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능한 많은 물질은 사회인으로서 우리에게 안정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질이 과하면 의식은 안정에서 욕망으로 변해간다.

물질이 욕망이 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세계이다. 세계는 말한다! 우리의 앞에 두 개의 빛줄기가 있다고. 그 두 개의 빛 줄기중 하나는 희망과 행복의 빛줄기요, 다른 하나는 불행과 고통의 빛줄기이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빛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생겨나고 소멸한다. 헤겔(Hegel)의 힘의 의지는 이러한 세계 속에서 그 빛을 더 발한다. 의식의 힘! 그리고 절대 정신의 힘은 세계의 빛이고 희망이다. 희망의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의 그림자만 보는 인간은 세계의 시간이 암울함이지만, 헤겔의 정신으로 희망의 빛을 보는 사람에게 세계는 환희, 축복 그리고 은총이 된다.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세계의 나는 고독한 존재이고, 외로운 존재이다. 우주의 거대한 자연 속에서 세계의 이방인처럼 자신의 고귀한 존재를 모르고, 그저 살아있기 때문에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살아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이 우주와 자연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생각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인간은 그저 그렇게 사는 인간이 아니다. 생각하는 인간은 ‘삶의 의미’에 많은 무게를 두고 사는 인간이다.

생각하는 인간은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답한다. 나의 정신을 내 육체에서 떼어내어 나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육체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그리고 묻는 나는 대답하는 너에게 답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묻고도 답을 들으려 하지 않는 나, 듣고도 말하지 않는 너” 속에서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세계이며, 존재이다. 그것도,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이다. 세계는 나의 존재 속에서 현실이 되고, 실체가 된다. 세계는 말한다. 그대의 몸속에 흐르는 피의 흐름을 통해 고동치고 있는 삶의 가치를 찾으라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리는 아니라는 말처럼, 세계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절대적 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조그마한 것에 현혹되거나 흔들리지 말고, 당당하게 빛의 세계, 정신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그 곳을 향하는 우리의 걸음걸이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그 걸음걸이는 시간의 속도와 동일하다. 어떠한 폭풍우와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발걸음은 세계의 기지개가 되고, 희망이 되고, 빛이 된다.

세계여! 그대들이 그렇게 찾고자 했던 행복의 실체는 그대의 정신에 있으며, 순수한 의식의 절대정신 속에 깊숙이 매몰되어 있다는 것을... 그것을 구하는 자... 그대이며! 그것을 구할 자... 그대뿐이로구나! .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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