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셸링: 자기의식의 세계에서 자연은 ‘유기체적 무의식’이다.
윤재은 대기자 | 기사작성 : 2016-03-17 15:47   (기사수정: 2016-03-1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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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셸링 : 자기의식의 세계에서 자연은 ‘유기체적 무의식 이다.

- 자연철학은 삶의 가치를 높이는 ‘철학의 원리’이다.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삶의 하루하루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먹고, 자고 활동하는 시간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이러한 질문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스스로의 질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망각하고 자본화되어간다. 스스로의 주체가 무엇인지 모르고 ‘나는 자본 때문에 산다.’라고 외치고 있다.

자본은 삶의 수단으로 인간들의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 노동의 단위이다. 노동이란 인간이 최소한의 삶을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짐승들이 들판으로 나가 먹이를 사냥하는 것과 같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모든 짐승들은 생존을 위해 활동이 필연적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움직임에도 규칙이 있다. 인간처럼 많은 것을 축적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고,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움직임이다.

하지만 인간의 활동은 짐승의 활동과 다르다. 인간은 동물처럼 살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이 아니고, 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한 과다한 움직임이다. 인간은 신이 부여한 소중한 시간을 부의 축적을 위해 모두 사용해 버린다. 그렇게 축적된 부의 가치는 삶의 가치와 비례하지 않는다.

젊음의 열정을 부의 축적으로 다 소비해 버린 노년의 삶은 비참하고 참혹하다. 이러한 노년은 넘쳐나는 물질에 둘러싸여,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초조해하고, 불안해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두 손으로 그것들을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후는 ‘비참한 인간의 모습’이다.

자본에 대한 욕망은 시간 앞에선 부질없는 짓이다. 시간은 물질을 탐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지만 시간의 가치와 활용은 그것을 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현명한 지(智)자는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고 삶의 가치를 질(質)에 두는 반면, 욕(慾)자는 끝없는 물질을 추구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삶은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그 가치도 다르다. 그것의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물질주의로 치닫는 현대사회에서 삶의 지혜를 사고, 파는 은행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의 가치를 은행에 맡겨놓고 그 가치를 가장 소중하게 사용하는 지혜의 은행은 자본을 담보로 성장하는 은행보다 훨씬 더 인간에게 가치 있는 은행일 것이다.

독일의 자연주의 철학자 셸링은 지혜의 은행과 같다. 그는 낭만주의에 근접한 자연철학자로 독일의 관념론을 완성하는데 지혜를 팔았다. 그가 판 지혜는,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셸링의 자연철학은 자본주의 철학과 달리 정신에 그 깊이가 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정신에 기반 하는 것처럼, 자연 상태와 자본 상태에서 어떠한 길을 갈 것인가는 자신의 의지와 정신에 달려있다.
정신과 자연의 동일성은 셸링에게 신성(神性)으로 나타난다. 셸링은 이러한 철학적 기반을 철학적 사유의 제1근본 원리 속에서 발견한다. 셸링에 있어 자연은 무의식적 지성을 발견하는 장이였으며, 자연발생의 대상에 대한 최고의 목표는 자각적 정신이다.

자각적 정신의 존재로서 인간은 실체하는 것이고, 정신은 자연의 대상으로부터 하나이다. 자연으로부터 창조된 무의식적 실체에 대한 신의 개념은 의식적 지각의 정점으로서 정신의 개념이 설정된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유기물은 각각의 원질에 따라 자연으로부터 스스로 산출되어진다. 우리의 정신도 자연의 산출과 같이 지식의 기반이 되는 인식은 정신을 통해 수많은 판단이 된다. 하지만 우리 자아의 바깥에 있는 인식은 용납되지 않는다.

시간과 현상에 따라 사라지는 것은 인식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아는 자연 속에서 무의식적 자아를 통해 무의식적 정신이 된다.

셸링이 주장하는 자연철학은 경험적 지각이나, 인식이 아니고 정신적 실재론이다. 이러한 지식의 실재적 주장은 관념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관념론이면서도 실재론이라 할 수 있다. 실체적 자아에 있어 피히테의 주장처럼 자아는 실체를 가지지 않으며, 순수한 활동성이었다.

정신이 갖는 무의식적 자아는 실체를 넘어선 정신이며, 이것은 무의식의 세계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무의식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실체의식은 그 어떤 것 속에 존재한다.

셸링의 자연철학은 동일성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정신과 인간의 밖에 존재하는 자연과의 동일성은 셸링철학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형이상학적 사상이다. 실체의 논쟁이 되는 자연의 대상과 우리들의 생각에 존재하는 대상의 자아는 하나의 동일체이다.

자연과 정신의 두 가지 조건은 본질적으로 하나에서 출발하는 것으로서 자연의 외부에 의해, 혹은 정신의 내부에 의해 한계 지워지지 않는다. 실체에 대한 절대적 진리는 ‘정신의 자연’과 ‘자연의 정신’에 동일하게 내재되어 있다. 

셸링은 정신의 무의식적 창조활동을 주장한다. 자연은 자아의 관념적 산출력으로부터, 무반성적인 상태에서, 어떤 무의식적 힘으로부터 발생된다. 정신의 창조적 원리는 자아의 인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신은 인식을 넘어 의식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선험적 세계이다.

자연은 빛의 본질처럼 실체를 담고 있다. 만물의 생산에 근원적 힘이 되는 능산적 자연은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시작되었지만 셸링은 이를 실체의 범신론만으로 보지 않고 자연의 대상과 정신의 대상이 하나라는 선험적 세계 속으로 끌어들였다.

셸링의 자연은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이 세상의 빛 아래 존재하는 모든 자연의 대상과 대상의 실체인 정신을 통해 오성으로 깨닫게 한다. 살아있는 유기체적 자연이 세계의 빛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는 하나의 정신으로 지배되어야 한다.

셸링은 스피노자의 능산적 자연에서 정신의 실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셸링이 말하는 능산적 자연의 정신은 칸트와 피히테의 철학적 사유와 같은 길을 간다. 실체의 판단이 되는 객관성은 정신의 내부에 그리고 물체의 외부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두 개의 것들이 분리되어 생각되어진다면, 실체의 영역은 영원히 파헤치지 않는 무덤이 될 뿐이다.

셸링의 정신에서 나오는 영원한 내적 대상원리는 플라톤의 이데아세계의 원형을 따른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정신적인 형상의 원리이지만, 셸링의 이데아는 자연과 정신이 하나로 합쳐진 실재적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실체적 이데아는 현상방식에 따라 신의 정신이 자연의 대상을 통해 인간의 인식 속에 들어온다. 신의 존재는 인간의 정신 속에서만 인식되고, 실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을 빌려 존재한다. 이러한 관계들의 고리 속에서 정신적 관념의 근거는 뿌리를 내린다.

유한한 것을 통해 무한한 것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그이 이론은 선험적 관념의 뿌리에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모든 사물이 갖는 존재의 공통된 속성은 신안에 있고, 신의 존재방식은 자기의식에 있으며, 절대자의 존재와 실체의 속성이 동일하게 인간의 정신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과학으로 알게 된 모든 관념의 세계가 반드시 기계론적으로 일치한다고 할 수 없다. 과학의 한계는 과정과 결과가 인식된다는 것이지, 그것이 모든 진리의 결과라 말할 수 없다. 과학은 언제나 결과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기체로서 자연은 그 시작을 자연의 실체로부터 시작하였기 때문에 대상의 자연과 정신의 자연을 하나의 영혼으로 묶어두고 그 속에서 절대자의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유기체는 사물의 원리이며, 자연의 원리이며, 존재의 원리이다.

셸링은 정신이 세계에서 어떻게 자연의 생명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대상의 물질에 정신을 불어넣을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이러한 질문은 인간의 실체에 대한 질문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으로서, 합리적 이성이나, 경험적 이성의 모든 것에는 우리의 관념을 형성하는 보편자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

자연 속에서 정신은 창조적인 에너지이며, 무의식적 정신이다. 자연의 모든 산물은 무기적 정신이 자기의식을 향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며, 이러한 길이 순수한 관념의 실체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오늘도 짧은 시간이나마, 먼 하늘을 바라보며 지나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있기를 바래본다.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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