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페르시아 왕자의 귀환, 저유가 저주 ‘봉인’ 풀리나

정승원 기자 입력 : 2016.01.19 13:45 ㅣ 수정 : 2016.01.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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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로 국제유가는 더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란의 젊은이들이 지난 14일 이란핵 타결과 함께 이란경제에 대한 제재해제가 결정되자 거리로 뛰쳐나와 국기를 휘날리며 자축하고 있다. [출처=뉴스야후닷컴]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페르시아 왕자’의 복귀. 그것도 37년만이다. 국제사회의 공식적 경제재제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맞서 유엔안보리가 제재를 결의한 2006년 7월31일이 시작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79년 이란의 회교혁명 성공을 계기로 미국과 대립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란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됐다.

그후 이라크와의 8년 전쟁, 알카에다 테러지원,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 등으로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했으나 지난 7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극적인 핵협상 타결을 계기로 이란은 국제사회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이란의 복귀는 8000만명의 거대시장이 열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분석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석유매장량 세계 4위의 가세로 인한 유가하락 공포에 더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브렌트유와 미국서부텍사스유(WTI)는 18일(현지시간) 시장이 열리기 무섭게 폭락해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특히 브렌트유가 30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04년 2월이후 약 12년만이다. 아시아 증시 역시 동반 폭락했다.

경제제재 해제로 봉인 풀린 이란 원유수출

이란은 현재 러시아, 미국, 사우디에 이은 매장량 기준 세계 4위의 석유부국이다. 그동안 경제제재로 공식적으론 원유수출이 금지됐으나 이번 해제로 원유수출이 가능해졌다. 비잔 남다르 장게네 이란 석유장관은 “제재가 해제되면 하루 60만 배럴을 추가 생산하고 연말까지 일평균 최대 150만 배럴까지 늘릴 것”이라고 수차례 밝혀왔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이란의 원유생산량은 하루 280만 배럴에서 최대 430만 배럴까지 증가하게 된다. 이란은 원유수출이 막히면서 그동안 재고만 6000만 배럴을 쌓아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물량폭탄은 가뜩이나 불균형에 시달리는 원유수급에 기름을 부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보다 더한 국제유가 폭락은 원유수출에 의존해온 자원수출국들에게는 생각하기 조차 싫은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영국 BBC뉴스는 “이란 경제제재 해제에 따라 국제유가가 20달러대 중반까지 떨어질 것”이라며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재정 수입을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산유국들의 재정적자가 눈 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 이란은 매장량 기준 세계 4위의 원유부국이다. [출처=글로벌리서치]


실제로 러시아는 달러화 강세와 저유가로 인한 루블화 약세에 시달려왔다. 달러강세는 저유가로 이어져 원유 수출 비중이 높은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면서 러시아 물가상승률은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4일 발표된 11월 러시아 소비자물가지수(CPI)는 5년 래 최고치인 15.0%로 높은 인플레이션과 루블화 약세가 악순환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재정의 95%를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역시 지난 15일 ‘2개월간의 국가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2015년 1∼9월 인플레이션율이 141.5%이고, 국내총생산(GDP)도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4.5%나 감소했다”고 밝혔지만 대부분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최소 200%, 많게는 380%(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비상사태 기간 중 세금을 인상하고 복지 예산과 식료품 수입을 조절하기로 했다.

시장전문가들은 올해 물가도 만만찮게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프랜시스코 로드리게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이코노미스트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조치를 하지 않으면 올해는 1000% 이상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유가 끝모를 추락, 세계증시도 쇼크

국제유가는 지난 18개월간 70%나 하락했다. 미국의 셰일오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 거부 등으로 공급은 넘쳐나는데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이상고온 겨울 등으로 수요는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JP모건 등 미국 투자은행들은 “유가의 저점을 확신할 수 없다”며 배럴당 10달러 선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로 추락하면서 세계 증시가 요동쳤다. [사진출처=방송화면캡처]


저유가 공포에 질려 세계증시는 올들어 불과 2주 만에 7조 달러(8400조원)가량이 증발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전 세계 증시 시가총액은 작년 말 64조 5656억 달러에서 지난 15일 57조 6281억 달러로 추락해 10.7%인 6조 9365억 달러가 줄어들었다. 올들어 세계증시에서 증발한 액수는 한국의 2014년 국내총생산(GDP) 1조 4103억 달러의 4.9배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중국의 시가총액이 작년 말 7조 919억 달러에서 5조 5451억 달러로 21.8% 줄어 가장 감소폭이 컸다. 그 뒤를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16.29%), 러시아(-15.89%), 사우디아라비아(-15.27%), 아르헨티나(-14.91%), 호주(-13.77%), 노르웨이(-11.53%) 등 신흥국과 산유국 증시 시가총액이 크게 감소했다.

저유가가 무서운 것은 금융시장의 불안을 초래하여 실물경기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 때문이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이를 가리켜 ‘역(逆)석유파동(Reverse Oil Shock)’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저유가가 금융 영역에서 디플레이션 악화, 주식과 채권 시장 불안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국제 금융시장은 이미 혼란에 빠져있다. 중국경제 침체에 저유가까지 겹치면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이란까지 원유수출 대열에 가세하게 됐으니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증유의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미국 월가 주변에선 실물경기 악화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인상이 상당기간 늦춰질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유가하락을 못이긴 에너지 관련기업들은 줄줄이 파산신청을 하고 있다.

이란의 복귀와 초 저유가, 한국경제에는 양날의 칼

석유를 수입하는 한국 입장에서 저유가는 분명 호재다. 거시적으로는 물가상승률을 제약하긴 하지만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상황에서 생산주체인 기업들이 원가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원가가 절감되면 제품값이 내려가고 그로 인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올라가는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유가하락이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분석’ 보고서에서 국제유가가 49달러까지 하락하면 한국의 성장률이 0.2%포인트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인구 8182만명의 거대시장인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로 인해 새로운 시장개척이 가능하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국제사회의 제재해제에 발맞춰 한국정부 역시 그동안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던 이란과의 무역을 자유화한다고 밝혔다.

건설과 정유 관련 업계는 활짝 웃고 있다. 이란이 13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원유 시설 등을 교체할 것으로 알려졌고, 도로와 철도 그리고 항만 같은 국가 기반시설의 발주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란에 대한 수출이 지난해 기록한 37억5900만 달러보다 30억 달러 가량 증가해 제재 조치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고 낙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저유가가 더 악화될 경우 산유국의 경제가 휘청거리고 선진국이나 신흥국의 경기 회복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 금리 인상, 금융시장 불안, 글로벌 경기침체가 유가 하락을 이끌고, 이것이 다시 산유국 재정 불안, 추가 경기하락, 수요 부족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는 아주 좋지 않은 시나리오다. 수출 하락과, 금융불안 등 타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경제는 저유가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이진설>
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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