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칸트의 선험적 직관(直觀)은 ‘본질’이다
윤재은 대기자 | 기사작성 : 2015-12-23 10:45   (기사수정: 2015-12-2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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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짐승은 소리치지만 역사를 쓰지 못하고, 인간은 침묵하지만 역사를 만들어 낸다 :
칸트(Kant, Immanuel)의 선험적 직관(直觀)은 ‘본질 이다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인간이 생각하고 표현하는 모든 이성은 직관(直觀)에 의해 관계한다. 직관은 우주와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하게 되는데, 이러한 이성의 관계는 직관에 의해서 이다. 인간세계에서 어떠한 생각에 옮고/그름 혹은 정의/불의 등의 기준이 되는 판단의 대부분은 이성에 의존하지만, 직관만 못 하다. 이성은 사유가 동반된 마음에 있는데, 이러한 마음이 수단으로 삼는 것은 직관이다.

직관이 우리의 마음속에 생겨나는 이유는 그것의 대상이 되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 실체란 ‘있는 것, 밑바탕, 그 무엇’이어야 하는데 이러한 것은 질량을 포함한 어떤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것은 이성과 대비해서 대상이라고 하는데, 대상은 세계에 실체 하는 한에서만 생겨난다. 생겨남의 근거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그것에 대한 실체로서의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대상이 없다면 실체도 없다.

대상의 실체는 마음으로 들어온 어떤 것들이 결합하고, 종합하여, 그것에 의해 유발되는 방식을 통해 나타난다. 이러한 표상의 인식능력을 감각, 또는 감성이라고 한다. 인간의 감성과 감각은 대상의 실체를 우리의 마음으로 전달하며, 이렇게 전달된 마음은 대상의 이성을 마음  속에 주어지게 만들고, 마음은 감성을 통해 이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성은 오류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잘못된 이성은 이성이라기보다, 제한된 관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이성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직관보다 지식이 우선한다. 왜냐하면, 지식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이거나, 주장이며, 학설일 뿐이지만, 지식으로 무장된 이성은 그것을 인용하여 자기를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작된 이성은 그것을 확실성으로 믿어버리고, 모든 사실의 관계를 그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사회적 이성에 의해 주어진 지식, 경험, 판단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의 자기모순으로부터 시작한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것을 주장하는 순간, 그 주장의 오류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장이란 어떤 사건에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것일 뿐 절대적 진리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록 속에서 주장하여 왔던 많은 역사들은, 그들의 일반적 주장이거나 편견일 뿐이다.

‘절대적 진리란 변치 않는 정의에 있는 것’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견해나, 의견에 치우치는 주장은 자기 궤변일 뿐이다. 이러한 자기 궤변은 지식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짐승의 공허한 메아리이며, 편견으로 가득 찬 욕망의 덩어리이다. 욕망의 덩어리는 부패한 고깃덩어리와 같아 악취를 뿜어내며, 날파리만 날아들게 할 뿐 순수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인간과 짐승의 역사에서 ‘짐승은 소리치지만, 역사를 쓰지 못하고, 인간은 침묵하지만 역사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역사가 진정한 역사이며, 순수한 선험적 역사이다. ‘역사는 대상의 기록이 아닌 정신의 기록이다.’

이처럼 짐승과 인간의 역사적 다리(Historical Bridge) 위에서, 하나의 의지는 편견과 오만에 의해 서로 다른 끝을 향하게 된다. 하나의 의지는 두 개의 의지가 되고, 의지의 실체는 무너져버린다. 이렇게 무너져 버린 역사적 다리는 인간의 의지를 연결할 수 없게 한다. ‘소통(疏通)이란 하나의 다리 위에서 두 개의 끝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개의 눈을 하나의 다리로 통합시켜주는 것’이다. 소통(疏通)은 짐승이 인간 되기를 거듭하는 순수의 길이며, 직관의 길이다. 순수는 직관의 본질을 통해 얻어지는 완벽함이며, 정의이다.

지식에 의해 짐승이 되어버린 인간은 공허한 메아리 속에서 서로의 주장만 되풀이 한다. 이러한 논쟁은 우리가 원하는 길(Way), 바로 그 길을 찾지 못한다. 그 길은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직관에 있다. 그 길을 여는 문은 그 길속에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문제의 대상으로부터 발생되며, 문제의 해결은 지식이 아닌 직관에 의해 풀어져야 한다. 직관으로부터 그 문제의 본질이 설명되면, 해결의 방법은 문제 안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모든 사유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지식보다는 직관에 의지해야 그 문제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지식으로 그 문제를 보게 되면, 남의 견해를 보고 자신의 견해인양 주장하는 꼴이 된다. 이처럼 우스운 꼴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직관은 다르다. 특히 순수직관은 직관의 영역 중 가장 높은 단계로서, 그것의 본질을 보는 최상의 이성을 말한다.

인간이 자기의 주장에 있어서는 강하면서, 남의 주장은 얕잡아보고, 우습게 보는 것은 자신의 지식을 확실성으로 믿고, 타인보다 자신이 우수하다고 믿는 자만(自滿)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순수직관으로 세계를 바라보면 세계는 나의 주장과 다르게 자연의 법칙에 따라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의 법칙은 신의 법칙이며, 운명의 법칙이다. 신의 의지와 세계의 운명을 어떻게 인간이 바꾸어 놓을 수 있겠는가?

인간으로서 직관을 순수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자신의 정신을 자신의 육체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는 정신을 육체의 밖으로 내보내고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자신의 육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고, 궁극에 가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 참회의 눈물은 깨달음의 눈물이 아니고, 그동안 오만하고, 무지하며, 거짓으로 살아온 반성의 눈물이다. 인간은 마침내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며, 순수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칸트(Kant)는 인간의 마음이 대상에 의해 유발되는 한에 있어 우리의 마음은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불완전한 감각을 통해 직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경험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인간의 경험이 만들어내는 불확실의 대상을 우리는 실체라고하기보다 현상이라고 불러야 한다. 현상은 대상을 보여주는 역할을 할 뿐 실체일 수는 없다. 실체란 반드시 존재하여야하기 때문이다. 실체의 문제에서도 직관은 실체를 알아가는 인식의 문이다.

하나의 현상에서 인간의 감각이 대응하는 것을 칸트(Kant)는 현상의 진료라고 불렀다. 현상의 진료란 감각의 대응에 따른 대상의 발현으로 후천적 경험으로 만들어지고, 사라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칸트는 대상의 관념이 아니라 순수한 관념을 실체의 범주에 두고 있으며, 이러한 실체는 내부 감각에 속하는 어떤 관념도 포함하지 않는 대상을 말하며, 이것을 순수라고 말한다. 순수는 직관의 영역이며, 그 자체가 불완전한 이성을 넘어선다.

감각을 넘어서 인간의 마음과 순수형식은 인간의 마음속에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현상되는 모든 자연의 실체가 이러한 관계를 가지게 되고, 이러한 관계는 직관에 의해 파악되어지고, 실체화되어진다. 인간의 마음이 가지게 되는 이러한 직관을 순수직관이라고 한다. 순수직관은 감각적 사고에 의해 오류 될 수 있는 우리의 관념을 보다 더 명확하게 하여주는 지혜의 열쇠라고 말 할 수 있다.

< 이성의 오류가 말하는 지식의 한계를 보면서 / 차가운 대지의 텐트에서 / 가느다란 바람에 휘날리는 불꽃을 보며 / 나는 괴로워했다. / 삶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오늘 하루도 / 나는 / 나의 길을 가고 싶다 . >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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