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선험적(先驗的) 인식’
윤재은 대기자 | 기사작성 : 2015-10-14 14:43   (기사수정: 2015-10-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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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재은 기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선험적(先驗的) 인식’ :
경험적이지 않은 인식은 ‘순수인식’이다.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인간에게 있어 일반적 인식은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은 사실이다. 경험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이러한 과정은 인식을 통해 기억되어진다. 경험적 만남은 인식에 우선하며, 이를 통해 인간은 무엇인가를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험만으로 모든 것을 인식한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경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제한된 감각에 의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한된 경험은 많은 판단의 오류를 낳게 된다. 인간의 이성은 자신의 입장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건이나 현상도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과 판단을 내어놓는 것을 보면, 인간의 인식이나, 경험은 정의에 의존하기보다는 이익이나 입장에 의존한다고 보여 진다.

세상에 드러난 사실은 경험의 한계에서 느끼는 것일 뿐, 그 너머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순수의 마음으로 그 세계를 바라보면, 그 세계는 천국의 세계요, 진리의 세계이다. 하지만 타락한 욕심과 명예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인간에게는 이러한 세계는 보이지 않고 오직 성공이라는 욕망만이 보일 뿐이다.

비록, 그 욕망은 시간이 지나면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라도, 그 순간만은, 그 욕망의 고리를 잡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선한 마음을 억눌러 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천박한 욕망은 진리와 정의를 외면한 채 자신만의 논리로 세계의 역사를 써 내려가려 한다. 하지만 역사의 눈보라는 차가운 시베리아 벌판보다 더 냉혹한 비판의 바람을 일으키며, 순수의 의지를 일깨운다.

개인의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지는 학문은 더 이상 대상의 이익이 되기보다는 해악이 된다. 학문과 정의가 대상의 이익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 경험은 체험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진리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없다. 경험이 선험성과 결합하면, 이러한 오류를 방지할 수 있다. 선험성은 인간이 순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과 같은 것이다.

경험에 의한 후천적 인식이 경험적 인식인데 반해, 선험적 인식이란?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된 인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험적 인식 중에서도 전혀 경험하지 않은 인식을 순수인식이라고 한다. 순수인식이란, 말 그대로 어떠한 경험에도 의지하지 않고 순수한 선험성에 의존하여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순수인식의 범주에 들어있는 것은 필연성을 담고 있다. 빛은 순수인식의 현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빛은 현상만으로도 순수하다. 빛에 의한 어둠과 밝음은 현상일 뿐, 이것을 가지고 빛의 순수성을 판단할 수 없다. 빛은 순수함 자체로서 밝음이며, 선함이다. 모든 곳을 비추면서도 어떤 대상을 갖지 않고, 오직 현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빛은 정의이며, 순수이다.

세상의 모든 어둠은 빛의 현상을 가로막거나 보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다. 빛은 세계이며, 진리이며, 선함이다. 이러한 빛은 경험적 인식으로 보지 못하는 인식의 저 너머에 있다. 경험적 인식은 바로 앞의 것만을 바라볼 뿐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이 한 치 앞을 보지 못한다는 말은 눈앞에 당면한 문제만을 바라볼 뿐, 그 이후 다가올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낮과 밤이 있다는 명제는 경험적으로 느끼는 인식이지만 순수한 인식은 아니다. 왜냐하면, 낮과 밤의 차이는 인간의 시각적 경험에 의해 느껴지는 현상으로, 경험을 통해 나타나는 인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의 경계를 넘어, 보다 순수한 이성으로 낮과 밤을 바라본다면, 이러한 낮과 밤의 차이는 위치와 장소의 차이일 뿐 진리의 영역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직관을 통해 본질의 차이를 바라본다면, 낮과 밤의 차이는 어둡기의 차이일 뿐 하나인 것이다.

선험적이란? 경험의 한계를 넘어선 인식의 기준으로, 경험에 기반 한 일반적 이성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순수영역에 속한다. 순수의 영역은 물질적이지 않고, 기억 적이지 않으며, 형태적이지 않다. 순수란 이성의 깊은 수면 위를 거니는 바람과 같아, 눈으로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촉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다.

순수인식과 경험적 인식의 차이는 무엇인가? 경험적 인식은 대상의 성질을 경험하면서 나타나는 인식인데 반해 순수인식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 필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태어났지만,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필연성을 내포한 선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연적이란 명제는 선험적 명제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 경험은 여러 사람들의 보편성을 만들어 내지만, 그러한 경험의 보편성은 한계와 오류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의 보편성이 만들어 낸 것 중, 어떤 가능한 예외도 없는 엄밀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이러한 경험적 보편성은 선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 보편적 선험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경험만으로 인간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험은 인간이 알 수 있는 인식의 근거이지만, 모든 것이 아니고, 부분에 속하는 것이다. 경험의 한계가 순수인식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편성을 통한 순수인식이어야 하며, 선험성에 의한 절대 인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선험적인 순수원칙들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 본질적 원리와 원인을 알아가는 생각의 길이며, 사유의 길인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험적 순수인식 능력은 태어나면서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의식의 정의로운 판단 기준은 보편성과 필연성이라는 범주에서 인식되어야 한다.

인간의 경험에 존재하는 사과를 예로 들어보자. 사과는 물질적으로 시간에 의해 언젠가는 사라져버리는 물질이지만, 이것은 개별성에 의한 사과가 물질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과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담보로 사과가 가지고 있는 대상의 실체, 또는 대상이 속하는 실체에 대한 공간과 성질이 남아 있다는 것이며, 이는 제거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과라는 대상이 갖는 실체의 개념을 대상으로 환원하지 않는 이상, 사과의 실체는 인간의 선험적 인식 능력 속에 자리 잡히게 되고, 이는 실체의 보편성 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된다.

인간의 인식이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 이성의 힘으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은 선험성이 인식의 기초위에 서야만 한다. 우리의 이성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선험성에 의한 선험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자가 바로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4.22 ~ 1804.2.12.)이다. 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경험적 판단근거의 한계와 오류를 순수이성으로 바라보며,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순수한 이성의 사용을 통해 그릇된 이성의 판단오류를 바로잡고 싶어 했다. 칸트의 삶은 시계와 같은 삶이었으며, 명확한 지성의 탐구만이 학문의 길이라고 판단한 사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형이상학의 길은 인간이 배부른 돼지의 길을 들어서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것이었으며, 우리가 존재하는 원리와 원인을 생각해보고 판단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그에 의해 제기된 실체의 문제는 합리적 이성과 경험적 이성을 넘어선 순수이성으로, 인간이기에, 인간의 굴레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몸부림의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선지 철학자들의 노력을 단지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치부하는 것은 배부른 돼지우리에서 세계를 보지 못하고, 진리를 보지 못하는 아둔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깨어나라! 그리고 눈을 떠라!
세계는 깨어있는 자의 것이다!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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