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지식(智識)과 관념(觀念)’ -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경험의 총체(總體)이다
윤재은 대기자 | 기사작성 : 2015-06-18 10:42   (기사수정: 2015-06-18 10:50)
2,242 views
N
 
[사진=윤재은]


‘지식(智識)과 관념(觀念)’ –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경험의 총체(總體)이다.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 상태에 들어서면, 지식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인간에게 있어 지식이란? 우리가 믿고 있는 모든 것이다. 하지만 지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경험의 집합 일뿐 진리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이란 경험을 통해 얻어지고 습득되어진 관념의 집합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일 뿐이다.

지식과 기술의 차이는 관념과 실천의 차이이다. 지식은 말이나 글을 통해 습득되어지거나,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로서, 인간의 관념에 의존한다. 인간의 관념은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기반으로, 판단하고, 정의 내리기 때문에 자신의 지식에 기반 한다. 그러나 기술은 실천은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에 유용성을 동반한다.

유용성을 동반하지 않는 기술은 기술에 속하지 않는다. 기술은 실천을 동반하여 대상의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에 지식보다 단순하고 솔직하다. 기술이 지식보다 솔직한 것은 기술은 인간의 육체와 시간, 그리고 땀방울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이 기술보다 솔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지식도 그것의 근원은 순수함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지식이 근원을 벗어날 때 순수성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지식이 순수성을 벗어나면, 오만과 왜곡이 되기 때문에 타락할 수 있다. 사회 상태에서의 지식은 정의를 갈구하지만, 타락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배어나오는 지식은 왜곡되어지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

지식은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오류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지식은 판단의 근거가 되는 생각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마음속의 관념이다. 지식이 확실한 근거를 확보하는 것은 마음이 정의로 와야 하는데, 인간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 자기 의존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자기 의존성은 지식의 기반을 정의의 발아래 두는 것이 아니라 편의와 이익의 속성에 두기 때문에 본질에서 벗어난다. 사회의 지식인들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르게 설전을 벌이는 것은 지식이 부족해서 라기 보다 양심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 보아야 한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지식은 신의 속성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기원이 신의 창조에서 빚어진 것이라면, 인간의 지식은 신의 행위가 발아(發芽)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은 경험을 통해 판단하고 행동한다. 자연의 수많은 속성들은 인간의 경험을 유발하는 원인이며, 관념의 근거가 된다. 자연 상태에서 관념은 인간의 기본적 속성을 경험으로 이끌어, 모든 지식의 기초가 된다.

인간의 지식 기반은 자연 상태와 사회 상태로 구분되는데, 인간의 의지에 따라 지식의 기준은 자연 상태가 되기도 하고 사회 상태가 되기도 한다. 자연 상태에서의 지식은 스스로 생성되는 자연의 속성처럼, 자연의 현상에 의존하여 관념화된다. 이렇게 형성된 관념은 순수한 관념으로 자연과 같다. 자연은 삶을 살아가는 근원으로서 지식과 관념의 형성에 순수성을 기반 한다. 하지만, 사회상태의 지식은 도덕, 규칙, 법률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분법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분법적 판단은 선과 악, 옮음과 그름, 정의와 불의 등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이 발생하면, 하나의 사건에 서로 다른 의견이 대립을 이룬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되는 지식의 기반이 사회 상태에서 하나의 정의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의존적 관계에 따라 주장으로 변질된다.

하나의 사건은 하나의 진실 속에 있어야 한다. 사건의 본질이 왜곡되거나, 거짓이 진실이 되는 사회는 병든 사회라 할 수 있다. 사회가 병들면 그 사회 속에 사는 사람들이 병들게 되고, 결국은 파멸에 이른다. 지식은 이러한 병들은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약이어야 한다. 지식이 정의롭지 못하고 자기 의존적이라면, 그 사회는 불행한 사회이며, 불행한 국가인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 상태에서의 지식은 양날의 칼날처럼 정의와 불의의 상태를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편의에 따라 그 해석을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길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지식이 정의의 길 위에 서 있을 때 사회는 사회로서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지식은 기술을 넘어 이상(理想)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지식이 관념의 근거이며, 모든 인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이다. 그는 인간학적인 인식론으로서 인간 오성론(Human understanding)을 제시하며, 인간의 판단은 오성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오성의 근거로 지식과 경험을 들고 있다. 로크는 인간으로서 인식은 경험을 통해 형성되어지는 것이지, 천성적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에게 있어 지식의 근원은 경험이며, 경험만이 관념의 총체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오성의 직접 대상은 관념에서 시작하는데, 관념은 경험에서 그 지식이 형성된다. 그는 관념을 단순 관념과 복합 관념으로 나누고 단순 관념(Simple ideas)은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해 얻어지는 1차적 성질로 보았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건들 하나하나가 단순 관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복합 관념(Complex ideas)은 단순 관념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합 관념으로 조합과 확장을 통해 단순 관념을 추상화하는 개념이다. 단순 관념은 대상의 사물이나 사건에서 얻어지는 하나의 관념인데 반해, 복합 관념은 단순 관념들이 서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추상적 관념이다.

로크의 오성은 인식론을 기반으로 경험을 통한 관념이다. 관념은 오성의 대상이면서 오성 안에서 감각과 지각을 통해 이루어진 경험이다. 로크는 모든 관념은 경험을 통해 얻게 되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본유관념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로크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본유관념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도 어른들이 갖고 있는 관념을 알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본유관념이 있는 것이 아니고, 경험을 통해 관념을 습득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의식 안에서 관념이 생겨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대상이 물질 안에 있고, 물질은 대상을 통해 일어나는 사건이며, 현상이기 때문에, 물질과 대상은 인간의 경험을 만들어 내는 지식의 기반위에 있어야 한다. 지식은 경험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마음의 중심을 잃게 되면, 판단의 기준이 엉뚱한 곳을 향하게 된다. 이처럼 지식이 지식의 순수세계에서 그 본질을 훼손한다면, 지식은 지식으로서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로크가 말하는 인간 인식의 대상이 되는 지식과 관념은 이성의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과 관념이 정의롭지 못하면, 지식과 관념은 이익과 거짓으로 가장된 언변에 불과할 뿐이다. 지식이 지식으로서 올바른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지식은 분명히 이로운 것이지만, 거짓과 이익에 활용된다면, 지식은 본질을 벗어나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뿐이다.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메일보내기
보내는분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내용
 
주요기업 채용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