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사랑과 은총, 그리고, 모나드(Monad)의 결합(結合)

윤재은 기자 입력 : 2015.03.30 10:40 ㅣ 수정 : 2015.03.3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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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사랑과 은총, 그리고, 모나드(Monad)의 결합(結合) :
‘실체의 대상은 소통의 모나드(Monad)로 세상의 결합이며, 세계의 결합이다.’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결합(結合)’이란 대상과 대상의 소통에서 시작된다. 하나의 점이 다른 점과 결합하면, 그것은 하나가 되는 일체(一體)이다. 하나의 점은, 점의 연결을 통해 선(線)이 되고, 선은 면(面)이 되며, 면은 입체(立體)를 통해 공간적 실체로 나아간다. 아무것도 없는 영원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무엇인가의 대상은 점의 현전(現前)으로 만들어진 속성의 발현이다.

점은 모든 실체의 시작점이며, 하나이다. 그러나 하나는 그 자체로서 하나이거나, 분화로서 여럿이다. 점의 실체는 선(線)의 과정을 통해 대상이 되고, 대상은 점의 근원으로부터 산출된 선의 표현이다. 세상의 모든 실체는 점의 근원으로 시작하여, 선의 결합을 통해 세상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점은 ‘결합’의 에너지가 없으면 존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존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점은 위치만을 가지고 있을 뿐 생성(生成)의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점이 힘의 에너지와 결합하면, 점은 위치의 대상에서 실체의 대상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실체의 대상은 소통의 모나드(Monad)로 세상의 결합이며, 세계의 결합이다.

점의 결합은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하며, 그 사건은 선(善)과 악(惡)을 넘어선다. 점의 시작은 하나일 뿐, 그 어떤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이 시간과 에너지로 결합되면, 점은 선(善)이기도 하고, 악(惡)이기도 하다. 점은 빛과 함께 대상으로 변화하고, 점은 선의 과정을 통해 물질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겨난 물질은 선(善)과 악(惡)을 동시에 담고 있는 세계의 질서이다.

점의 생성은 창조의 빛과 함께 나타난다.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흑암(黑暗)의 시간을 생성의 시간으로 바꿔 놓기 때문이다. 점의 시작은 탄생의 시간이며, 존재의 시간이다. 점은 나이기도 하고, 우리이기도 하고, 세상이기도 하다. 점은 빛과 함께 세상의 일자(一者)로서 모든 것과 소통한다. 소통은 모나드이고, 모나드는 세계의 근원인 소통의 점이다.

결합은 하나의 어떤 것이 또 다른 어떤 것과 합치는 것이다. 어떤 하나가, 어떤 하나로 남는 다는 것은, 어떤 하나가 어떤 ‘우리’로 남는 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라는 것은 공동체로서 세계라는 것이고, 세계는 우리로 결합된 자연인 것이다.

결합은 ‘나를 우리로 만드는 힘의 에너지이며, 사랑이다.’ 사랑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결합’이다. 만약 ‘사랑’이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고독’이며 ‘결핍’이다. 하지만 사랑은 고독과 결핍을 ‘우리’라는 결합의 미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오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세상의 어둠에 희망을 내려주는 ‘신’의 말씀과 같고,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과 같다.

결합은 ‘생각의 깊이’와 ‘마음의 깊이’에 따라 결과를 달리한다. 생각의 깊이가 깊은 결합은 아름답고, 싱싱한 꽃처럼 향기를 품어내지만, 생각의 깊이가 얕은 결합은 추하고, 악취를 풍기는 썩은 고기와 같다. 생각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의 모나드로서, 생각의 깊이에 따라 사람의 마음은 넘실대는 파도와 같고, 거친 파도위에 요동치는 배와 같다.

생각의 깊이는 생각의 크기에 따라 그 사람의 크기가 결정되고, 그 사람의 성품도 결정한다. 생각은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모두 다 관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이 선함으로 가는 것은 생각의 배가 선함의 세계를 향하고 있음이고, 인간의 행동이 악함으로 가는 것은 생각의 배가 악함의 세계를 향하고 있음이다.

마음의 깊이는 생각의 깊이와 달리 온도가 있다. 마음은 따스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온도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전부인 세계에서 온도는 삶의 과정을 이끌어 가는 마차와 같다.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한 따스한 마음은 이성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선(善)한 마음으로, 올바른 선마(善馬)를 추구하고, 차가운 마음은 악(惡)한 기운이 충만하여 통제되지 않는 욕망의 말과 같다.

욕망의 말은 차가운 기운을 빼내 이성의 친구가 되게 하고, 따뜻한 기운을 더해 선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마음의 깊이는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담아내는 그릇과 같아, 그릇의 크기와 용도에 따라 그 쓰임새와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사에 있어 동일한 그릇이라고 쓰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세계는 행복과 불행을 골라서 담아낼 수 있다.

계몽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영혼의 위치를 한 점으로 보는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을 통해 세상의 어떤 것도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는 다는 법칙을 발견하고, 모나드를 세계의 모든 원인으로 보았다. 이처럼 생성의 모나드는 세계의 모든 것이며, 생각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는 점이며, 정신이다. 이러한 정신은 신의 속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점의 활동은 신의 행위에 대한 발현으로서 모든 것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그의 결합법(De Arte Combinatoria)에서 문자로 표현하든, 표현하지 않든, 모든 추론과 발견을 언어, 수, 소리, 색과 같은 요소들의 질서 있는 결합으로 보았다. 세계는 결합의 법칙을 통해 생겨난 실체이며, 존재인 것이다. 또한 세계는 잘 연결된 모나드이며, 꿈이다. 눈에 보이는 운동이 상상의 시간적 연장 개념 속인 꿈에 속한다면, 세상의 모든 결합과 운동은 단순한 운동의 결과이기보다, 모나드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꿈의 세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합은 빛의 에너지처럼 긍정의 에너지와 운동을 통해 밝고 선한 세계로 나아간다. 빛이 저항을 적게 받는 경로를 통해 나아가는 순응의 법칙은, 빛의 통과 원인이 최종목적인 선(善)이나 근원을 지향하는 것과 같다. 모든 빛은 결합의 순수법칙을 통해 자연에 순응하고 대상을 있게 한다.

라이프니츠의 필연적 존재의 신은 우연을 포함한 모든 긍정명제에서, 술어는 주어개념 속에 포함된 개념으로서 실체이기 때문에 자연은 신의 개념 속에 포함된 술어인 것이다. 이는 만물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으로서, 우리의 정신에 보편화되어버린 관념을 새로운 결합의 모나드를 통해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일깨워주고 있다. 신은 인간과의 결합을 통해 보이지 않는 추상적 실체를 세계의 존재로 일깨워줄 뿐 아니라, 신과 인간의 관념 사이에서 소통과 결합을 통해 신과 인간의 실체를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신은 인간의 사고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시기부터 은총으로 주신 사랑 때문에, 세계는 신의 궁극적 목적이 되었다. 1697년 라이프니츠가 쓴 궁극적 근원에 관하여(De Rerum Originatione)에서 신과 인간의 결합은, 사물의 궁극적 근원이 바로 신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신은 자연과 하나로 결합하면서 영혼과 육체, 자연과 은총이라는 두 질서의 조화를 예정조화설처럼 피력하고 있다.

신과 자연, 신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결합이 사랑과 은총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은 행복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세상의 깊이를 생각의 깊이와 마음의 깊이에 묻어두고, 사랑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오늘도 아름다움 것들의 결합을 꿈꿔보자!.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