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세상을 움직이는 ‘소통(疏通)’의 모나드(Monad)

윤재은 대기자 입력 : 2015.03.16 09:58 |   수정 : 2015.03.1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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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세상을 움직이는 소통(疏通)의 모나드(Monad) :
사람의 마음은 소통의 소리에 따라 요동치는 바다와 같다.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누군가에게 뭔가를 전달한다는 것은 ‘소통(疏通)’에서 시작된다. 소통이란 널리 퍼지는 메아리와 같아 그 울림이 선하고 경쾌하면, 악기의 음색과 같아 황홀하고 웅장한 소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울림이 탁하고 천하면, 찢어지거나 깨지는 소리로 들려와, 사람의 마음에 동요(童謠)를 일으킨다. 사람의 마음은 ’소통‘의 소리에 따라 요동치는 바다와 같다.

소통에 있어 웅장한 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사랑을 싹트게 하지만, 천하고 깨지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폭력과 파괴를 가져온다. 하나의 소리가 두 개의 행동으로 변이(變異)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따라 소통의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소통의 ‘창(窓)은 마음과 소리에 의존한다. 마음은 추상적이고 형체가 없지만 정신 속에 실체하기 때문에 좋은 마음속에서 좋은 생각이 싹트고, 나쁜 마음속에서 나쁜 생각이 싹튼다. 빛의 실체로 태어난 세상은 사람의 마음과 같아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만물을 이롭게 한다. 하지만 조금만 방향을 틀면,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불태워 버리거나 얼려 버릴 수 있다. 소통은 마음의 온도와 같아 좋은 소리로 소통하면, 듣는 사람을 감동시켜 선(善)하게 만들고, 나쁜 소리로 하면, 듣는 사람을 흥분시켜 악(惡)하게 만든다.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빛의 영향을 받는다. 세상은 빛에 따라 삶의 방식과 생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음은 빛의 온도에 따라 선과 악이 갈린다. 너무 센 빛은 사람을 흥분시켜 악을 행하게 하고, 약한 빛은 자신만을 아는 이기주의자로 만든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적정한 온도에서 서로와 소통하며 생존하듯이, 마음은 ‘중용(中庸)의 온도’를 통해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

소통의 소리는 무형이지만 생명이 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소통이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것을 말한다. 소통의 소리는 정성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소리는 좋은 음악처럼 달콤하게 느껴지지만, 나쁜 소리는 남을 아프게 할뿐 아니라 자신을 아프게 한다.

소통은 마음과 소리로 전달되는 대화의 기호이다. 전달을 위한 기호는 상대적이다. 상대방에게 좋은 기운을 전달하면 상대의 마음이 행복해지고, 나쁜 기운을 전달하면 상대의 마음이 우울해지고 불행해진다. ‘소통을 할 수 있다면 사랑으로 하라.’ 가슴과 사랑으로 전달하는 소통은 기쁨과 희망이 되어, 대화의 대상뿐 아니라 사회를 따뜻하게 할 수 있다. 진정한 소통은 세계를 단절의 벽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도구이며, 기술이다.

소통의 소리는 형상을 만들 수 없지만, 선한 마음으로 사용하면, 영혼처럼 깨끗하게 돌아와 실체화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소통이 타락한 마음과 결합하면, 선한 마음은 소리 없이 사라져버리고 타락한 영혼만이 마음속에 남는다. 마음과 소리가 조화를 이루면 천상의 소리가 되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화합할 수 없어 깨어지고 만다.

‘소통(疏通)’은 마음과 소리로 구성된 살아있는 ‘모나드(Monad)’이다. 소통은 세상의 모든 것으로서 ‘모나드(Monad)’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마음과 소리로 통하고 그것으로 이루어진다.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의 모나드는 창이 없으면서도 소통하는 소통의 모나드이다. 소통은 물질적 창이 필요하지 않고 마음의 창만을 필요로 한다. 마음으로 통하는 소통만이 진정한 소통이라 할 수 있다. 모나드는 넓이나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 무엇으로 나눌 수 없는 궁극적인 실체로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모나드는 최초의 실체이며, 이를 있게 한 근원적 실체이다.

고대 혼합주의적 종교인 나스티시즘(靈知主義, Gnosticism)에서 모나드는 불가시적 무한 상태(Invisible Infinite God)의  초월적 신이 현현(顯現)할 때 그 첫 번째 존재상태의 신을 모나드라 하였다. 여기서 모나드는 창조의 모나드이며, 실체의 모나드이다. 모나드는 유대교에서 창조의 신비를 가르치는 카발라에서 아인 소프(Ain Soph: 무한의 빛)의 무한상태인 창조적 신이, 유한 세계의 존재계인 생명나무(Tree of Life)나 존재의 4계(Four planes of being)라는 아담 카드몬(Adam Kadmon)으로 현현하면서, 10개의 세피로트(Sephiroth)인 빛의 구체들 중 첫 번째 빛의 구체인 세피라(Sephira)의 케테르(Kether: 왕관)를 의미한다. 이러한 주장은 아인 소프(Ain Soph: 무한의 빛)와도 같고 플로티누스 (Plotinus, 205-270)의 일자(一者)와도 같다. 일자는 모든 것의 생성원인이며 근원인 것이다. 고대의 종교나 유대교를 넘어 합리주의적 사고의 라이프니츠까지 모나드는 모든 것의 빛이며, 실체의 근원인 것이다.

모나드는 빛과 같이 소통하고 빛과 같이 생명을 나누어주는 창조적 실체이다. 하지만 모나드는 창조적 실체이면서도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소통으로서 자신의 실체적 의미를 나타낸다. 고대 동양철학자 노자는 도덕경에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를 도(道)라고 보았다. 그는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고 말하였다. 도(道)는 모든 것의 근원으로서 모나드이고 모나드는 창조의 실체로서 도(道)이다.

신의 아들로 태어난 인간은 선천적으로 착하고 선하다. 하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세계에 나오면 그 선함은 경쟁으로 바뀌게 되고, 그 경쟁은 비교의 대상으로 바뀐다. 경쟁은 항상 이기는 자와 지는 자로 구분된다. 이기고 지는 것은 경쟁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을 비교의 대상이 아닌 만족의 대상으로 바꾸면 그 결과는 달라진다. 경쟁은 누군가를 이겨서 성취하는 승리이지만, 만족은 자신과의 싸움에서만 이기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 소통은 자신과의 약속이며, 자신에 대한 관조(觀照)인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소통의 의지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한다. 선과 악은 소통의 방향성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 인생의 항로가 예측되어지거나 예정되어 있다면, 그 길에서 방향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마음과 소리처럼 정해진 방향이 없다. 방향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삶의 방향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각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하고 아름답게 세상을 사는 것은 마음과 소리가 들려주는 소통의 멜로디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소통은 ‘길(路)’이다. 소통은 삶의 길이며, 행복의 길이며, 국가의 길이며, 통치자의 길이며, 나의 길이다. 소통은 길과 같아 가는 길의 방향에 따라 천국의 문을 만날 수 도 있고, 지옥의 문을 만날 수도 있다. 천국과 지옥이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울타리에 존재하면서도 생각과 행동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선한 것은 ‘선마(善馬)’와 같아서 이성의 힘에 의존하고 보편적으로 선한 것만을 추구하며, 인간에게 해를 주지 않지만, 악한 것은 ‘악마(惡馬)“와 같아서 남의 것을 질투하며, 해가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21세기 소통의 길목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나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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