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백지상태(白紙狀態), 생각의 번뇌를 지우는 방법’ - 많은 번뇌(煩惱)를 줄이는 방법은 ‘생각의 단순함’에 있다.

윤재은 대기자 입력 : 2015.01.06 11:11 |   수정 : 2015.01.06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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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백지상태(白紙狀態), 생각의 번뇌를 지우는 방법’ :
많은 번뇌(煩惱)를 줄이는 방법은 ‘생각의 단순함’에 있다.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인간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 생각은 삶을 살아가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지만, 생각이 많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삶에 있어 생각의 양은, 그 양만큼 번뇌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가볍게 사는 것, 그것이 삶의 방향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며,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자연은 생각의 양보다는 실천의 양을 중요시한다. 생각이 많아지면 실천보다는 생각으로 번뇌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버티기 위해 자신의 낙엽을 모두 떨어 뜰이고 앙상한 가지로 매서운 겨울바람을 버티면서 생의 무게를 줄인다. 이러한 몸부림은 어렵고 힘든 생의 환경을 버림의 미학을 통해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이다.

인간의 경험은 많은 것을 통해 마음을 채워가지만, 이렇게 채워진 마음은 생각의 근원이며, 관념의 근원이다. 하지만 잘못된 채움은 마음에 상처가 되거나, 번뇌가 되기도 한다. 채움이란 부족한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채워나가는 것이지만, 잘못된 채움은 번뇌만을 남길 뿐이다. 마음을 채운다는 것은 선한 것, 사랑스러운 것, 그리고 꼭 필요한 것만을 채우는 것이지, 소유욕을 채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번뇌를 줄이는 방법은 ‘생각의 단순함’에 있다.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하는 것은, 그 복잡함을 단순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복잡한 문제의 근원은 단순한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복잡하고 번뇌가 쌓인다면 생각을 없애면 된다. 생각이 없어지지 않는 다면 마음의 지우개를 이용하여 생각의 백지상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생각의 백지상태는 생각을 단순화하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식의 하나이다.

생각의 백지상태에 이르는 방법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생각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단순한 생각은 단순한 삶을 이끌며, 단순한 삶은 단순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생각의 단순함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념 속에 머물러 있는 많은 번뇌를 지워버리고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유도된 삶은 현재에 만족하며, 작은 것에 만족하고, 주어진 조건의 소중함을 깨달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생각이 많으면 복잡하게 되고, 복잡하게 되면 정확한 판단을 놓칠 수 있다. 생각이라는 것은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그 난해함이 더해져서 복잡하게 얽히게 되고, 그렇게 얽힌 생각은 더욱 더 깊은 번뇌로 돌아온다. 번뇌는 너무 많은 생각에서 나오는 어두운 메아리와 같아, 그것이 커질수록 육체와 정신은 힘든 강을 건너야 하는 뱃사공처럼 힘든 노를 저어야 한다.

삶의 과정에서 백지상태란, 법정스님의 무소유처럼 소유하지 않는 마음을 통해 소유욕과 물질욕으로 부터 해방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해방은 삶을 위한 최소한의 것만을 추구하고, 부족함에서 삶의 행복을 찾자는 것이다. 법정스님이 스스로 실천한 무소유의 삶은 소유로부터 시작된 무소유이다. 무소유란 소유가 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며, 이는 빛과 어둠의 관계처럼 상대적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끝없는 소유욕을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무(無)’를 바라본 법정스님의 해안은 소유욕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번뇌를 아무것도 없는 무를 통해 소유욕에 대한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생각의 백지상태’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함이 아니고, 알고도 말하지 않는 용기 있는 침묵(沈黙)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번뇌를 지워내서 순수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하얀 도화지처럼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백지상태의 도화지는 많은 것을 그리고 채울 수 있는 순수의 공간이다. 순수공간은 발자국이 남겨져 있지 않는 하얀 눈의 언덕처럼 어떠한 잡념과 번뇌가 남겨져있지 않는 공간이다. 이렇게 비워진 백지상태의 공간은 생각에 따라 사랑과 행복을 채울 수도 있고, 번뇌를 채울 수도 있다. 신의 이름으로 비워놓은 백지공간은 채우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서로 다르게 채워질 수 있다.

자본주의로 팽배해 있는 복잡한 사회에서 순수한 인간으로 살아남는 길은 생각의 백지상태로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물질과 정보는 우리들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이러한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은 삶의 무게를 짓누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회의 혼돈 속에서 복잡한 정신 상태는 극단적 행동으로 발전하여 자살, 우울, 분노 등으로 폭발하고, 자신의 파멸뿐 아니라 타인의 삶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행동을 억제하고 막아주는 것은 마음의 백지상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 해도, 그 순간을 넘기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지나간 이야기로 회자(膾炙)된다. 하지만 순간의 극단적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로 인해 표출된 행동은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낳을 수도 있다. 생각의 백지상태는 이러한 마음을 다스려주는 자기성찰로서, 생각하는 인간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계몽주의 철학자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부정확한 지식의 한계를 비움의 미학을 통해 모두 지워버렸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 관념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생각의 한계를 백지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그의 정신으로 깨어난 계몽의 아침은 비워있기 때문에 채울 수 있는 백지상태의 계몽적 정신이며, 실천이었다.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생각의 단순화는 지식의 불안을 넘어 지혜의 세계로 인도한다. 지혜는 많은 것을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명확한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의 힘이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는 비움을 통해 채움을 이야기하고, 자만한 자는 채움의 끝을 모르고 또 다른 것을 채우려고 한다. 이러한 채움의 욕망은 번뇌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타락하게 된다.

생각의 번뇌를 지우는 것은 소유로부터 벗어나 자유에 다다르는 길이다. 스스로 찾으려는 자유는 소유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것에도 만족하고 삶의 가치에 만족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남보다 조금 더 있고, 조금 더 많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하루가 내 삶의 전부라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침 해를 바라보고 한 바퀴 돌아 어둠으로 돌아가면, 이것이 하루이고 인생인 것이다. 세상과의 이별이 다가오면 살아온 인생이 찰나(刹那)였다는 것을 깨우치지만, 더 늦기 전에 생각의 숨소리가 살아있는 오늘 하루를 인생의 전부로 생각해야 한다. 하루하루의 삶이 아름다워지려면 생각을 단순화하고, 복잡할수록 지워내는 무소유적 ‘백지상태(白紙狀態)’가 되어보길 바란다. 생각의 백지상태에 도달하면, 보일 것은 보이고, 사소한 것은 모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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