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삶에 있어 ‘생각의 방법(方法)’ - 삶은 인간의 생각에 따라 가벼운 구름 같기도 하고, 무거운 바위 같기도 하다

윤재은 대기자 입력 : 2014.12.18 17:29 |   수정 : 2014.12.1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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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삶에 있어 ‘생각의 방법(方法)’ : ‘삶은 인간의 생각에 따라 가벼운 구름 같기도 하고, 무거운 바위 같기도 하다.’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삶을 살아가면서 생각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관장한다. 행복할 것만 같던 태동(胎動)의 삶은 세월이 가면서 번뇌가 되고, 무게가 된다. 신의 의지로, 빈손으로 온 삶의 세계에서, 채우기만 하려는 인간이기에, 삶에 대한 번뇌와 고독이 혹독하게 느껴진다. 나약한 존재, 부조리한 존재, 그리고 고뇌하는 존재이기에,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인간을 행복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것은 ‘생각의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삶의 무게가 무거운 것은 생각의 무게가 무겁다는 것을 말하며, 삶의 무게가 가볍다는 것은 생각의 무게가 가볍다는 것을 말한다. ‘삶은 인간의 생각에 따라 가벼운 구름 같기도 하고, 무거운 바위 같기도 하다.’

생각은 인간에게 생각하는 시간만을 주는 것이 아니고, 행동하는 지혜도 제공한다. 생각의 방식과 깊이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 또한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테레사의 수녀처럼 선한 인간의 모습이나, 법정 스님처럼 자신을 스스로 비우려는 빈자(貧者)의 모습은 생각의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모습들이다.

우주에 태어난 하나의 생명체로서 유한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가? 이와 같은 생각의 방법은 삶의 방향을 정하는 나침판과 같다. 인간의 삶은 생각의 방향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방법에 있어 첫째 요소는 ‘시간(時間)’이다.

생명체로서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생의 시간을 생각한다면,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시간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시간은 인간과 가장 가까이 있다. 신은 시간을 세상의 으뜸으로 정하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힘 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의 차별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한 가치로 부여되었지만, 그것을 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시간은 언제나 내 곁에 있기 때문에 소중히 다룰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생명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그러한 시도는 공허한 욕망일 뿐이다.

부조리한 부자는 욕심으로 시간을 채우고, 깨어있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은 불평으로 시간을 채운다. 이처럼 하나의 시간이 서로 다른 시간이 되는 것은, 그 시간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각은 부자의 욕심과 가난의 불평을 모두 잠재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부자는 나눔의 행복을 아는 사람이며,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는 부자는 채움의 욕망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생각 없이 사는 가난한 사람은 불평과 불만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생각을 가지고 사는 가난한 사람은 희망을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간다.

생각의 방법에 있어 두 번째 요소는 ‘방식(方式)’이다.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행동의 방식이 달라진다. 행동의 방식은 생각의 방식에 의해 지배되지만, 행동의 방식에 따라 삶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부유함과 가난함을 넘어 자신의 처지를 만족하면서, 그 속에서 최선을 찾는다. 하지만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은 자신의 처지보다는 남들의 부유함과 행복함을 부러워하며, 자신을 불평한다. 이처럼 하나의 삶에 있어 두 개의 생각이 나오는 것은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그 길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물질은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하지만 물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인간의 삶이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을 소유해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또 다른 재물을 탐하다가 결국 파멸에 이른다. 하지만 지혜로운 부자는 자신의 재물을 유용하게 쓸 줄 알며, 그 쓰임에서 행복을 찾는다. 물질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쓰임새가 행복을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 물질은 소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쓰는 방식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방식(方式)’은 삶의 가치를 높이는 생각의 실천이며, 행동으로서, 생각의 방법에 있어 두 번째 요소가 된다.

생각의 방법에 있어 세 번째 요소는 ‘가치(價値)’이다.

생각은 무형의 요소이지만, 행동은 유형의 요소로서,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면 ‘가치(價値)’가 창출된다. 가치에는 물질적 가치, 정신적 가치, 실천적 가치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삶의 가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삶의 가치는 생각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린다. 삶이 소중한 사람에게는 삶을 위한 모든 것이고, 물질이 소중한 사람에게는 물질을 위한 모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물건도 그 것을 쓰는 사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듯이, 삶의 가치 또한 이와 같다. 삶의 가치는 생각의 가치에 따라 비례하며, 생각의 가치가 바른 사람은 삶의 방식 또한 바르게 설정된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행복도 생각에 따라 그 가치를 달리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방법’은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를 넘어 삶의 한부분이며, 조각인 것이다. 근대를 여는 한 선구자로서, 그리고 생각하는 방법을 바꾼 선지자로서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방법은 현대인들에게 ‘생각의 방법’을 만들어가는 인생의 바이블(bible)이다.

자본주의와 물질주의 속에 삶의 존재를 망각하는 순간순간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고독한 존재이며, 이방인이다. 우리에게 세상은 폭풍우였고,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삶의 방향을 잃은 삭막한 도시에서 우리는 어둠을 뚫고 빛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이방인이었다. 그 빛은 가로등이나 도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런 빛이 아니었다. 그 빛은 희망의 빛이요, 삶의 빛이었다. 차가운 겨울, 생명의 끝자락에 선 유태인의 절망 속에서, 한 줄기 빛은 생명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그 빛을 찾고자 하였다. 그것은 물질의 빛도, 욕망의 빛도, 명예의 빛도 아닌 삶의 빛이었다. 생각의 방법은 우리 인생에서 찾고자 하는 삶의 빛이며, 희망이다. 생각을 하고 방법을 찾는 것, 이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꾸준히 걸어가야 할 구도(求道)의 길이다.

젊음의 삶은 희망이었지만 노년의 삶은 고통이고 절망일 수 있다. 이러한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생각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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