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군의 나도 문화해설사] 정조반차도44-도승지와 병조판서(3)
강이슬 기자 | 기사작성 : 2014-09-30 08:57   (기사수정: 2014-09-3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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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양문숙 기자]

도승지와 병조판서(3) - 표기(標旗)
 
■ 가후금군(駕後禁軍)
 
경연관의 뒤를 가후금군(駕後禁軍)50명이 오마작대를 이루면서 행진하고 있다.
 
가후금군(駕後禁軍)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임금의 가마 뒤에 있는 금군이라는 뜻으로 임금이 거둥할 때 수레 뒤에 늘어서서 호위하는 금군(禁軍)인데 조선후기에는 용호영(龍虎營)에 소속되어 있었다.
 
뱀의 발(蛇足) :
숙종실록 24권, 18년(1692) 2월 20일(경자) 1번째기사
* 금원에 나아가, 거가 뒤를 따른 금군들에게 무예를 시험보이게 하다    
  
임금이 금원(禁苑)에 나아가, 거가(車駕) 뒤를 따른 금군(禁軍, 즉 駕後禁軍)들에게 무예(武藝)를 시험보이도록 명하였다. 승정원에서 대신(大臣)의 상사(喪事)로 정조시(停朝市)7480) 했음을 들어 정지하기를 청했으나, 임금이 따르지 않았다.
 
국왕의 친위군사를 뜻하는 금군(禁軍)에 대한 용어가 많아서 많이들 헷갈려한다. 그 이유는 시대별로 금군 조직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금군은 왕과 가장 가까이에서 입직(入直), 시립(侍立), 호종(扈從)하는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탁월한 무술재능은 물론, 왕의 신임까지 얻어야 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 금군의 변천
 
우선 조선개국초 태종때 기존의 국왕 친위병사를 <내금위(內禁衛)>로 편성하였고 2년 후에는 기병(騎兵) 중심의 친위군으로 <겸사복(兼司僕)>을 추가했다. 한편 성종때 궁성 수비를 맡은 <우림위(羽林衛)>가 추가 설치되어서 금군은 <금군삼청>, 또는 <내삼청(內三廳)>이라 불렸다.
 
뱀의 발(사족) :
우림위(羽林衛)는 성종 23년(1492년)에 금군중에서 가장 늦게 설치된 조직이다.  설치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지배계층 첩의 자손이 무재(武才)가 뛰어나도 갑사(甲士) 이외는 속할 곳이 없어 따로이 1위(衛)를 설치한다" 고 되어 있어서 서얼(庶孽)을 흡수하려는 목적이 있었고, 또한 당시 금군(禁軍)인 겸사복(兼司僕)과 내금위(內禁衛)가 다수 변방으로 파견되어, 한양에 있는 금군의 부족이 문제가 되어서 이를 강화하기 위한 조처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장번(長番)병으로 근무를 했는데, 장번(長番)이란 병농일치의 원칙하에 다른 군사들은 일정기간 동안은 번상군(番上軍)이 되어 의무복무하고 그 외의 기간에는 하번군(下番軍)이 되어 귀향하던 교대근무와는 달리, 금군과 같은 직업군인으로서 궁중에서 유숙하면서 교대 없이 장기간 근무하는 것을 가리킨다.
 
동궐도나 경희궁 전각안내도(가상복원도,서궐도안)에서 찾아보면 <내삼청>은 궁궐 내 가장 중심전각인 정전(正殿)의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인조반정을 주도한 공신 세력에 의해 <호위청>이 설치되면서, 본래의 금군인 <내삼청>의 기능이 잠시 약화되었지만 현종 때 <금군청(禁軍廳)>을 설치하면서 기존 금군삼청 소속인원을 통합했는데, 이때부터 금군은 기병으로 편성됐다. 그러던 <금군청>이 영조 때 다시 <용호영(龍虎營)>으로 개칭됐다.
 
■ 병조의 상징, 표기(標旗) 와 차비총랑, 각군문정원대령교련관별무사
 
가후금군의 뒤를 이어 커다란 표기(標旗)가 나오고 있다. <표기>는 병조(兵曹)를 상징하던 깃발이기 때문에 그 뒤쪽으로 병조판서가 보인다.
 
<표기>의 바로 뒤에는 차비총랑(差備摠郞)이 있는데 차비(差備)는 특별한 사무를 맡기려고 임시로 벼슬을 임명하는 일을 뜻한다. 그런데 총랑(摠郞)은 종2품 벼슬인 참판의 다른 이름으로 지금의 차관급이다. 따라서 임시직 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직급 때문에 말구종이 따라 붙었다.
 
차비총랑의 뒤에는 <각군문정원대령교련관별무사> 9명이 나란히 행진하고 있다. 이름이 길다고 해서 처음부터 위축될 필요는 없다. 하나씩 살펴보자. 
 
원래 별무사(別武士)는 5군영 중에서도 훈련도감과 금위영, 어영청의 기병들 중에서 선발된 군사들인데 특히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군사들이었다. 따라서 이 세 군영의 별무사들 중에서(각군문 各軍門) 승정원의 명령을 항상 대기하고 있는(정원대령 政院待令) 교련관역할의 별무사(교련관별무사)들을 뽑아 9명의 대오를 만든 것이다.
 
(뉴스투데이=최동군 객원기자)
 

 
문화해설분야 작가 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문화컨텐츠학부 외래교수
저서 : <나도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시리즈물 - 궁궐편, 사찰편, 북한산둘레길편, 능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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