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군의 나도 문화해설사] 정조반차도43-도승지와 병조판서(2)
강이슬 기자 | 기사작성 : 2014-09-26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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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최동군 객원기자]

도승지와 병조판서(2) - 주서(注書), 한림(翰林)
 
■ 국가의 공식기록담당관 주서(注書) 와 한림(翰林)
 
승지들을 뒤따르는 두 사람은 각각 주서(注書)와 한림(翰林)인데, <주서(注書)>는 승정원(承政院)에 두었던 정7품(正七品) 관직으로 국왕의 하루 일과, 지시, 명령, 각 부처의 보고, 각종 국정회의 및 상소 등을 모두 기록한 <승정원 일기>를 관장했다.
 
한편, <한림(翰林)>은 예문관에서 실록의 사초 꾸미는 일을 맡아보던 관직으로 보통 <사관> 이라고 불린다. 따라서 주서와 한림이 나란히 있다는 것은 국가의 공식 기록담당관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승정원일기>가 <실록>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둘 다 국왕을 중심으로 한 공식적인 나랏일의 기록물 이지만 <승정원일기>는 생생한 역사현장을 개인의 평가 없이 일을 중심으로 그대로 기록한 <1차 사료>이며 언제든지 내용을 참조할 수 있도록 한 반면, <실록>은 사관의 주관적인 평가가 들어가 있는 <2차 사료>로 왕이라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도록 하여 사관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 각리(閣吏), 각신(閣臣), 내국제조(內局提調), 장용영제조(壯勇營提調)
 
공식 역사기록담당관인 주서와 한림의 뒤를 이어 각리(閣吏)와 각신(閣臣)이 행진하고 있다.
 
각신(閣臣)은 앞서도 설명했다시피 규장각(奎章閣)에 소속된 관원으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청요직(淸要職)이었다.
 
한편 각리(閣吏)는 규장각의 하급관원인 서리였다. 이들의 서열 차이는 각신에게만 말구종(견마잡이)이 붙어있는 것으로 쉽게 알 수 있다.
 
그 뒤를 내국제조(內局提調)가 따르고 있는데 내의원(內醫院)의 제조(提調)를 가리킨다. 앞서도 설명했다시피 제조(提調)는 잡무나 기술계통의 관아에 당상관(堂上官)이 없을 경우, 또는 무신이 최고지휘관인 관청에 문신이 무신을 지휘감독 할 목적으로 겸직으로 배속되는 관직으로 자문명예직인 정1품 <도제조> 아래에서 그 관청의 일을 지휘, 감독하였는데 보통 종1품 또는 2품관이 겸직으로 임명되었고, 그 밑에 <부제조> 가 있었다.
 
내국제조의 뒤에는 <장용영제조> 가 따르고 있는데, 내국제조와 소속관청만 다를 뿐 역할은 같다고 보면 된다.
 
뱀의 발(蛇足) :
영조실록 92권, 34년(1758) 12월 27일(기묘) 1번째기사
* 기침이 낫지 않자 내국제조 이종백을 파직하고 이창수로 대신케 하다      
 
임금이 하교하기를,
“기침 기운이 있는 것은 오로지 공기 때문인데도, 이중탕(理中湯)을 그대로 쓰고 중지하지 아니하므로, 내가 의관(醫官)에게 이것을 물었을 때에, 제조(提調)가 이르기를, ‘성심(聖心)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여러 의관들이 감히 갑자기 아뢰지 못하고, 이에 이 약제를 그대로 써온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관직이 약제를 맡아보는 자리에 있으면서 이와 같이 살펴보지 못하니, 제조 이종백(李宗白)을 파직하고, 이창수(李昌壽)를 내국제조(內局提調)로 삼도록 하라.”
 
■ 임금의 교육담당관, 경연관(經筵官)
 
한편, 그 뒤에는 경연관(經筵官) 2명이 있는데 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론하는 경연(經筵)을 책임지는 관리이다.
 
경연관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국왕에게 학문 지도와 정치의 도리(治道)를 강론하고 때로는 국왕과 함께 현안 정치문제도 토의하는 관직이었기 때문에 관리로서는 가장 명예로운 자리로 여겼고, 그만큼 학문과 인품이 뛰어난 문관을 임명했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3정승은 당연직으로 포함되었고 정2품 지사 3인, 종2품 동지사 3인, 정3품 당상참찬관 7인, 정4품 시강관, 정5품 시독관, 정6품 검토관, 정7품 사경(司經), 정8품 설경(說經), 정9품 전경(典經)이 경연관으로 규정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는 명망 높은 재야 학자도 참여했다. 반차도의 경연관은 말구종이 붙은 것으로 봐서 당상관으로 보인다.
 
경연(經筵)은 표면적으로는 임금에게 유교의 경전과 역사(經史)를 가르쳐서 유교의 이상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실제로는 왕권의 행사를 규제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조선시대 임금은 태어나면서 죽을때까지 교육을 받습니다. 일단 왕자아기를 <산실청>에서 인계받으면 <보양청>에서 유아교육을, 그리고 <강학청>에서 유년교육을 받고, 세자로 책봉받으면 <시강원>에서 본격적인 제왕수업을 받은 뒤, 실제 왕위에 올라서도 평생을 경연관으로부터 교육을 받는다.
 
어떠한가? 조선에서 왕 노릇하기도 엄청 힘들었을 것 같아 보인다.
 
(뉴스투데이=최동군 객원기자)
 

 
 
문화해설분야 작가 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문화컨텐츠학부 외래교수
저서 : <나도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시리즈물 - 궁궐편, 사찰편, 북한산둘레길편, 능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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