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군의 나도 문화해설사] 정조반차도42-도승지와 병조판서(1)
강이슬 기자 | 기사작성 : 2014-09-23 09:31   (기사수정: 2014-09-2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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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최동군 객원기자]

도승지와 병조판서(1) - 금훤랑(禁喧郞) 등
 
<장용영> 행렬의 뒤를 이어 반차도의 후미대열이 행진하고 있다.
 
■ 내시, 금훤랑(禁喧郞), 사알(司謁), 사약(司鑰)
 
내시 2명이 앞장서고 그 뒤를 5명의 관리들이 나란히 행진하고 있는데 의관(醫官) 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생소한 이름들 이다.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가장 위쪽에는 <금훤랑(禁喧郞)> 이 있는데 사전을 찾아보면 어전(御殿) 혹은 거둥 때 어가(御駕) 근처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들을 징벌치죄하려고 병조의 낭관(郎官) 중에서 임시로 임명하는 벼슬이다.
 
그 아래쪽 그림에는 <사알(司謁)> 이 있는데, 궁중에서 어명을 전달하는 일과 임금의 시종과 알현을 담당하였던 정6품 잡직벼슬이다. 그런데 <사알> 뒤에는 숫자 4(四) 가 있어서 인원이 네 명이라고 표시한 듯한데, 행렬의 구조상 네명이 배치되기에는 매우 어렵고, 실제 의궤에서도 화성행차 때 <사알>로 따라간 사람은 <장광익> 한사람만 확인이 되고 있다.
 
<사알>의 아래쪽 그림에는 <사약(司鑰)>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액정서(掖庭署)에 두었던 정육품(正六品) 잡직(雜職)으로 정원은 2명이며 체아직(遞兒職)으로 각 궁의 자물쇠와 열쇠를 보관하는 일을 맡아보았다고 한다.
 
■ 조선판 파트타임, 체아직
 
체아직은 교대로 근무하며 녹봉을 받거나 주기 위해 만든 관직으로, 정해진 녹봉이 없이 1년에 몇 차례 근무평정에 따라 교체되며, 복무기간 동안만 녹봉을 받는 관직입니다. 체아직에는 동반체아, 서반체아, 잡직체아 등이 있는데, 대부분의 체아직 직과(職窠)는 서반체아 즉 무신들이다.
 
이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데 관직이 모자라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조선판 <일자리 쪼개기>로 이해하시면 쉽다. 그리고 서반에 체아직이 많은 이유는 full time 근무하는 문신과는 달리 무신들은 농사일을 하면서 1년에 일정기간씩 번상(番上, 지방의 군사가 군역(軍役)을 치르기 위해 번(番)의 차례에 따라 서울로 올라오는 것) 하는 관례도 많이 작용을 한 듯하다.
 
<사약> 역시 뒤에 숫자 2(二)가 있어서 인원이 두 명이라고 표시한 듯한데, 실제 의궤에서 화성행차 때 <사약>으로 따라간 사람이 <윤창렬> 한사람만 보인다.
 
뱀의 발(蛇足) : 조선시대의 관직
 
조선시대의 관직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지는데
(1) 실제로 일정한 직임(職任)이 주어지는 실직(實職)과
(2) 일정한 직임(職任)이 없으면서 녹봉을 주지 않는 산직(散職) 또는 허직(虛職)으로 나눌 수 있다.
 
산직(散職)의 존재이유는 실직(實職)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는데 관직 진출을 희망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이런 산직(散職)은 훈장의 성격을 띠는 훈직(勳職)과 실직(實職)으로 정식임용 이전에 수습기간의 성격을 띠는 초직(初職)으로 나뉜다.
 
대표적인 산직(散職)으로는
- 임기를 마친 관료가 다른 직책(실직)을 맡지 못한 경우에 주어지는 영직(影職)과
- 양천(良賤)을 막론하고 80세 이상의 노인에게 주어지는 노인직(老人職)이 있다.
 
한편, 실직(實職)은
(1) 국가로부터 녹봉(祿俸)을 받는 녹관(祿官)과
(2) 녹봉(祿俸) 없이 전지(田地)만 지급받는 무록관(無祿官)으로 나뉜다.
 
무록관(無祿官)의 존재이유는 국가의 재정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녹관(祿官)도 두 부류가 있는데,
(1) 실무를 맡은 실제의 관직인 정직(定職)과
(2) 1년에 몇 차례 근무평정에 따라 교체되면서 복무기간 동안만 녹봉을 받는 체아직(遞兒職)이다.
 
경국대전에 나온 관직의 숫자를 표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 의관(醫官), 사지(事知)
 
<사약>의 아래쪽에 있는 의관(醫官)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지(事知)>가 나오는데 사전의 설명으로는 어떤 일에 매우 익숙함. 또는 그러한 일을 도맡아서 처리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반명사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관직명에서 제가 찾아본 바로는 사지(事知)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종이 만드는 일을 관리 담당하던 관청인 조지서(造紙署)의 실무책임자 사지(司紙:종6품)를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리고 조지서 사지의 정원이 1명 인 것을 고려하면 사지 뒤의 숫자 4(四)도 위에 나온 사알, 사약과 마찬가지로 표기를 잘못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 조선판 대통령 비서실장과 비서관, 도승지(都承旨) 와 승지(承旨)
 
내시 2명과 5명의 관리들 뒤쪽에도 다양한 양반관료들이 행진하고 있는데, 앞부분에 <도승지>가 세 명의 <승지>와 함께 행진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앞서 간 행렬중에서 정조의 두 누이동생을 태운 `군주쌍교` 의 뒤편에 <병방승지> 가 먼저 앞서간 것을 기억할 것이다. 따라서 이 반차도의 행렬에는 총 5명의 <승지>가 등장하고 있다.
 
TV 사극 등을 통해서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승지는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 소속으로 왕명을 출납하던 정3품 당상관 관직이다. 후원(喉院) 또는 은대(銀臺) 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는데 <후원(喉院)>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바로 <임금의 목구멍>이라는 뜻이다. 비서실의 기능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런데 <승정원> 승지의 정원은 총 6명으로 품계는 모두 같았지만 그 우두머리를 <도승지>라 했고, <좌승지, 우승지,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同副承旨)> 와 더불어 6승지라고 했다.
 
조선 개국초기 5명이던 승지를 굳이 6명으로 만든 이유는 국정운영의 핵심주체인 육조(六曹)의 업무를 분담하기 위해서 이다.  세종15년인 1433년에 승정원 제도를 완비해서 <육조>의 업무를 분담했는데 <도승지>는 이조, <좌승지>는 호조, <우승지>는 예조, <좌부승지>는 병조, <우부승지>는 형조, <동부승지>는 공조를 맡았고 이를 각각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 의 6방(六房)이라 했다.
 
 
(뉴스투데이=최동군 객원기자)
 


 
문화해설분야 작가 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문화컨텐츠학부 외래교수
저서 : <나도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시리즈물 - 궁궐편, 사찰편, 북한산둘레길편, 능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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