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형이상학적 실체(實體)와 실재(實在)

윤재은 기자 입력 : 2014.08.20 12:54 ㅣ 수정 : 2014.08.2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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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형이상학적 실체(實體)와 실재(實在):
모든 것은 어떤 것이, 어떤 것에 의해서, 어떤 것으로 변화한다.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세상에 무엇인가가 존재(存在)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의해 존재되어지기 때문이다. 존재란 실체라고 믿는 그 무엇인가가 우리 앞에 있고, 그 무엇인가는 허상(虛像)이나 상상(想像)이 아닌 실체에 해당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의해 제기된 실체와 존재에 대한 의구심은 삶의 가치를 물질에서 정신으로 승화시킨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인간(人間)으로서 나는 무엇으로부터 왔고, 무엇으로 존재(存在)하는가? 이에 대한 질문은 실체의 본질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질문이다. 실체란 무엇인가의 원인(原因)이고 원리(原理)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나는 세상의 모든 물질을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일순간(一瞬間) 존재되어진 것이 사라지고 나면 그 것의 존재는 내 곁에서 멀어지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존재는 일순간의 상상(想像)이나 허상(虛像)이 된다.

이처럼 시간에 따라 변하고 사라지는 것은 실체(實體)라기보다는 실재(實在)인 것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많은 것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실재되어진 것들의 집합이 연장선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의 선(線)’을 통해 실재를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실체를 논증(論證)하게 된다.

하지만 실재(實在)하는 것은 ‘시간(時間)의 지우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시간 속에서 지워져버리게 된다. 시간은 많은 실재들을 지워나가면서 궁극의 근원인 무(無)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여기서 무(無)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생겨나게 된 근원인 것이다. 동양의 철학자 노자(老子)는 모든 것의 근원을 도(道)라 하였으며, 그의 도(道)는 ‘무(無)의 세계(世界)’를 통해 실체의 근원을 이야기한다.

무(無)와 도(道) 그리고 실체(實體)는 하나의 근원을 통해 완성되는데 그 완성의 중심에는 신(神)이라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모든 물질과 정신은 신(神)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존재(存在)와 실체(實體)란 본질적으로 신으로부터 왔으며, 신에게 돌아가는 것이 시간의 역할이다. 시간은 인간의 오만을 경계하며, 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 앞에서 유한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많은 부(富)와 권세(權勢)도 시간 앞에선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것을 ‘시간(時間)의 심판자’ 앞에서 깨닫고 회개하게 된다. 이처럼 유한한 인간의 삶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간을 통해 인간에게 보여주고 있다.

신은 질과 양을 통해 실체의 존재를 드러내며 인간으로부터 믿음을 이끌어낸다. 그 믿음은 아무것도 없음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으로 귀결시켜 신을 인지하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실체와 질 그리고 양에 있어 모든 것의 우선을 실체라고 보았다. 실체는 모든 것의 최상위에 속하고 그다음이 질, 그리고 양인 것이다. 인간이 삶의 바탕에서 추구하는 양의 문제는 질의 가치를 넘지 못하고, 질은 실체의 본질을 넘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다. 따라서 물질적 삶은 질적 삶을 넘지 못하고, 질적 삶은 실체적 삶을 넘지 못한다.

세상의 존재문제에 있어 실체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것은 감각적인 실체를 통해서이다. 하지만 감각적 실체는 두 개로 구분된다. 하나는 영원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한한 것이다. 영원한 실체는 감각적 세계의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며, 유한한 것은 개별적인 것을 말한다. 인간, 동물, 나무, 산 등은 보편적인 실체로서 영원한 것이며, 보편자 중 어떤 인간, 어떤 동물, 어떤 나무, 어떤 산은 개별자에 속하며 유한한다.

보편적 실체에 속하는 것은 대상의 실체가 질과 양에 의해 의존하지 않고 본질에 의존하기 때문에 세상이 종말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실체에 속한다. 신은 보편적 실체의 영혼에서 각각의 대상을 만들었으며, 그 대상에 질과 양을 부여하여 실재(實在) 세계를 우리 눈앞에 던져 놓았다. 절대 전능의 신(神)은 인간의 의지에 관계없이 실체하며, 그의 실체가 나의 실재(實在)를 실체(實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신의 존재를 믿고 찬양하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경이롭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보편적 실체 속에서도 개별적 인간에 따라 생명체로서의 아름다움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얼마 전 방한한 프란치스코 (Jorge Mario Bergoglio, Francis) 교황은 우리들에게 많은 아름다운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의 인자한 미소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 속에 있었으며, 그가 보여준 권위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권위가 생겨남을 보여 주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스스로 행하는 그의 모든 행동들은 인간으로서 가장 높은 권위를 만들어 낼뿐 아니라 사랑으로 승화되었다.

하지만 보편자로서의 동일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행동과 마음에 따라 신의 자식이 되기도 하고, 악마의 자식이 되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으로서 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하면서 신의 자식이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 탐욕에 눈이 어두워 자신을 버리고 노예적 삶을 살고 있다. 노예란 어떤 것에 구속되어지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서 자유를 잃어버린 상태이다.

자유는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무한하며, 끝없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인간이 되기 위해선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낮추며,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랑과 화해를 통해 희망적 삶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