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군의 나도 문화해설사] 정조반차도34 총융사
강이슬 기자 | 기사작성 : 2014-08-19 10:32   (기사수정: 2014-08-1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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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최동군 객원기자]

총융사
 
■ 북한산 등산코스에 총융사(摠戎使) 선정비(善政碑)가 많은 이유
 
수라가자(水刺架子)의 뒤를 총융사(摠戎使)가 따라오고 있다. 총융사는 조선후기 5군영중 하나인 총융청(摠戎廳)의 으뜸 벼슬로 종이품이다. 총융청은 인조때 이괄(李适)의 난에서, 그 반군이 수도 외곽인 경기도의 방어망을 쉽게 뚫고 서울을 점령하게 되는 취약성이 드러난 것을 계기로 설치됐다.
 
그리고 처음부터 수도를 직접 방위하고 왕을 호위하는 군영이라기보다는, 후금과의 관계에 대비해서 수도 외곽 방비를 담당해 간접적으로 수도 방어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한산성이 개축되고, 이어 남한산성 안에 수어청이 설치됨으로써 점차 경기 일원의 방어를 수어청과 나누어 담당하게 됐다.
 
한편 영조때에는 국가 재정의 격감을 이유로 총융사를 경기병사(병마절도사)가 겸하도록 해서 본청을 북한산성 안에 두게 되면서 북한산성을 중심으로 경기북부의 수도 외곽 방어를 담당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지금 북한산 초등학교 입구에서 시작하는 북한산 등산코스 중 중흥사지 근처에는 비석거리로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대부분 19세기에 세워진 총 21개의 비석이 있는데 그 비석내용을 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총융사(摠戎使)`이다.
 
따라서 경기도 일대의 방어를 맡은 총융청의 본진이 북한산 인근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뉴스투데이=최동군 객원기자)
 


 












문화해설분야 작가 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문화컨텐츠학부 외래교수
저서 : <나도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시리즈물 - 궁궐편, 사찰편, 북한산둘레길편, 능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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