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군의 나도 문화해설사] 정조반차도33 수라가자
강이슬 기자 | 기사작성 : 2014-08-1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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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최동군 객원기자]
수라가자
 
■ 임금과 대비의 음식을 담은 수라가자(水刺架子)
 
임금의 가마 정가교의 후미 취타부대와 깃발부대의 뒤를 이어 수라가자(水刺架子)가 나온다.
 
수라(水刺)는 누구나 알듯이 임금에게 올리는 음식물이다. 그리고 가자(架子)는 음식물을 담아 나르는 들것으로, `갸자` 라고도 불렀는데, 원래는 네모진 큰 상자처럼 두툼하게 짜고 두 개의 긴 채를 꿰어서 두 사람이 가마를 메듯이 하여 날랐다.
 
산역 등 초상 때에는 음식을 나르기도 하고, 묘를 만들 때는 흙을 싣고 다니기도 하고, 급한 환자가 생기면 환기를 태우기도 하고, 추수한 곡물을 운반하는 데도 쓰였기 때문에 가마의 개념보다는 들 것의 개념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 수라가자를 감시하는 정리낭청에는 피붙이를 임용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볼 부분은 수라가자를 뒤따르는 정리낭청이다. 정리소에 파견된 낭청(임시 기구에서 실무를 맡아보던 당하관 벼슬로 각 관서에서 차출)인데 의궤에서 찾아보면 이름이 <홍수영(洪守榮)>이다.
 
홍수영은 혜경궁 홍씨의 남동생 <홍낙인>의 아들로서 혜경궁 홍씨의 친조카이다. 훗날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집필할 때 홍수영의 부탁으로 글을 쓰게 되는 인연도 있다. 이렇듯 홍수영은 혜경궁 홍씨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피붙이 중의 하나였다. 그런 홍수영이 수라가자를 뒤따라 간다는 뜻은 정조에게 올릴 수라상을 감시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가 조선의 국왕 중 보기 드물게 83세까지 장수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음식을 이용한 독살을 두려워한 나머지 항상 소식을 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영정조 시절에는 당쟁이 심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뱀의 발(사족) :
수라는 임금의 식사를 가리키는 말로 몽골어로 음식을 지칭하는 용어인 '슐라'가 고려 말에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밥의 높임말인 `진지` 의 왕실 한정 극존칭어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왕이 수라를 드는 것을 "젓수다" 라고 하였는데, 기미상궁은 음식에 독이 있는지를 확인키 위해 항상 임금의 식사 전에 자신이 먼저 한 젓가락씩 먹어본 후 이상이 없으면 왕에게 "젓수십시오."라고 하였다.
한편 수라상의 반찬은 각 지역의 특산물로 만들되, 재료가 겹치지 않도록 하였는데, 흉년이 들거나 좋지 못한 일이 생기면 해당 반찬이 빠지거나 바뀌어서 왕이 밥상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뉴스투데이=최동군 객원기자)
 


문화해설분야 작가 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문화컨텐츠학부 외래교수
저서 : <나도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시리즈물 - 궁궐편, 사찰편, 북한산둘레길편, 능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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