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군의 나도 문화해설사] 정조반차도31 대 취타부대
강이슬 기자 | 기사작성 : 2014-08-0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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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양문숙 기자]
대 취타부대
 
■ 정가교의 대 취타부대에서 연주하지 않는 사람은 딱 한명이다
 
용기(龍旗)의 바로 뒤에는 이 행렬 속에서 최대 규모의 취타부대가 따르고 있는데 의궤에서는 무려 3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대부분의 악기는 앞에서도 한 번씩 등장을 했는데 점자(点字)라는 악기는 처음 나온다. 점자는 군악용 악기의 하나로 밭 전(田)자 모양의 정간(井間)이 있고, 자루가 달린 틀에 두께가 서로 다른 네 개의 소라(小鑼)를 달아서 왼손에 쥐고 북채로 친다.
 
그리고 취타부대의 가장 끝 양쪽에는 정(鉦)과 라(鑼) 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자옥편을 찾아보면 둘 다 징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래쪽의 정(鉦)은 일반적인 징 보다는 크기가 매우 작다. 따라서 꽹과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꽹과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일명 소금(小金)이라고도 하는데 징(大金)보다 크기만 작을 뿐 같은 모양이다, 라고 되어 있다.
 
한편 취타부대의 맨 마지막 부분에는 패두(牌頭) 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만은 유독 악기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 사전에서 패두는 한 패(무리)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며 패장(牌將)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조선 시대 장용위에 속한 군사 50명을 거느리던 사람을 가리키던 용어라는 설명도 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취타부대원의 숫자를 세어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워라! 취타부대원은 정확히 50명 이었다. 따라서 취타부대는 `장용위` 소속임을 알게 되었다.
 
뱀의 발(蛇足) :
정조실록 37권, 17년(1793) 1월 12일(병오) 3번째 기사
* 장용청 설치 연혁    
  
앞서 임인년 에 명하여 무예 출신(武藝出身)과 무예 별감으로 장교를 지낸 사람 30명을 가려서【숙묘(肅廟) 을축년에 무예 별감 30명을 훈련 도감의 국출신(局出身)의 3개 번(番)에 번갈아 임명한 제도를 따른 것이다.】 번을 나누어 명정전(明政殿) 남쪽 회랑에 입직하게 하였다. 그리고 을사년 에 장용위라 호칭하고 20명을 늘리니 이것이 장용영이 설치된 시초이다. 이때부터 해마다 인원을 늘려 왔는데, 척씨(戚氏) 의 남군(南軍) 제도를 본받아 5사(司)에 각기 5초(哨)를 두는 것으로 규례를 삼고 3초는 초마다 1백 15명으로 하였다.【정규 군인 90명, 기총(旗摠) 3명, 대장(隊長) 9명, 서자적(書字的) 1명, 패두(牌頭) 1명, 고수(鼓手) 1명, 인기수(認旗手) 1명, 화병(火兵) 9명이다.】
 
(뉴스투데이=최동군 객원기자)
 


문화해설분야 작가 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문화컨텐츠학부 외래교수
저서 : <나도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시리즈물 - 궁궐편, 사찰편, 북한산둘레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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