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장] 송창일 “운명적으로 만난 불상, 지금까지 10만점 이상 조성”

강이슬 기자 입력 : 2014.06.10 09:38 |   수정 : 2014.06.1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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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창일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어쩌면 정말 운명적으로 부처님 조성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어려울 때도 있지만, 보람된 일이에요.”
 
국내 방방곳곳 사찰에도, 또 바다 건너 해외에도 송창일 명장의 혼이 깃든 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대한민국 주조 명장이자 천종사 대표이사인 송창일 명장은 명실 공히 우리나라 청동주조 1인자다.
 
송창일 명장은 어린 시절부터 신심(信心)이 깊은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절을 다녔고, ‘스님이 될 팔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정도로 불교와 인연이 밀첩하게 닿아있다. 전라남도 고흥에서 16살의 나이에 서울로 올라와 주물을 배웠다. 이후 홍익대학교 최기원 교수에게 조각을 사사했으며, 전통방식으로 주조하던 이종옥 스승을 만나 기술을 면밀하게 다졌다.
 
청동불상을 비롯해 철불상, 범종, 불탑 등 불교 관련 주물을 다루고 있는 그의 작업현장인 경기도 광주 천종사를 찾았다.
 

▲ 천종사 전경 [사진=양문숙 기자]


■ 운명처럼 들어선 불교 주조
 
- 불교 관련 주조를 집중하게 된 계기는?
 
“대목장인 아버지 밑에서, 머슴이 두 명이 있을 정도로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었어요. 그러다 보니 많이 배우지 못하고, 기술을 배우러 서울로 올라오게 됐죠. 처음 주조를 배울 때에는 이순신 동상, 연세대 독수리상 등 불교 관련 주조가 아니더라도 국내 큰 작품들을 다뤘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전통방식으로 불상만 전문으로 다루는 선생님을 만나 그 밑에 10여 년 있으면서 우리나라 국보 모조만 500점 가까이 다루게 됐어요. 그 인연을 계기로 완전하게 불교 관련 주조로만 접어들었죠.”
 
- 운명처럼 이 길로 접어들었네요.
 
“네. 정말 처음부터 운명적으로 다가 와서 부처님을 조성하게 됐는지도 모르죠. 이 일은 제 직업이기도 하지만, 저의 종교이기도 해서 다른 건 전혀 생각 안하고 항시 이 일에만 몰두해있어요. 또 청동작업이 어렵기 때문에 힘들긴 해도 제가 만든 작품들이 국내에 엄청나게 있으니깐 뿌듯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죠.”
 
- 불상은 다른 공예와는 다르게 종교 관련이기 때문에 다루는 마음가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지금도 불상이나 범종을 만들 때는 마음가짐부터 남달라요. 작업실 내 사무실에 법당을 차려놓고 아침저녁 기도를 드리면서 작업을 해요. 저와 30여 년을 함께 일해 온 직원들이 10명 이상인데, 직원들도 마찬가지죠. 어느 정도 신심을 가지고 하지 않으면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봐요. 아직도 미신적인 걸 많이 지키는 편인데, 특히 범종을 만든다거나 주물을 붓기 전에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곤 하죠.”
 
- 불상의 종류와 국내에 주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일단 불상의 종류는 굉장히 많죠. 대부분 석가모니 불상을 주로 떠올리지만, 다른 불상 종류도 굉장히 많아요.(불교상은 크게 여래상, 보살상, 나한상, 산신상 등으로 나뉠 수 있고, 부처의 모양이나 재질로도 나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 주물을 하는 사람을 많지 않습니다.”

▲ 송창일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 불상은 얼굴 - 범종은 소리가 중요해
 
- 우리나라 대부분이 청동불상인가요?
 
“그렇죠. 이순신 동상, 세종대왕 동상 혹은 건물 앞에 있는 조각작품(동상)들 대부분이 청동이에요. 그렇게 현대 동상들도 대부분 청동이고, 대불들도 거의 다 청동입니다.”
 
-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나요? 아니면 현대적인 방식으로 바꾸어서 만드나요?
 
“옛날 전통방식만으로는 제작비용을 따라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은 거의 현대방식으로 만들면서 꼭 필요할 때만 전통적인 방법을 가미해요.”
 
“하남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철 불상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332호)’을 재현할 때 현대방식과 전통방식을 가미해서 작업을 했어요. 제가 이 작업을 의뢰 받기 전에 재현을 시도했던 분들이 규모가 워낙 크고, 톤수도 엄청나서 주물을 한 번에 붓지 않고, 따로따로 부어서 붙이려다가 실패를 했거든요. 그것을 제가 전통방법과 현대방법을 가미해서 하나로 부어 성공했죠. 저도 걱정이 많았는데, 주물이 생각보다깨끗하게 나왔어요. 전문위원들도 깜짝 놀랄 정도의 주물을 보여줬었죠. 지금도 그 작품을 보면 고무돼요. 국내 철불 중에서 저렇게 큰 사이즈는 최초일 거예요. 앞으로 저런 작품을 얼마나 만들는지 모르겠지만, 전통 방법을 가미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봐요.”
 
- 완성하고 나서, 기분은 어땠나요?
 
“주물을 부어놓고 해체할 이틀 동안 잠을 설쳐가면서 기다렸어요. 이틀 뒤 열어보니 생각보다 깨끗하게 나와서, 기분이 너무 좋았죠. 저런 작품을 만들 기회가 또 있다면 한번쯤 또 시도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굉장히 뿌듯해요.”
 
- 범종은 모양도 모양이지만, 소리까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처음엔 불상보다 더 힘들지 않았나요?
 
“불상은 얼굴이 가장 중요하고, 범종은 소리가 가장 중요해요. 부처님을 조성할 때는 전체적인 아름다움과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 표현이 어렵죠. 범종은 모양이나 문양도 중요하지만 당연 소리가 첫째죠. 그래서 아직도 주물하는 데는 범종이 더 힘들어요.”
 
 

▲ 송창일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 지금까지 만든 작품이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작은 불상은 몇 천불씩 만들기도 하니까, 숫자상으로 몇십 만점은 될 거예요.”
 
- 전국에 돌아다니면 직접 주조한 불상을 많이 볼 텐데, 다시 가서 보면 느낌이 어떤가요?
 
“예전에 만들었던 작품과 최근에 만드는 작품에 차이가 조금씩 느껴져서 계속 발전해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돼요. 외국에도 제 작품이 많이 있어요. 스리랑카의 한 박물관에서 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도 봤어요. 실제로는 제가 한 절에 스님께 조성해드린 불상인데, 그 스님이 스리랑카 국립박물관에 기증을 했더라고요. 박물관에 번듯하게 진열되어 있는 걸 봤는데, 기분이 참 묘했죠. 여기까지 내 작품이 와있구나 싶어서.”
 
- 작업 하면서 가장 보람됐던 때는?
 
“범종은 춘천 '시민의 종'을 만들었을 때, 불상은 부산 홍법사 대불을 만들었을 때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춘천 ‘시민의 종’ 소리가 굉장히 좋았어요. 강원대의 한 교수가 와서 음 측정을 해보더니 자신이 음 측정한 중에서 소리가 가장 잘났다고 해줬는데, 그때 참 보람됐어요. 요즘도 누가 종에 대해 물어보면 춘천에 가서 종소리를 들어보라고 해요. 홍법사 대불은 제 손으로 조각부터 주물까지 맡았던 작품이기도 하고, 크기도 제일 크고 100t 가까이 가는 대작이에요. 국내 불상 중에서 제일 큰 불상이기도 하고. 불상을 처음 공개하는 행사에 2만 명 정도의 사람이 모였고, 절에서 감사패도 받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어서 가장 보람되고 기억에 남아요.”

▲ 그가 꿈꾸는 청동박물관 모형(맨 왼쪽) 앞에 선 송창일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 청동 박물관, 최첨단 법당을 꿈꾸다
 
- 불상 1인자가 되었는데, 처음 시작할 때 이런 성공을 예상했나요?
 
“글쎄요. 처음에 일반 작품 쪽에서 일을 하다가, 우리나라 국보 모조 쪽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어려움이 많이 따랐어요. 자금줄도 힘들었고.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겠지만, 불교 관련이다보니 많은 스님들의 도움을 받아 큰 작품을 계속 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명성도 얻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 운도 많이 따랐고요.”
 
- 그만두고 싶단 생각은 한 적 없나요?
 
“주조를 처음 배우면서 지금까지, 딱 한 번 이일을 그만두려고 했던 적이 있었어요. 직장생활하면서 일을 관두고 다른 일을 해보려고 마음을 먹었죠. 아는 사람을 따라 장사를 해보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안 나와서 다시 불상을 잡게 됐어요. 장사에 소질도 없었고, 내가 장사를 하는 것 보다는 일단 먼저 시작하고 배운 주조를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돌아왔죠.”
 
- 좌우명이 있다면.
 
“‘장인의 혼을’이란 좌우명을 벽에 걸어 두고 아침저녁으로 보면서 다짐해요. 이 곳에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다들 ‘장인의 혼을’ 갖고 만들자고 하고 있어요. 우리 선조가 했던 것을 봤을 때 정말 대단하구나 감탄할 때가 많은데, 우리도 우리 선조들처럼 후대들이 봤을 때 감탄할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항시 제 좌우명인 ‘장인의 혼을’이란 마음을 가지고 작업에 임합니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요?
 
“중요무형문화재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우리나라에 아직 청동불상을 만드는 문화재가 없어요. 지방문화재 한 사람도 없죠. 한 번 도전했다가 실패했는데, 지금 다시 준비해서 곧 도전하려고 해요.”
 
“또 제주도에 청동으로 된 박물관을 지으려고 해요. 모델로 만들어 논 모형도 있는데요, 손이 천개, 눈이 천개인 천수천안 모형에 45m 높이로. 이 안에는 청동 제품을 팔 수 있는 상가를 두고, 우리나라 국보 모조품을 한 데서 볼 수 있는 공간과 외국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최첨단 법당이 들어서도록 계획하고 있어요. 법당은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몇 개 국어를 동시에 통역할 수 있는 법당이에요. 이 박물관이 현재는 꿈이지만, 언젠간 실현되면 기네스북에도 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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