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장] ‘나전칠기’ 손대현 “보물 만드는 마음으로”

강이슬 기자 입력 : 2014.05.19 08:02 |   수정 : 2014.05.1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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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대현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제 작품이 어딘가에서 귀중하게 보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참 보람을 느껴요. 하나하나가 보석이라 생각해요.”
 
수곡 손대현 명장의 나전칠기 작품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일본 천왕 등 세계 각국의 귀빈들에게 한국의 멋을 담은 선물로 주어졌다. 그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3호이며,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문화재관리국장상, 국무총리상, 대통령 표창 등 다수의 수상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옻칠장이다.
 
손대현 명장은 자개 빛에 매료되어 1960년대부터 칠(漆)을 시작했다. 첫 3년은 화학 칠을 이용한 카슈제품을 다루는 공방에서 배웠다. 그러다 카슈칠과는 다른 ‘옻칠’의 세계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본격적으로 옻칠을 배웠다. 그렇게 칠과 함께 한지도 벌써 50여 년이다.
 

▲ 나전칠기 손대현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 나전칠기, 반짝이는 아름다움에 매료되다
 
칠공예 장식기법 중의 하나인 ‘나전칠기’는 옻칠한 목제품에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내어 박는 것으로, 과거에는 목제품에 주로 쓰였지만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소재에 접목되고 있다.
 
손대현 명장은 나전칠기의 어떤 매력에 빠져 50여 년을 해오고 있을까. 그를 만나 나전칠기 이야기를 듣고 왔다.
 
- 처음 시작할 때 나전칠기의 어떤 매력에 빠지셨나요.
 
“자개를 보면 자개 빛이 위치에 따라 보이는 빛깔이 달라요. 자개의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에 이끌려 나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 배우기 힘들었을 텐데.
 
“그럼요. 사포질도 하고, 칠하는 과정들이 험하게 보이잖아요. 그래도 하나하나 새롭게 완성되어 가면 그 아름다움은 어디에 비할 바가 없어요. 처음에는 험한 과정, 밑바닥부터 배우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배우고 싶은 걸 하고, 아름다움에 빠지니 그리 힘들지 않았어요. 처음 시작할 땐 배운 다기 보다는 선배들 옆에서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 눈동냥으로 배우는 거죠. 그러다 선배들 잠시 식사하러 가셔서 자리가 비면, 어떻게 하셨나 보기도 하고, 칠해보기도 하고 그랬죠.(웃음)”
 
- 처음 자개 시작했을 때 세웠던 목표는?
 
“처음 배울 때 그곳에 책임자처럼 빠른 시간 안에 저 정도 기술을 익히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죠. 언젠가는 내가 저 정도 실력을 갖고, 또 넘어야 겠다는 욕심이 있었죠.”
 
- 전시장에 두 명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누구인가요?
 
“제 스승님인 민종태 선생님과, 민 선생님의 스승님이자 나전칠기의 태도라고 할 수 있는 전성규 선생님입니다. 저의 배움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에 걸어두었어요.”
 
“우리 선생님의 호(號)가 ‘수곡(守谷)’이었어요.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호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수곡’이란 호는 선생님이 쓰시기 이전에 진성규 선생님께서 쓰시다 물려주신 호라고. 그러면서 이제는 저 보고 그 호를 쓰라고 하셨어요. 유언처럼 남기신 그 말을 듣고, 원래 쓰던 호를 두고 ‘수곡’이란 호를 제가 쓰게 됐죠. 그렇게 3대 째 내려오고 있는 호입니다.”
 

▲ 손대현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 과정을 소중히, 옻나무 직접 심기도
 
- 옻칠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과정이에요. 마감 칠을 해 버리면 그 전에 했던 과정들이 감춰져버려요. 제 스승이신 민종태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밑에 보이지 않은 부분이 정확해야 정말 천 년이 가는 명품으로 남는다’는 철학을 말씀해 주셨어요. 밑바탕이라고, 안 보인다고 소홀히 하면 안 되고 과정 하나하나를 빠트리지 말고 충실히 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라, 지금도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 작품당 작업 소유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기초부터 마감 칠까지, 크나 작으나 과정은 같아요. 보통 3개월 정도는 거쳐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다고 보죠. 하루만 말려도 칠은 마르지만, 그래도 충분히 건조를 해서 숙성된 기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최소 3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 소요됩니다. 때로는 1년 이상 걸리는 작품도 있어요.”
 
- 칠을 할 때는 먼지 하나도 굉장히 신경이 쓰일 것 같은데.
 
“당연히 그렇죠. 옻칠을 할 때는 먼지가 전혀 없어야 되니깐 일단 작업실 청소를 말끔하게 한 다음에, 옷에 묻은 먼지가 있을 수도 있으니 윗옷을 벗기도 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칠을 합니다.”
 
“항상 옻칠을 끝내고 다음날 칠방 문을 열고 확인을 할 때는, 문을 열기 전에 ‘멈칫’해요. 칠이 내가 원하는 대로 바르게 되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경건한 마음이 들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칠을 확인하는데 티끌하나 없이 깨끗하게 잘 나오면 정말 너무 기쁜 거죠.”
 
- 칠을 시작한지 40여 년이 흘렀는데, 지금도 칠방 문을 열기 전에 멈칫하나요?
 
“그럼요. 한결같죠.(웃음)”
 
- 칠하는 것 외에 디자인이나 문양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 했기 때문에, 문양 책이나 디자인 책들을 틈만 나면 보죠. 보면서 이 문양은 어떤 작품에 어울리겠다, 다른 것과 이렇게 접목시켜야 겠다 등 다양한 생각들을 하고, 그것들을 기록해 정리 해 놨다가 작품에 접목해요.”
 
- 옻의 원재료인 옻나무도 직접 심고 기른다고.
 
“네. 제가 옻칠을 하면서 제가 직접 기르고, 채취해서 칠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거든요. 그런 의미로 땅을 마련해 옻나무 묘목을 심었어요. 그 나무에서 옻을 채취해서 실험용으로 직접 칠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심은 양으로는 작품에 쓸 만큼의 양은 전혀 안 돼요.(웃음) 제가 직접 기른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으로, 실험용이라도 만들어 보는 것에 의미가 남다르죠.”
 
-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예전에 전복 중에서도 아주 아름다운 것으로 골라 3층장을 세트로 만든 적이 있어요. 어떤 분께서 사가셨는데, 그 분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저는 혹시 장식이 잘 못 되었거나, 녹이 슬었나 라는 생각으로 찾아갔는데, 그 분이 ‘정말 좋은 작품을 해줘서 고맙소’라고 인사를 하려던 거였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분이 어느 날 밖에서 아주 마음이 상해서 들어 오셨데요. 노한 마음을 가지고 방에 있었는데, 자기도 의식하지 못 하는 순간 마음이 너무 차분해져 노여움이 가셨다는 거예요. 본인도 놀라서 보니깐, 제가 만든 3층장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데요. 화사한 나전에 빛깔과 문양이 자신의 마음을 씻어줬다고. 늘 봐왔지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며, 시집가지 않은 두 따님에게 제 작품을 꼭 사주겠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제 작품 하나하나 다 애정이 가지만, 그런 말을 듣다 보니까 그 작품이 제 머리 속에 계속 남더라고요.(웃음)”
 

▲ 손대현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 기법은 전통 그대로, 디자인·형태는 현대화
 
손대현 명장은 전통방식 그대로 만드는 전통답습보다는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현대화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 BMW의 자동차 내장재의 나전 장식을 맡기도 했으며, 삼성TV에 일본 유명 전자업계 CEO 영문 이름을 그가 직접 나전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 BMW, 삼성TV 등 산업적인 면에서의 작업은 평소 하던 작업과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은데.
 
“전통공예라고 하면, 예전걸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먼 훗날 봤을 때는 이것이 조선시대 것인가, 아니면 그 후 시대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 시대에 살면서, 이 시대에 모든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문양과 소재를 사용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소재도 많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나무에 옻칠을 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는데, 하지만 지금 이 세대는 여러 가지 소재가 많이 나오잖아요. 금속,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에 옻칠을 접목해서 이 시대에 맞게 계속해서 도전해 나가고 있어요. 그래서 아마 그런 산업 쪽에서 일이 들어오고, 결과가 좋지 않았나 싶어요.”
 
- 고급스런 옻칠의 대명사가 됐다. 자신의 어떤 면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특별한 건 없다고 봐요. 단지 제가 한 가지 꾸준히 해오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작업을 해왔기 때문 아닐까요?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아주 오래 전 작품들을 재연해보면서, 그 시절 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 라고 고심도 해봤고. 현재 이 시대에 맞춘 작품을 만들더라도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서 해왔어요. 또 무엇보다 제 작품을 직접 사용하고, 선물하던 분들이 좋아해주시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 답습이 아닌 현대화하는 이유는 뭔가요.
 
“‘현대화’ 혹은 ‘새롭게 한다’는 것에 일반인들은 오해를 할 수 있는데, 기법과 재료 등은 절대 변화면 안 되고 옛날 그대로 사용을 하되 디자인과 형태 등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재료와 기법은 절대 손상 되서는 안 되는 것이 철칙이죠. 현대 우리가 하고 있는 나전칠기 기법이 고려 때 이미 하이퀄리티 기술로 완성이 된 것이에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완벽하게 완성된 기술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거랍니다.”
 

▲ 손대현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 나전칠기의 아름다움, 세계로 알렸으면
 
- 공예를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제가 지하 공방에서 작업을 할 때, 그 곳이 수혜를 입어서 힘들었던 때가 생각이 나네요. 그때 그 어려움은 그저 열심히 일하는 걸로 이겨냈죠. 힘들었던 적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런 어려움 보다는 작품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더 많기 때문에, 그런 어려운 기억은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지 않아요. 다 상쇄되고 사라지죠.(웃음)”
 
- 그럼 가장 보람됐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1992년 신라호텔에서 초대전을 열었을 당시인데, 어느 날 한 손님이 저를 꼭 만나고 싶다는 가이드의 연락을 받고, 호텔로 갔어요. 70세 정도의 노신사분이 제 작품을 보고, 저에게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 검(劍)자루에 나전 문양을 해줄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흔쾌히 수락해 작업을 하고 완성해서 보여드렸는데, 너무 기뻐하더라고요. 그분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얼굴이 순간 기쁨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말 뿌듯했죠. 거기다가 그것을 가보로 계속 내려갈 거라니 더 기뻤어요.”
 
“제가 민종태 선생님 아래서 일을 할 때 한 일본 바이어가 찾아와서 자기네 문양을 가지고 칠을 해달라고 했는데 선생님께서 거절한 적이 있었어요. 직접 디자인한 도안이 아니면 칠하지 않는다고. 결국 선생님께서 디자인한 도안으로 작업을 했고, 제가 칠을 해서 마무리를 하게 됐어요. 완성된 날에 선생님께서 작품을 보여주니, 일본 바이어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작품을 받고는 너무 아름답다고 감탄했어요. 받는 사람이 그렇게 정성스럽게 받는 걸 보고, 나도 언젠가 저런 기회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때 신라호텔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어요. 물론 그 분이 무릎을 꿇지는 않았지만, 일본 바이어처럼 기뻐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저에게 정말 좋은 기쁨으로 남아있죠.”
 
-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전칠기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공예기술이에요. 물론 다른 훌륭한 공예들도 많이 있지만요. 옻칠은 일본이 더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옻칠과 나전을 접목한 나전칠기는 일본의 옻질장들도 와서 배울 정도로 독보적이거든요. 그런 좋은 나전칠기가 해외에 많이 알려질 기회가 없었어요. 우리 장인들이 스스로 그 부분을 해결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고, 한계가 있어요. 저의 바람은 해외 유명한 미술관이나 전시공간에서 나전칠기를 전시해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공예를 더 많이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손대현 명장이 직접 심은 옻나무 앞에서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양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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