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그 시간(時間) 그리고 그 길(路)’ – 나는 항상 그 길(路)을 걸어가고 있었다.

윤재은 기자 입력 : 2014.05.12 10:48 ㅣ 수정 : 2014.05.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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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그 시간(時間) 그리고 그 길(路)’ – 나는 항상 그 길(路)을 걸어가고 있었다.

(뉴스투데이=윤재은 수석전문기자) 우리는 세상의 빛을 통해 생(生)의 길(路)로 들어서는 순간 ‘그 길(路)’을 가고 있었다. 그 길은 축복(祝福)의 길이요, 사랑의 길이요, 행복(幸福)의 길이었다. 그 길은 항상 내 앞에 있었고, 내 자신이었으며, 내가 쓴 역사였다. 하지만 그 길은 보려는 마음만이 볼 수 있었고, 구도(求道)하려 하는 영혼(靈魂)만이 담을 수 있었다.

세상의 역사는 남들에 의해 쓰여 지지만 내 생(生)의 역사는 오직 나만의 시간을 통해 쓰여 지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이다. 지구상에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난 것, 그것은 신의 계시이며, 운명이었다. 우리는 신의 축복으로 태어난 소중한 ‘나’를 발견한다. 세상의 중심에선 나는 바로 ‘그 시간(時間), 그 길(路)’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항상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많은 물질에 휘둘려 내가 걸어간 길을 쉽게 망각해 버렸다. 좋은 집, 좋은 자동차, 좋은 음식 등 수많은 물질들이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덮어버리면서,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잃어버렸다. 그 길은 항상 내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 길을 보지 못하고 그 길을 찾고 있었다. 그 길을 찾아 떠나는 나의 모습은 초라하고, 외소하기 까지 했다.

저 넓은 들판에서 길을 잃어 헤매는 어린 양의 모습처럼, 나는 나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깜깜한 밤하늘에서 길을 잃으면, 하늘에 빛나는 북두칠성을 보면서 길을 찾으면 되었다. 하지만 영혼이 찾고자 하는 ‘그 길(The Road)’은 별빛마저 잠들어 버린 어둠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은 어둠은, 어둠이 아니고 ‘흑암(黑暗)’이었다. 세상은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은 흑암 속에서 ‘무(無)’였고, 나 또한 없었다. 그 곳엔 오직 신(神)만이 현존(現存)하였다.

영혼의 순수성 속에서 나는 무(無)였다. 신의 순수성 속에서도 나는 무(無)였다. 하지만 인간의 질서가 만든 세계에서 나는 ‘기계(機械)’였다. 일하는 기계, 말하는 기계, 죽어가는 기계. 세상 속에서 기계가 되어버린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나는 세계 속에 묻혔고, 세계는 기계처럼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일상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기계소리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든 소음이었다.

세기의 예술가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는 그러한 소음을 참을 수 없어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던 것일까? 인간의 욕망(慾望)과 탐욕(貪慾)이 만들어낸 수많은 소음 속에서 나는 나의 길을 잃어 버렸다. 그 길은 어둠의 그림자가 삼키고 간 길이었다. 그 길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린 길 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나는 나의 ‘시간(時間)’을 잃어버렸다. 신으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저만큼 가버리고, 나는 연기처럼 사라져 가버린 내 ‘생(生)의 시간’을 찾고 있었다.

‘그 시간(時間) 그리고 그 길(路)’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그러나 시각을 잃어버린 장님처럼 나는 힘들게 그 길을 찾기 위해 세상을 더듬고 있었다. 그러나 물질적 욕망(慾望)과 야망(野望)으로 가득 채워진 내 마음은 순수의 소리보다는 기계의 소음을 더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그 소음에서 빠져 나오길 바라는 가느다란 희망은 욕망의 소용돌이에 갇혀 세상을 헤매고 있었다.

신의로 부여 받은 아름다움 자연은 나의 희망이며, 생명이다. 푸르른 초록위에서 나는 당당히 ‘나’였다. 위대한 자연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개울가에 물이 흐르고, 새들이 지저귀며, 파란하늘에 하얀 양때 구름이 떠다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세상속의 숨어버린 나를 찾고 있었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가장 아름다운 표현(表現)의 자연을 보면서 시간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나를 보았다. 그 끝은 끝이 아니고 시작을 위해 가는 길이었다.

나는 물소리에 잠들고 새소리에 깨면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나는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무가 바람을 대하고, 바람이 나무를 대하는’ 이치(理致)를 깨달게 되었다. 그 세계는 ‘위대한 자연(自然)’이었다. 위대한 자연은 항상 그대로의 자연이었다. 세속의 인간처럼 꾸밈이 없는 순수의 자연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잠들고, 그 속에서 숨 쉬었다. 세계는 아름답고, 삶은 행복했다.

인간의 행복한 삶은 정의(精義)로와야 했다. 정의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소크라테스(Socrates)는 단순히 사는 것을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잘 사는 것을 소중히 여길 것을 강조하며 ‘그 길(路)’을 갔다. 나도 그 길을 가고 싶었다. 우리들의 삶에 있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의 가치를 인정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정의롭게’사는 것이다. 그러한 삶속에 세계가 있고 또한 내가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의(正義)를 외면하거나, 물질을 위해 신의(信義)를 저버리는 것보다 비굴하고 나약한 삶은 없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순수 욕망을 세계 속에 확장하여 ‘자연 상태’로서의 삶을 살아가야겠다.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