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변명(辨明)’ - 말은 욕망과 함께 섞이면 변명(辨明)이 되고, 진실과 함께 섞이면 정의가 된다.

윤재은 수석전문기자 입력 : 2014.04.23 12:28 |   수정 : 2014.04.2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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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변명(辨明)’ – 말은 욕망과 함께 섞이면 변명(辨明)이 되고, 진실과 함께 섞이면 정의가 된다.

(뉴스투데이=윤재은 수석전문기자) 말이란 생각과는 달리 충동적(衝動的)이다. 원래(原來), 말이란 주어진 사실, 혹은 설명하려는 내용에 대한 상대와의 의사전달이지만, 상황에 따라 말하는 화자(話者)의 입장에서 유리한 쪽을 택하게 된다. 이러한 심리는 인간의 마음속에 쉽게 자리한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세계를 읽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대화의 기술에는 말뿐 아니라 눈빛, 몸짓, 느낌 등을 통해 상대에게 자신의 주장이나 의지를 설득하는 것이 말의 기술이다. 하지만, 사실을 빗나간 거짓 유혹(誘惑)의 욕망에서 말은 의사전달의 기술이 아니고 은폐(隱蔽)의 기술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선(善)한 마음만을 가지고 태어난다. 인간의 태생(胎生)이 선하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마음이 깨끗하다는 데에서 알 수 있다. 어린아이는 태어나면서 거짓말이나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본시(本是), 신(神)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결합하면서 선(善)한 마음만 남겨 두었다. 인간의 마음속에 본성적으로 들어있는 선한 마음은 세상을 이롭게 하고 인간 자신도 이롭게 한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에 무언가가 채워지고 관념이 생겨나면서부터 마음의 순수성은 관념과 함께 타락하기 시작한다.

관념(觀念)이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관한 생각과 견해인데, 이러한 관념들은 인간의 뇌 속에 자리하면서 다양한 생각과 상상을 만들어낸다. 본시(本是), 관념이란, 신이 부여한 순수상태에서 사실만을 받아들여 기억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순수상태의 백지 속에 채워진 관념은 인간의 욕망에 따라 서로 다른 구성을 하며 ‘천(仟)의 얼굴’을 가진다.

인간의 관념이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결합되고 표현되어지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욕망(慾望)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의 표현에 있어 말은 ‘결합의 기술’이 된다. 태초부터 인간의 마음속에 채워져 가는 관념의 씨앗들은 ‘백지상태’의 순수성 속에 자리하지만, 관념의 씨앗이 자라면서부터 순수상태는 욕망상태로 변하게 된다. 인간이 욕망상태가 되기 시작하면, 진실은 말하는 화자(話者)의 이익과 욕망에 귀속되며, 사실보다는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말을 했을 때 그 말이 화자(話者)에게 얼마만큼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를 따지고 그 이익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

‘말은 욕망과 함께 섞이면 변명(辨明)이 되고, 진실과 함께 섞이면 정의가 된다.’ 정의롭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말이 앞서고, 그 말 속에 음모(陰謀)나 모략(謀略)이 숨어있다. 신의 눈과 귀를 통해 바라본 세상의 정의는 언제나 하나이며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변치 않는 진리는 하나의 사실 속에서 싹트고 결실을 맺게 되어 있다. 변할 수 없는 사실이 서로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처럼 말은 칼의 양날과 같아서 진실의 입을 통하면 그것은 정의(正義)가 되고, 거짓의 입을 통하면 그것은 변명(辨明)이 된다.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들 속엔 언제나 변명의 소리가 자리 잡게 된다. 변명은 사실을 떠나 자신의 주장에 대한 강변(强辯)이다. 어떠한 사실에 대한 변명은 변명을 하는 사람만이 그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진실이란 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태양이 빛을 발하는 것처럼 명확하다. 하지만 변명을 하고자 하는 사람 앞에선 태양도 어둠이 되고 만다. 세상의 선(善)과 악(惡)은 행하는 자가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말하는 자의 입과 혀를 통해 그 진실은 은폐되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한다.

변명(辨明)이 반드시 나쁜 의미만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에 대한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에겐 변명은 진실을 알리는 도구이며 자기 방어권이다. 어떠한 사건의 원인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가 억울한 모략이나 누명을 쓰게 된다면 인간은 자기보호의 본능적 욕망을 통해 변명을 하게 된다. 이때 말하는 변명은 사실을 사실화하기 위한 자기주장이며, 인간이 갖는 최소한의 권리이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나라에서 신봉하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사형에 처해지면서 자기변명을 한다. 이때 변명은 진실을 왜곡하거나 오도(誤導)한 사람들에 대한 자기항변이다.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사람들은 그가 천상과 지하의 일을 탐구하고, 약한 이론도 강한 것처럼 말하거나, 거짓을 남에게 가르치는 범죄자이기 때문에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한 사람들에게 정말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사형에 처해질 정도의 잘못을 하였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과연 그들은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보통의 사람들은 진실을 아는 것 보다 다수의 주장과 여론에 의지하여 어떠한 사건을 판단하려한다. 사건의 본질과 진실을 무시한 채 몇몇 사람들의 주장이나 판단이 진실이 되어버리는 사회는 소크라테스가 죄 없이 사형을 당하는 아테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의 침몰로 대한민국은 우울하고 침울한 국가가 되어 버렸다. 꽃도 피워보지도 못하고 차가운 바다 속에 매몰되어 버린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릴 뿐 아니라,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고귀한 생명이 세상에 나와 신의 의지가 아닌 인간의 잘못된 관행과 판단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힌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국가는 국민이 부여한 힘을 이용하여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만약, 국가가 그러한 의무를 잘 못한다면 그 피해는 국민이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다양한 ‘변명(辨明)’을 들을 때면, 인간의 천박한 욕망(慾望)이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 버리는 것 같다.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욕망, 나만 살겠다고 다른 사람의 생명은 저버리는 욕망,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려는 욕망,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규정을 무시하는 욕망,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힘을 잘 발휘할 줄 모르는 욕망 등 말할 수 없는 인간의 저급한 욕망은 이번 세월호의 참사를 통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도 저 바다 깊은 곳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어린 영혼들과 자식과 가족을 잃은 수많은 유족들의 마음에 안식(安息)의 영혼(靈魂)이 함께 하길 기원할 뿐이다.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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