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윤재은 수석전문기자 입력 : 2014.03.17 17:09 |   수정 : 2014.03.1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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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뉴스투데이=윤재은 수석전문기자)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이에 대한 질문은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며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인 질문 하나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에 대한 대답과 삶의 태도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일상적 사고(思考)를 통해 받아들여지는 삶의 태도는 삶을 유지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고, 살기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일상적 삶의 태도는 가장 솔직하면서도 진솔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연의 한 부분으로 태어난 인간이 이성의 발전을 통해 이룩한 문화(文化)세계에서 단순히 살기위해 산다는 것은 왠지 궁색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답변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자연에 내던져진 돌이다”라는 헤르만 헤세(Herman Hesse)의 말처럼, 세상의 중심에 선 나를 바라보는 내 자신의 관조(觀照)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존(自存)을 확보하기 위한 수행(修行)의 하나이다. 매일 아침이면 잠에서 깨어나 몸을 씻고 거울 앞에 선 나는 세계 속에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본다. 아침이면 일어나 식사하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며 살아가는 나는 사회의 한 표본이다.

보통사람으로서 이러한 삶을 살다보면 거울 속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늘어나는 주름과 흰 머리 뿐이며, 이를 통해 시간의 빠름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이 세상 속의 내 존재인양 나는 거울속의 나로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고, 알고 있는 내 모습은 그동안 거울을 통해 보아왔던 착각(錯覺)의 나 일 뿐 본질적 나일 수 없다.

거울은 무언가를 비쳐서 대상을 보여주는 과학적 산물이지만, 그 속에 비쳐지는 모든 것들은 대상을 그대로 비추지 않는다. 거울에 비쳐진 세계는 대상을 반영할 뿐 그 대상을 반대로 보여준다. 거울 앞에서 내가 오른 손을 올리면, 거울 속 나의 그림자는 왼손을 올려 화답한다. 이처럼 거울 속의 나와 거울을 바라보는 나는 보는 것과 보여 지는 것의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대립적이다.

대상의 무엇인가를 보려는 의지와 그것을 보여주는 관계가 대립적이라는 말은 보는 것과 보여주는 대상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거울 속에 비쳐진 내 모습을 통해 내 자신을 이해하고 기억하려는 것은 내 자신의 그림자만을 보고 내 모습을 이해하려는 동굴 속 그림자 인간과 같다.

진정한 자아(自我)로서 내 자신을 찾고, 내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거울 속에 비쳐진 나의 모습을 보는 것 보다 내 자신을 내 육체로부터 끄집어내어 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가 태어나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들을 타자(他者)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팽배한 현 사회에서 나는 기계인간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기계가 아닌 이상, 세상의 중심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삶의 주체로 나아가기 위해 나는 오늘도 숨을 쉬며, 일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가는 일상에서 세파(世波)에 지친 내 자신을 보면 진정한 삶에 대해 그 의미를 놓칠 때가 많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부처님 말씀처럼 세상은 나의 존재를 통해 그 존재의 세계가 나타나고, 신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없는 세상은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으니 내가 없으면 세계도 없고, 신 또한 없는 것이다.

결국 나의 존재는 세계의 존재이고, 세계는 나를 통해 존재하니, 나의 존재 가치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계 속의 존재자로서 나의 육체와 정신은 어떠한 삶의 역사를 통해 이 세상에 왔다가 본질적 고향으로 돌아가는지를 아는 것은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한 삶의 가치를 더욱 진솔하게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멘토(Mentor)가 될 만한 소피스트(Sophist)들이 존재하였다. 현대에 와서 소피스트들에 대한 이미지가 플라톤(Platon)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의해 ‘궤변가’라는 이미지로 변하였지만 당시만 해도  소피스트들은 ‘현인’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한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소피스트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당시의 직분을 ‘직업적 교사’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소피스트들의  언술을 통해 삶의 지혜를 깨닫고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자본에 의해 많은 인간성들이 상실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이와 같은 인문학적 멘토(Mentor)들은 우리 삶을 지켜주는 등대와 같은 존재이다.

노력이란 삶을 살기위한 인간의 필수에너지이며, 열정이다. 하지만 근원적 삶의 목표나 본질적 사유 없이 살기위해서 그냥 노력한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 대한 자신의 목표가 물질적일 가능성이 많다. 삶의 과정에 있어 물질은 삶의 풍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하지만 물질이 삶의 과정에 요소로서 중요하다는 것이지, 인간의 삶 자체에서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세상 어떤 권력과 어떤 재물도 성경의 전도서에 나온 솔로몬 왕의 말처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삶의 가치를 힘, 권력, 물질 등에 두는 사람들은 그 끝을 허무로 마무리하며, 삶의 시간을 부질없는 것에 소모해 버릴 것을 후회 할 것이다. 따라서 시간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 라고 물어보아야할 시간이 바로 현재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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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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