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 에그아트] 아나스타샤(Anastasia) Blue Dream

강이슬 기자 입력 : 2014.02.17 08:57 |   수정 : 2014.02.1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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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도를 드려요.
꿈을 꾸면 하늘이 푸른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활절 달걀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사람은 러시아의 보석 세공 명장 칼 파버제이다. 파버제이가 만든 부활절 달걀은 러시아 혁명 전까지 해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헌정되었고 이 세기의 걸작들은 황제의 어머니와 부인인 알렉산드라에게 선물 되었다.
 
* * * * * * * *
 
1917년 3월 15일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하여,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는 왕위를 포기해야만 했다. 니콜라스 2세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으며  황후 알렉산드라와의 사이에 올가, 타티아나, 마리, 아나스타샤 등 4명의 딸과 아들 알렉시스가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공주들 중 가장 어리고 영리했으며 밝은 성격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장난기 어린 소녀였다.
 
황제의 가족이 시베리아로 옮겨졌고 78일 만에 처형이 된다. 모두들 총을 맞고 쓰러졌지만 아나스타샤는 이때 죽지 않고 살았다. 그 이유는 그녀의 코르셋에 보석이 박혀있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총알이 튕겨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형장에 있던 한 사람이 그녀를 뒤집자 통증으로 소리를 냈고, 그 사람은 장총의 손잡이를 이용해서 그녀를 죽인다.
 
그로부터 2년 후 1920년 2월 17일 한 여인이 베를린에서 자살을 시도하다 구출이 되어서 병원으로 옮겨졌다. 신분을 밝힐 수 있는 증서도 없었고 자신이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았기에 정신병자 보호시설로 보내졌던 그녀가 1년 후 자신이 아나스타샤라고 말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 나왔는지를 설명했다. 총검에 찔리기는 했지만 죽지 않았으며 도망쳐 나오다가 한 군인의 도움을 받아서 루마니아로 옮겨왔고 그와 결혼을 했으며, 그가 거리에서 싸움으로 인하여 죽게 되자, 출산한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후 베를린으로 와서 친척인 아이렌 황녀를 만나려고 아이렌이 사는 궁전에 도착했으나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서 들어가지 않고 자살을 택했다고 했다. 아이렌 황녀는 결국 아나스타샤를 만나보고 그녀가 아나스타샤를 닮았다는 것을 부정하였지만 돌아와서는 아나스타샤와 매우 닮았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한다.
 
아이렌 황녀의 아들인 시지스문트는 아나스타샤와 옛 친구였는데, 자신이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하는 그녀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보내서 답변을 받아보고는 그녀가 아나스타샤가 맞는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아나스타샤가 맞는가에 대한 황족들의 의견은 분분했고 어떤 이들은 진짜라고 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가짜라고 단정 지었다.
 
그녀가 아나스타샤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 그녀가 폴란드의 공장 근로자였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나스타샤가 가짜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많이 알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녀가 진짜 아나스타샤 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녀를 가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러시아 말을 못한다는 것을 지적했으나, 그녀는 러시아에서 연설했을 때 러시아 말을 이해했고 다른 나라 말로 답변했었다. 그것은 그녀가 자기 가족을 죽인 사람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녀는 영어, 독일어, 불어를 잘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폴란드의 공장 근로자라고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여러 곳에 상처가 있었는데 이것은 총검에 찔린 것이라고 했으나 반대자들은 공장에서 수류탄에 의한 사고 때문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아나스타샤의 논쟁은 반대한 사람과 찬성한 사람들이 거의 극명하게 자기 이익에 따라 나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나스타샤가 황제의 딸로 인정되면 공식적으로 유산의 소유권을 가지게 되기에 많은 사람들은 재산을 잃게 된다. 그러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아나스타샤를 황녀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아나스타샤를 황녀로 생각했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자신을 아나스타샤로 주장하는 그녀는 스스로를 안나 앤더슨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고 1938년에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려는 재판을 신청했다. 32년 동안 지속된 이 재판 과정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아나스타샤를 진짜 러시아 공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재판에서 졌지만 그것은 그녀가 아나스타샤 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나스타샤라고 생각했던 안나 앤더슨은 생애의 마지막 15년을, 미국의 부호인 존 마나한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다가 1984년 폐렴에 걸려 사망했고, 그녀의 시체는 화장되었다.
 
이후 소련이 점차 개방적으로 변하자, 소련의 한 영화제작자가 니콜라스 황제의 무덤을 찾으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처형대장의 자손들을 추적해서 ‘유로프스키의 처형 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지역의 향토사학자들과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결국 나무 더미 밑에 묻힌 검고 녹색으로 변한 뼈가 있는 곳을 발굴했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발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1992년에 최고 권위자들로 이루어진 미국의 법의학 팀을 초청하게 된다.
 
결론은 황태자인 알렉시스와 아나스타샤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미스터리, 안나 앤더슨은 살아서 탈출한 아나스타샤인가 라는 점이었다.
 
후에 DNA분석법을 통한 과학적인 접근과 연구결과로 안나 앤더슨의 유전자가 황제의 가족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과에 따라 앤더슨은 아나스타샤가 아닌 것으로 모든 미스터리는 해결되었다.
 
사건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은 안나 앤더슨이 실제 아나스타샤이기를 바랬다.  “비극적인 역사 속에 사라진 러시아 공주가 처형의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와 신데렐라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기를 바랐던 것은 일반인들의 소망과 동경이었기에 앤더슨의 이야기들이 사실처럼 다가 왔던 것이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넷째 딸 아나스타샤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콜린 윌슨의 책을 참조하여 살펴보았다.
 
2004년 프랑스에 가던 길에 러시아에 잠깐 머문 적이 있었다. 흰 눈이 가득한 도시에 두툼한 코트로 무장하고 다니는 군인들을 보았다. 갑자기 그들의 겨울왕국이 무척 신비롭게 느껴졌었고 러시아에 있다는 사실에 설레는 마음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러시아 혁명의 역사를 찾아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작품은 동화가 아닌 실제 러시아 혁명기 역사의 한 부분을 기록하고 있는 황제 니콜라이 2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황제가 여러 가지 실수로 러시아 혁명의 단초를 제공했지만 아나스타샤, 올가, 타티아나, 알렉세이를 포함하여 무고한 아이들까지 죽음에 이르게 했던 배경을 통해 배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의 중요성이 될 것이다.
 
자신의 꿈을 펼치기도 전에 역사 속에 사라진 러시아 공주의 이야기를 담아서 제작한 이 작품은 타조 알 위에 정형화 되지 않은 자유로운 형태의 꽃을 흩뿌리듯이 디자인한 것으로 러시아 황족으로 태어나 비운의 죽음을 맞은 아름다운 공주 아나스타샤의 꿈을 담아내고 있다. 
 
블루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눈과 겨울을 상징하고 있고, 원하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블루드림으로 표현했다. 꿈꾸고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블루드림을 어루만지며, 찬란했던 러시아 왕조의 사라진 역사 속 겨울공주 아나스타샤와 함께 나지막이 노래해본다. 
 
 
난 기도를 드려요.
꿈을 꾸면 하늘이 푸른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바다 건너 새로운 땅으로 가장 아름다운 곳 찾아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소재: 타조알)
 





  
헬레나 김 주 (Helena Kim Ju)
뉴질랜드 에그아트 재단 이사
한국공예예술가협회 상임이사
Institute of Helena Egg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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