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장] 안명자 “전통복식 필수 요소 ‘후수’를 아시나요?”

강이슬 기자 입력 : 2013.12.19 11:17 |   수정 : 2014.02.0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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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후수와 망수는 우리 전통공예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아시아권 나라에도 후수와 비슷한 복식문화가 있었지만, 그 중 제대로 보존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에요. 후수를 하는 공예인으로서 참 자랑스럽고 보람도 느낍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후수, 앞으로는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중요민속문화재 제13-3호인 후수(後綬)는 예복을 입을 때 뒤에 달아 늘어뜨린 장식물로 품계를 나타내는 표식 중의 하나다. 1~2품은 금고리, 3~4품은 은고리, 5~9품은 동고리를 달았다. 망수는 후수를 아래서 대는 견직물로 후수와 쌍을 이룬다.
 
옛 복식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즘, 후수와 망수는 잊혀진 문화재 중 하나였다. 전통 복식이 점차 사라지며 전통 복식 중에서도 뒷부분에 달려있던 후수는 잊혀져가는 존재가 됐다.
 
이렇게 쓰러져가던 우리의 후수와 망수를 살려낸 이가 바로 안명자다.
 
국립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일에 재미를 느꼈지만, 10년이 지나도 발전이 없는 모습에 회의감이 들었다. 평생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마침 올케가 아는 지인에게 매듭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귀 담아 듣진 않았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 무렵 문득 ‘이게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안명자는 후수와 평생을 함께 하게 됐다.
 

▲ 안명자 [사진=양문숙 기자]
복국왕 패옥·패대와 후수·망수 [사진제공=안명자]

(왼쪽) 패대는 하의 양 옆에 차는 것으로 실로 짠 패대 위에 옥으로 만든 패옥이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찰랑찰랑 '권위의 소리'를 낸다.
(오른쪽) 매듭과 같은 것이 후수, 그 아래 받치는 것이 망수다.
망수와 패대는 '천'이 아니라 손수 한땀 한땀 실로 짠 것이다.


■ 운명처럼 끌린 안명자와 후수
 
안명자는 올케의 소개로 찾아간 공방에서 스승인 이상숙 선생을 만나게 됐다. 그녀와 후수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사실 그때는 후수와 망수에 정말 문외한이었어요. 선생님께서 짜는 연습을 하라기에 뭔지도 모르고, 어디에 쓰이는 지도 모르고 무조건 짜는 연습을 했죠.(웃음) 명주실도 처음, 염색도 처음이라 실수도 많았어요.”
 
- 그럼 ‘후수’는 언제부터 알게 됐나요?
 
“1987년 쯤 이상숙 선생님께서 장순애 선생님을 소개받았어요. 장 선생께서 필요하다기에 만들어 주었는데, 그 때 왕 예복 뒤에 다는 ‘후수’라는 것을 알게 됐죠.”
 
- 처음 배우실 때, 어땠나요.
 
“알려주시는 대로, 시키는 대로 잘 했어요.(웃음) 한 가닥씩 짤 때마다 문양이 나오는데, 그게 참 재미있었어요. 저랑 잘 맞았던 거죠. 매일 잡고 살았어요. 안 되면 푸르고 다시 해가며 밤늦게까지 작업하는 말이 많았죠.”
 
- 10년간 장 선생과 함께 하다가 독립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장 선생님 밑에 있으면서 기능이 많이 늘었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선생님 밑에 있을 수는 없잖아요. 독립해서 IMF 때문에 힘든 시기라 선생님의 부담도 덜어드리고, 저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98년도에 독립했습니다. 선생님도 환영하고 응원해주셨어요.”
 

▲ 안명자 [사진=양문숙 기자]

■ 유일무이 ‘후수’ 이론 체계화
 
독립한 안명자는 뛰어난 실력에 비해 부족한 이론을 느꼈다. 그 뒤로 후수에 대한 자료를 모으며 본격적인 공부를 했고, 이후 경주대학교 대학원 문화재과를 다녔다.
 
- 경주로 대학원을 다니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별 보며 첫차 타러 나가서 별 보며 집에 들어왔어요.(웃음) 지금 다니라면 못 다니겠지만, 그때는 후수에 대한 논문을 꼭 써야겠다는 생각에 너무 즐겁게 다녔어요.”
 
- 대학원을 다닌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전통복식·면복에 대해서는 저명한 학자들이 훌륭한 저서를 내며 틀을 잡아놨지만, 후수에 대해서는 논문이나 저서가 전혀 없었어요. 우리 후수를 알리기 위해서는 제가 나서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가 ‘한국중세후수의 기원과 정착과정’ 논문을 완성했어요.”
 
- 논문을 완성하고, 기분이 어땠나요.
 
“논문 완성하니 너무 뿌듯했죠.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야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기분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논문을 쓰고 나니 제작방법에 대해서도 이론화해 체계를 잡아야겠더라고요. 그래야 우리 제자, 후배, 후세들이 계속해서 후수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제작기법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이에요. 내년 봄에야 완성될 것 같아요. 기법을 글로 정리하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에요. 너무 무리를 했는지 올 여름에는 대상포진까지 걸려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여러 교수님께서 도와주시고, ‘꼭 필요한 자료’라며 격려와 응원도 많이 해주셔서 힘을 내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 그 전에는 후수를 이론화한 서적이 전혀 없었나요?
 
“없었어요. 후수는 특히나 유물이 거의 없어서 더 힘든 분야에요. 유명한 사람의 후수가 몇 개 남아있긴 하지만 왕실에서 쓰던 후수는 그 유물이 없거든요. 그나마 문헌이 조금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죠. 흑백 그림만 나온 자료, 그림도 없이 글로만 되어있던 자료를 유희경 박사님(한국복식문화연구원장)의 도움으로 정리해 작업을 해 나갔어요.”
 
- 유 박사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네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에요. 저에게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후수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렇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유 박사님도 전통복식을 하는 분이라 ‘후수’가 필수 요소인데, 하는 사람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오히려 고맙다고 했어요. 제자 존경하는 유 박사께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니 더욱 보람됐거든요.”
 

▲ 안명자와 그의 제자 김경순 [사진=양문숙 기자]

■ 한 작품에 8개월 소요…인내와 정성의 결과 ‘후수’
 
체계가 없던 ‘후수’는 여기저기서 엉망인 모습으로 남아있다. 궁이나 종묘 등에서 전통 행사시 착용하는 복장에 달린 후수가 그렇다.
 
“5월에 종묘제례를 하면 꼭 가요. 가서 엉망으로 달려있는 후수를 보면 정말 속상해요. 왕에게 왕비 후수를 달아놓기도 하고, 전혀 맞지 않는 색을 사용하기도 하거든요. 거기다가 중국산 싸구려 모조품을 착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더 속상하죠. 이건 아니다 싶어서 저라도 더 꼼꼼히 공부하고 홍보하려고 해요.”
 
“행사 주체 측에선 한정된 예산안에서 어떻게든 구색을 갖추려다보니 일단은 가장 저렴한 걸 찾아서 했다더라고요. 그런 고충이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두어선 안 되죠. 이제라도 똑바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 면복 필수 요소인 후수는 왜 이렇게 잊혀진 걸까요?
 
“후수와 망수 한 작품을 만드는데 보통 몇 달이 걸려요. 저도 처음엔 7~8개월 정도 걸렸거든요. 금방 만들 수 있지도 않고, 손이 너무 많이 가니까 하려고 달려든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또 전통예복은 한복만큼 자주 입지도 않으니 수요도 없죠. 더군다나 전통예복이 그나마 많이 보이는 사극에서 조차도 뒤에 달려있는 후수는 굳이 달 필요가 없던 거죠.(웃음) 그러니 요즘 사람들이 후수를 모른다는 건 당연해요. 이제라도 많이 알리려고 노력해야죠.”
 
- 한 작품을 만드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네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다섯시 반이면 일어나서 헬스장으로 가서 운동을 해요. 운동하고 샤워하고 다시 집에 오면 7시 반 정도. 간단히 식사를 하고, 신문 좀 보다보면 9시죠. 그 때부터 바로 작업을 시작해서 오후 10시, 11시 넘어서까지 하게 돼요. 무슨 일 없으면 그렇게 계속 작업만 하는 거죠.”
 
“가끔 집에 손님이 방문하면 참 좋아요.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언제 가려나’하면서 전전긍긍해요. 빨리 작업이 하고 싶거든요. 같이 수다는 떨어도 마음은 작업대 의자에 앉고 싶어져요.(웃음)”
 
- 후수 작품을 처음 선보였을 때 반응은 어땠나요.
 
“1989년도에 후수 망수 작품을 처음으로 만들어 선보였어요. 그때 사람들이 ‘아 저게 바로 후수‧망수구나’라고 알게 됐죠. 당시 전통공예 부문 교수나 한복하시는 분들도 ‘후수’라는 걸 처음 본 거죠.”
 
- 공모전에 출품도 많이 했나요?
 
“독립한 뒤 10년간은 전승공예대전에 작품을 계속 출품해서 ‘장려상(2회)’, ‘특선(1회)’, ‘입선(3회)’ 등 6번 수상 했어요. 하지만 공모전마다 낼 수 있지는 못 했죠. 워낙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 그래서 한 번을 출품하더라도 굵직한 공모전에 내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2010년까지 제 작품을 주로 하다 제 뒤를 이을 제자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때마침 10년간 매듭을 해 온 친구가 후수의 뒤를 이어보겠다며 들어왔죠.”
 
- 제자 분은 잘 따라오시나요?
 
“매듭을 10년간 해서 워낙 매듭을 잘 짜요. 그러다보니 후수도 곧잘 해요. 열심히 하고. 처음으로 나간 전승공예대전에서 바로 특선을 받았어요. 본인이 좋아서 열심히도 하고, 저도 안심이 되죠.(웃음)”
 

▲ 안명자 [사진=양문숙 기자]
▲ [사진=양문숙 기자]

■ 후수 명장의 자존심
 
- 후수가 쓰이는 곳이 한정적이니 경제적으로 힘들 것 같은데.
 
“우리 전통하는 사람들 다 넉넉지 못 하잖아요. 스스로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많죠. 한복 하는 분들이 의뢰를 해서 후수를 만들기도 하지만 제 값을 다 받진 못 해요. 그분들도 한복 한 벌 팔아서 얼마나 벌겠어요. 한복은 그나마 수요가 있지만, 후수는 후수만의 수요가 없기 때문에 생활을 위해서라도 값을 덜 받고서라도 만들죠. 그래서 제 욕심대로 가격을 부르지 않고, 형편에 맞춰서 받아요. 돈은 못 벌어도 밥은 먹고 살아요.(웃음)”
 
“저도 돈 벌고 싶죠. 손으로 안하고 기계로 빨리빨리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전통을 해야된다는 제 고집이자 자존심이에요. 그 자존심으로 지금까지 해왔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예요.”
 
- 지원 받는 곳은 전혀 없나요?
 
“현재는 지원 받는 곳이 없어요. 서울시에서 사라져가는 전통공예로 지원을 신청해서 지원 받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신청하지만 워낙 후수를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지원하면 꼭 받았어요. 그렇게 4~5번 받았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역지사지라고 공예인들의 마음을 제가 다 아는데, 혼자만 그렇게 지원을 받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정말 열심히 하는 실력 있는 공예인들이 많거든요. 못 받은 사람들에게도 고루 혜택이 가야겠단 생각에 그 뒤로 지원 자체를 안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무런 지원 없이 자비로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서울시에서도 몇 번 이상 받은 지원자는 제외시키는 걸로 바뀌었더라고요.”
 
- 문화재가 되면 좋을 텐데.
 
“안 그래도 서울시에서 문화보유자 신청하라는 공고가 떴어요. 그런데 제가 그 공고를 너무 늦게 봤어요. 일찍 봤다면 충분히 좋은 자료를 많이 준비했을 텐데 갑작스럽게 준비해서 신청 마지막 날 간신히 접수했어요. 신청서 쓰는데도 정말 논문 한 편 쓰는 것처럼 힘들었어요.(웃음) 그래도 그렇게 까다롭게 하는 것이 맞죠. 평생 영예고 쉽지 않은 타이틀이잖아요.”
 
- 발표는 언제 나나요?
 
“내년쯤 전문위원이 실사를 나온다고 하는데, 정확히 언제 발표가 나는지는 모르겠어요.”
 


▲ 안명자 [사진=양문숙 기자]

■ 안명자, 후수를 위해…
 
잊혀져 가던 우리의 후수를 직접 만들어 내고, 이론화해 체계를 잡았으며, 자신의 뒤를 이을 제자 양성까지 해낸 안명자. 후수를 위해 많은 것을 했지만 앞으로 그녀가 후수를 위해 해나갈 것들이 더욱 기대가 된다.
 
- 후수에 대한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나오네요!
 
“저 원래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거나 발표하면 엄청 떨어요. 우황청심환까지 먹고 해요. 그래도 지금은 후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술술 나오나 봐요.(웃음) 저는 실수할까봐 오히려 말을 아끼는 편이에요. 개인적인 이야기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후수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하고 싶어요.”
 
- 후수를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꼽자면.
 
“서대문에 있는 국립역사박물관이 개원할 때 제가 만든 왕 후수가 유희경 박사님 추천으로 그 곳에서 소장하게 됐어요. 첫 작품이라 저에게도 아주 남달랐죠. 아주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 마지막으로, 후수를 위해 앞으로 또 계획한 것이 있습니까.
 
“개인전을 열고 싶어요. 개인전을 열어야겠다고 계속 생각했는데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대학원 다닐 때는 수업 듣느라, 졸업하고는 논문 쓰느라 계속 바빴고, 지금은 의뢰 들어온 작품을 해내니라 순수작품 할 시간이 부족하거든요. 그래도 내년이나, 늦어도 2015년에는 개인전을 꼭 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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