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장] 강병인 “캘리그래피 시대 올 거라 확신 했어요”

강이슬 기자 입력 : 2013.12.11 09:24 ㅣ 수정 : 2014.02.06 16:42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강병인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캘리그래피 회사를 차리고 6개월간 일이 들어오지도 않았고, 몇 년간 힘들게 회사를 유지했지만 한 번도 후회하거나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캘리그래피’ 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거든요.”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아름답게 쓰다’라는 어원에 맞게 멋스런 손글씨를 말한다.
 
무조건 ‘손’으로 쓴 글씨라고 모두 캘리그래피는 아니다. 글자가 갖고 있는 고유의 뜻과 이미지를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해 내어 글자에 감정을 실은 것이어야 진정한 캘리그래피라 할 수 있다.
 
이미지와 디자인을 중시하는 광고 산업이 사회주요산업으로 발전하면서 캘리그래피도 꽃을 피웠다. 현재 캘리그래피는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고, 캘리그래피를 전문으로 하는 캘리그래퍼도 정식 직업군으로 자리를 잡았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캘리그래피 시장에 일찌감치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강병인 캘리그래퍼를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강병인 캘리그라피연구소 술통’에서 만났다.
 

▲ 강병인 [사진=양문숙 기자]


■ 캘리그래피 1인자 강병인, 그 시작은?
 
확신하건데 강병인 캘리그래퍼의 작품을 보지 않은 이는 없다.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때 기울이던 소주병에, 인상의 무료함을 달래는 영화와 TV드라마에, 삶의 길을 찾기 위한 책에 그의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주류 ‘참이슬’, ‘산사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대왕세종’, ‘무자식 상팔자’, ‘착한남자’, 영화 ‘의형제’, 음료 ‘아침햇살’, ‘레몬에이드’ 등 그의 작품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처럼 강병인은 대한민국 캘리그래피의 1인자이다. ‘우리나라 대표 캘리그래퍼’라는 기자의 말에 강병인은 “아휴.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여전히 그런 말이 여간 쑥스러운 모양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아직까진 그에게 붙은 ‘캘리그래피 1인자’라는 수식어를 부정할 수 있는 반박이 없으니.
 
본격적으로 ‘캘리그래피 1인자’, 강병인 캘리그래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어렸을 때부터 글씨를 잘 쓰셨나요?
 
“좋아했어요. 무언가를 끼적이고 있으면 시간이 참 잘 갔어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글씨 쓰는 것도 좋아했죠. 어린 시절 제 노트에는 전부 낙서 투성이었죠. 워낙 쓰는 걸 좋아하니까 많이 썼던 것 같아요.”
 
- 부모님 중에 글을 잘 쓰셨던 분이 계셔서 재능이나 환경을 자연스레 접한 건가요?
 
“참 신기하게도, 전혀 그런 건 아니에요. 뭐 동네에 흔히 있는 서예를 잘 쓰는 어르신이 있어서 ‘그 분처럼 돼야겠다’ 이런 것도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권유로 서예부에 들어가면서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선생님께서 칭찬해주시니까 더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였지만, 서예를 배우며 성숙해지는 느낌을 받아서 좋기도 했고요.”
 
- 스스로도 서예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나요?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학교 대표로 서예 대회에 나가기도 했으니까요.”
 
- 어렸을 때 한 낙서 중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것도 있습니까.
 
“어렵게 살다보니 그런 것들을 모아두지 못 했죠. 자연스레 다 없어졌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쯤 친구에게 글씨를 써서 선물한 것이 있었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가 보관 중이었다는데, 이사하면서 분실했다고 해요.”

▲ 강병인 [사진=양문숙 기자]


■ 한국에 캘리그래피를 알리다
 
- 서예와 캘리그래피의 가장 큰 차이는 뭔가요?
 
“서예와 캘리그래피 모두 글을 예술로 표현한다는 범주는 같아요. 쉽게 나누면 서예는 순수예술, 캘리그래피는 상업예술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 서예는 서예가의 철학이나 서풍을 그대로 담아내는 표현하는 장르라면, 캘리그라피는 글에 감성을 담아내어 소통하는 장르에요.”
 
- 서예를 배우다가 캘리그래피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항상 같은 서체로 글을 쓴다는 것이 싫었어요. 이해가 안 됐다고 해야 될까요? 같은 글씨라도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다르게 쓰고 싶었죠.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글은 단순하다며 예술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 했어요. 하지만 제가 본 한글은 조형적으로 참 아름답고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더군다나 이 분야가 상업적으로도 커질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 어째서 캘리그래피가 커질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캘리그래피 분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990년대 부터에요. 일본을 보면서 분명히 우리나라에도 캘리그래피 문화가 자리 잡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일본은 그 당시부터 글씨를 상업적으로 거래하며 제품 등에 넣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같은 동양 문화권인 우리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던 거죠. 그때부터 계속 하려고 생각을 했었어요.”
 
- 캘리그래퍼로 자리 잡기까지 힘들었을 것 같은데.
 
“네. 본격적으로 캘리그래피 사업을 시작하는 데는 참 힘들었죠. 일단 그 전에 광고회사를 다니다가 그래픽 잡지사를 운영했다가 2년 여 만에 망했거든요. IMF 탓도 있지만, 저의 경영미숙이 잡지사 문을 닫게 했고, 신용불량자가 됐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누가 잡지 만든다고 하면 뜯어 말리고 싶은 심정이에요.(웃음) 그렇게 나름대로 한 번에 도전을 실패로 끝내고, 또 다시 가장의 책임을 잠시 뒤로 한 채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아내가 허락해주어서 2002년에 ‘강병인 캘리그래피 술통’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 강병인 [사진=양문숙 기자]


■ 캘리그래피, 꽃을 피우다
 
- 그렇게 설립하고, 일이 순탄히 풀렸나요?
 
“회사를 차리고 나서 한 6개월 이상은 일이 없었어요. 캘리그래피 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광고회사에서 조차 디자인은 그 대가를 지불했지만, 글씨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한다는 인식이 없어서, 직원들 중 글을 좀 쓴다는 사람이 글을 쓰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던 시기거든요. 물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진 않았고요. 그래서 회사를 차리고 2년 정도 후에 아는 지인의 디자인 회사에 다시 취업을 했어요. 수입이 없으니 유지하기가 힘이 들었거든요. 다자인 회사에 다니지만, 제 회사까지 투잡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전제조건으로 다녔었죠.”
 
-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회사를 열었는데, 일이 잘 안되던 그 몇 년간 후회되거나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요?
 
“전혀 없었어요. 확신이 있었거든요. 한글도 예술적으로, 그리고 상업적으로 인정받고 그런 문화가 생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후회가 되거나 포기하고 싶단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 그럼 상업적으로 첫 스타트를 끊은 글씨는 무엇입니까.
 
“정확하게 생각나진 않는데, ‘해바라기’라는 글씨일거에요. 아는 지인 분이 교회에 걸 포스터에 들어갈 ‘해바라기’라는 글을 부탁해서 쓰게 됐죠. 아무래도 교회에 걸리는 글이다 보니 ‘해바라기’란 뜻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뜻하기에 그런 분위기와 감정을 담아 글을 쓰게 됐었어요.”
 
- 이제는 주변 곳곳에서 강병인 작가의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실생활에서 마주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생각이 들어요. 일단은 제 글을 보고 다른 분들이 좋아해주시면 뿌듯하죠. 그래도 아쉬운 마음도 들어요. ‘저 획을 왜 저렇게 썼지’, ‘저게 최선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가끔은 제가 보낸 글씨가 디자인과 접목되면서 변형될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참 안타깝죠.”
 
- 요즘에는 캘리그래퍼들이 많아졌나요?
 
“많아졌어요. 제가 대한민국 최초의 캘리그래퍼가 아니에요. ‘필묵’이란 서예가 단체에서도 저와 같은 시기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캘리그래피 작업을 시작했더라고요. 그 때는 몰랐다가 나중에야 알게 됐죠. 캘리그래피가 자리 잡는 데는 이렇게 여러 사람의 노력이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 캘리그래퍼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꼭 필요한 자격 요건을 말해준다면.
 
“무슨 분야든지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일단은 좋아해야 합니다. 유망 직업군으로 떠오르고, 돈을 많이 번다고 분야를 선택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돈을 쫒아서 시작하다보면 제대로 할 수 없어요. 열정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거죠.”
 
“또 아까도 말했듯이, 캘리그래피의 전통이 되는 서예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시작을 해야 해요. 서예가 기본이 되지 않고는 좋은 캘리그래퍼가 될 수 없어요. 마지막으로 항상 공부하는 마음으로 시장 상황을 지켜봐야 합니다. 가령 어떤 기업에서 새로운 제품이 출시가 되었다면, 제가 그 제품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디자인에 어떤 글꼴을 사용했는지 유심히 봐야한다는 거죠. 시장의 흐름을 알아야 그에 맞춘 캘리그래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강병인 [사진=양문숙 기자]


■ 강병인, 아름다운 글씨를 그리다
 
- 상업적인 작업 요청이 늘어나면서 순수 작품을 하는 시간은 줄어들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그렇긴 하지만, 전시를 위한 순수 작품들도 될 수 있는 한 많이 하려는 편이에요. 상업적인 작품을 할 때는 아무래도 저의 감정 보다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된 감정을 투영하지만, 순수 작품에는 제가 하고 싶은 실험적인 작업들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 실험적인 시도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대부분의 캘리그래피는 서예 할 때 사용하는 붓을 사용한다면, 순수 작품에서는 그림 그리는 붓을 사용하는 등 쓰는 도구를 변화해보기도 하고, 평면적인 글자에서 입체적인 글자를 만들기 위해 입체작업을 통해 조각으로 만드는 등 이 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들을 하려고 해요.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입체적인 캘리그래피입니다.”
 
- 글씨를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캘리그래피는 어째든 서예에 속해요. 글을 예술로 표현한다는 거죠. 감정적으로 글을 표현하되 기본적인 서예의 틀을 깨면 안 됩니다. 캘리그래피로 쓴 글을 보면 ‘그림 같은 글씨’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하는데, 여기에서 완전히 글씨의 형태를 알아 볼 수 없는 그림으로만 비춰지면 안 된다는 것이죠. 서예라는 기본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글을 캘리그래피로 표현하는데 어떤 매력이 있나.
 
“한글은 의미를 가진 상형문자인데, 여기에 한글 창제 원리가 더해지면 더욱 재미있어요. 한글의 모음은 천지인의 원리로 만들어 사람의 형상을 나타내고, 자음은 초성과 중성에 모두 쓰일 수 있으며, 그 형태를 자연이나 사물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꽃’을 쓴다고 한다면 ‘ㄲ’은 꽃망울의 형태로, ‘ㅗ’는 줄기, ‘ㅊ’은 땅 속에 뿌리로 표현할 수 있는 거죠.”
 
“한글은 과학적인 글자이긴 하지만, 그 모양 자체가 하나의 그림이기도 하죠. 지금 여기(강병인 캘리그라피연구소 술통)에도 있는 ‘꽃’이나 ‘봄’과 같이 그 글 자체만으로도 예쁜 모양을 하고 있죠. 여기에 그 느낌을 더 감정적으로 살려 그린다면 재밌고 아름다운 글씨가 됩니다. 더군다나 캘리그래피에서는 그 글의 쓰임새나 제가 그 글자에서 느낀 감정들을 총체적으로 담아내 표현하기 때문에 재밌어요.”
 
- 캘리그래피가 큰 인기를 모으면서 어디든지 캘리그래피를 넣으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았다.
 
“그렇죠. 어떻게 보면 캘리그래피가 남발되었다고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모든 곳에 캘리그래피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캘리그래피는 감성을 담은 글자이기 때문에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엔 참 잘 어울리죠.”
 
“예를 들어 ‘된장’, ‘고추장’, ‘김치’ 등 우리 음식을 표기할 때는 캘리그래피가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삼성’ 그룹에서 그룹의 이름을 캘리그래피로 표기한다면, 어색하겠죠? 이 때는 이성을 더 중시하는 글자이기 때문이죠. 이는 책 표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소설 등 감성적으로 쓸 수 있는 도서에는 캘리그래피가,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의학서적이나 과학서적에는 활자체가 어울리는 것이죠. 쉽게 정리하자면, ‘감성’엔 캘리그래피, ‘이성’엔 활자체가 기본적으로 어울립니다.”
 

▲ 강병인 [사진=양문숙 기자]


- 스스로 어떤 캘리그래퍼라고 소개하고 싶은가요?
 
“와. 참 어려운 소개네요.(웃음)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글을 몰라 힘들어하는 ‘우리 백성’을 위해 만들었다고 했어요.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냥 예삿말이 아니에요. 중국의 ‘한자’를 쓰는데 어려워하는 백성들이 아니라 ‘글’을 몰라 어려워하는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한자를 알고 있던 소위 양반 계층 이상의 백성이 아닌, 그 아래 더 힘들게 살아가고 있던 하층민들을 위한다는 말이죠. 민주적인 사고방식이었던 거죠. 제가 세종대왕을 따라갈 순 없겠지만,(웃음) 세종의 한글 창제의 사고를 이어가는 작가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 앞으로 10년 뒤에 강병인 캘리그래퍼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요즘 제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고민이기도 하네요. 아, ‘고민’은 아니네요. 10년 뒤에도 저는 캘리그래피를 계속해서 하고 있을 테니까요. 어쨌든 요즘 제가 스스로 ‘10년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생각해 보곤 해요. 이 일을 시작한지도 10년이 넘었거든요. 10년 전에도 저의 10년 뒤를 그려봤었고, 그때 그린 그림이 지금과 얼추 많이 닮아있어요. 10년 전에는 캘리그래피 문화가 자리 잡길 바랐고, 저도 캘리그래퍼로서 자리 잡고 활동하길 바랐거든요. 10년 뒤에는 ‘한글’에 예술적인 면이 더 부각되고 인정받길 바라요. ‘한글’이 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을 정도로요.”
 
“요즘 들어 참 안타까운 것이 있어요. 영어를 쓸 떼 없이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쓸 떼 없이’라고 말하는 것은 굳이 영어가 아닌 한글로 표현할 수 있는 곳에서도 영어를 사용한다는 뜻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영어 사용을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가령 외국인을 초대해 한국에서 행사를 개최한다고 하면, 보통 우리는 행사명을 영어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외국인을 초대했으니 영어가 표기되는 것은 맞죠. 하지만 한글로 표기하고, 그 아래 영어를 써야하는 것이 맞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방송국이나 언론사 등 너무 쉽게 영어를 쓰죠. ‘힐링’이란 단어가 그 예가 될 수 있죠. 우리의 한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글을 사용하려는 문화가 다시 자리 잡아야 하고, 또 한글에 대한 예술적인 가치가 더 높아졌으면 좋겠어요. 10년 뒤에 저는 한글이 그렇게 되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네요.”

▲ 강병인 [사진=양문숙 기자]

BEST 뉴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0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