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장] 윤인수 “민화는 왜 문화재가 없는지…이해 안돼”

강이슬 기자 입력 : 2013.12.04 09:13 |   수정 : 2014.02.0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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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명장’ 윤인수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우리 고유의 민화는 왜 문화재 지정이 되지 않는지 참 의문이고, 불만입니다.”
 
민화 화가 윤인수가 날선 비난의 말을 내뱉었다. 실제 한국중요무형문화재에 ‘민화장’은 없다. 민화 화가들이 꾸준히 문화재 신청을 하고 있지만, 계속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중요무형문화재는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만 된다고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민화보다 하는 사람이 더 많은 ‘불화’는 문화재고, ‘민화’는 아니라고 하는 건 형편성에 어긋나지 않나요?”라고 반문한다.
 
‘민화(民話)’는 한 마디로 전통 대중그림이다. 정식으로 그림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서민들의 일상생활공간의 장식을 위해 그려졌다. 민화의 화제는 실로 방대하다. 꽃과 새를 그린 ‘화조도(花鳥圖)’, 장수의 상징을 그려 넣은 ‘십장생도(什長生圖)’, 물고기를 그린 ‘어해도(魚蟹圖)’ 등 어떻게 보면 무엇이든 그 주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 민화다.
 
작가 미상의 민화들은 세월이 흐르며 그 정체성이 모호해진 것이 사실이다. 확실한 계보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민화’가 다른 공예만큼 인정받지 못 하는 것은 예전부터 계속되어온 ‘이름 없는 설움’의 연장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화는 확실히 재밌는 그림이다. 그 종류가 방대한 만큼 다양한 그림을 포괄하고 있으며, 우리 조상들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옛 문화의 고증이 된다. 알면 알수록 재밌는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 공방에서 윤인수 화가에게 듣고 왔다.
 

▲ 윤인수 [사진=양문숙 기자]
▲ 윤인수 민화 작품 [사진=윤인수 제공]

■ 친구 따라 강남? 친구 따라 민화!
 
윤인수 작가는 방황하던 젊은 시절, 친한 동네 친구의 권유로 함께 민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민화와 함께 한 세월이 35년이다. 처음 민화를 배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물었다.
 
“정말 배고프고 힘들었어요.”
 
“그 당시 저와 함께 민화를 배우는 사내들이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그런데 워낙에 밥벌이가 안돼니 힘들어 다들 떠났죠. 그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이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나이는 어려도 원로급이죠. 지금 민화가 이만큼 성장한 건 그런 몇 사람의 노력 때문이에요.”
 
- 현재 민화 작가의 수는 대략 얼마나 됩니까.
 
“정확히 따질 수는 없겠지만, 10만 명이 넘었다고도 해요. 예전에는 서울에만 국한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민화 화가들이 많아졌거든요. 민화를 살린 제자들의 제자, 또 그 제자의 제자… 이런 식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요새는 전국 어디든 민화 작가가 없는 곳이 없죠.”
 
- 맥이 끊겼던 민화의 확산이 빨리 이루어진 거네요.
 
“네. 다른 동양화나 서양화 보다 민화가 빨리, 또 많이 보급된 이유는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민화 같은 경우는 도안만 만들어주면 바로 그려볼 수 있으니 참 좋죠. 동양화와 서양화는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요.”
 
“또 민화가 많이 보급된 것은 사극의 열풍도 한 몫 했어요. 사극 속에 민화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저도 KBS ‘진품명품’을 비롯해 ‘태왕사신기’ 등에 제 작품을 출연시키고 있습니다.(웃음)”
 
- 민화가 확산되기 이전에는 민화 작가로 활동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35년 간 해온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힘들었죠. 제자들도 그런 질문을 하곤 해요. 그럼 ‘똑똑하지 못 하고 멍청해 계속 한 길만 고집했다’고 농담식으로 답하곤 하죠.(웃음) 진짜 대답은…글쎄요. ‘그냥’ 민화가 좋았어요.”
 
“35년간 배고파도 저를 이해해주고 지금까지 함께 해준 집사람에게 참 고마워요.(웃음)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옛날엔 정말 힘들었거든요.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도망갔을 텐데 말이죠.(웃음)”
 
- 민화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겠죠? 민화의 매력을 꼽자면.
 
“민화는 그 종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한 번 하다보면 끝이 없어요. 다양한 종류의 민화를 계속해서 그리다가 다시 초기에 그렸던 종류를 그리려고 하면 새로운 느낌이거든요. 그러니 도돌이표처럼 계속해서 답습해나가는 거죠. 종류가 많다는 것이 매력입니다.”
 
- 민화 화가로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전시를 개최하면 제 민화를 본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너무 좋다’고 해주면 그게 가장 뿌듯하죠. 또 그런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제 제자가 되기도 했고요.(웃음)”
 
- 민화를 그릴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전통을 답습하는 자세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민화가 엉뚱한 길을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민화의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전통을 제대로 답습하지도 않고 식상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답습을 제대로 채 끝내지도 않고, 중국이나 일본 그림을 모방해서 그리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문제는 그렇게 그린 그림들을 ‘민화’라고 하고 있으니, 참 너무 답답해요. 민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고서는 그 그림을 ‘민화’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문제죠.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통, 즉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자꾸 새로운 것에 욕심을 내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민화’라고 내보이려면 전통 민화를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 윤인수 [사진=양문숙 기자]

■ 윤인수가 빠진 ‘민화’의 매력, 우리도 빠져볼까요?
 
“민화는 그 분야가 다양해 참 재미있어요. 반추상적인 부분도 많아요. 추상미술의 거장 ‘피카소’ 보다도 훨씬 앞서 추상적인 그림을 그린 것이 우리(우리나라)입니다. 하하. 민화는 정말 하면 할수록 빠져들어요.”
 
파격발언이 아닐 수 없다. 피카소보다도 우리나라가 먼저 추상기법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니! 그가 계속해서 들려준 민화 이야기는 ‘피카소 발언’만큼이나 퍽 재밌었다.
 
- 동양화와 민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차이는 동양화는 계보가 있고, 민화는 없다는 거죠. 아니, ‘없다’가 아니라 ‘알 수 없다’가 맞겠죠? 계보가 있는 동양화에 경우에는 도장이나 서명으로 작가를 알 수 있지만, 민화는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 계보를 알 수가 없는 거죠.”
 
- 작가미상의 작품들을 모두 ‘민화’라고 하는 것이 맞나요?
 
“사실 ‘민화’라는 말은 일제 때에 생긴 말이에요. 우리나라 민예품 수집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민예품을 수집하면서 조선의 흔히 있던 그림들을 보고 ‘민화’라고 칭하기 시작하면서 ‘민화’라는 말이 생긴 거죠. 지금도 그에 대한 이런저런 말이 많아요. ‘왜 일본 사람이 지어놓은 말을 지금까지 써야하냐’고. ‘겨례화’, ‘민속화’ 등 ‘민화’를 표현할 다른 말은 많지만, 그래도 이미 ‘민화’라는 말이 보편화됐고, 또 잘 어울리기도 해요.”
 
“작가미상의 작품을 ‘민화’라고 부르지만, 그보다는 우리 전통 서민들의 민예적인 그림을 민화라고 칭합니다.”
 
- 민화는 어떻게 생겨났나요?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들의 그림을 전시하면, 일반 뜨내기 화가들이 몰려와 그 그림을 보고 베껴서 그린 것이 ‘민화’에요. 그렇게 베낀 그림을 누군가가 또 베끼고, 베끼며 전국으로 퍼져나갔었죠. 모방이 계속되다 보니 같은 구도라도 색이 달라지거나, 도안 자체가 조금씩 달라지거나 했겠죠? 그런 민화들을 보고 있으면 참 재밌어요.(웃음)”
 
- 그렇게 끊임없이 모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 당시 병풍은 필수품이었어요. 제사를 지낼 때 꼭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 병풍에 그림을 걸어야 하니, 민화가 보급될 수 밖에 없었죠.”
 
“병풍과 관련된 민화의 이야기도 재밌어요. 병풍은 꼭 있어야 되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종이만 붙여진 병풍을 쓰기도 했데요. 그림을 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죠. 반면에 부유한 집에서는 병풍에 화려하고 다양한 채색의 그림을 붙였고요.”
 
“또 병풍에 그림이 훼손되거나 지겨워지면 다른 그림으로 바꾸는데, 그림을 띄었다가 다시 붙이기 힘드니 그냥 있던 그림 위에 그림을 덧붙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니 병풍 하나에도 우리 민화를 몇 작품이나 발견할 수 있기도 했죠. 어쩔 때는 숨어있는 민화가 더 멋있는 경우도 있고요.(웃음)”
 
- 과거에는 민화 없는 집이 없었겠네요.
 
“그렇죠. 참 우리 조상들은 그림을 좋아했어요. 예술적인 기질이 다 있었던 거죠. 옛날에는 정말 많았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어요. 구하기도 힘들고.”
 

▲ 윤인수 민화 작품 [사진=윤인수 제공]

■ 그 많던 민화는 누가 다 가져갔을까
 
“지금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귀한 민화들을 쉽게 찾을 수가 없어요. 일본 침략과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민화에 대한 예술적 인식이 없어졌기 때문이죠. 민화 작품과 엿 가락을 바꿀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약탈해간 작품들도 많고요. 그래서 좋은 민화 작품들은 오히려 해외에 많아요.”
 
- 우리나라 민화 중 가장 명작은 어디에 있나요?
 
“그래도 다행히 삼성미술관에 훌륭한 민화 작품이 많이 있습니다. 삼성에서 해외에 나가있던 우리 그림들을 다시 많이 가지고 들어 왔어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돈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우리의 훌륭한 작품들을 한 데 모았으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훌륭한 민화들이 해외에 많이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죠.”
 
■ 민화, 앞으로도 영원히
 
- 앞으로 민화는 어떻게 나아갈까요?
 
“민화의 쓰임새가 참 많아요. 가방에도, 옷에도, 가구에도 민화를 많이 넣거든요. 민화와 디자인을 접목시킬 방향이 충분히 많다는 뜻이죠. 저는 전통이 있는 다음에 현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통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접목 시킨다면 새로운 민화가 탄생되고, 우리 전통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그런 디자인을 접목한 민화가 많이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공모전을 통해 더 많이 민화를 알리고 싶어요. 서울에 있는 민화협회에서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수상자는 ‘도화서’에 화원으로 지정을 해줘요. ‘도화서’는 예전 조선시대 처럼 실력있는 화가를 선발해 제대로 민화 화가를 길러내기 위한 곳이에요. 공모전을 통해 매년 대상을 수상한 한 사람을 화원으로 뽑는 형식입니다. 지금까지 6명의 화원이 있어요. 그런데 1년에 한 명은 너무 적은 것 같아 최우수까지, 총 2명을 화원으로 지정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아직 협회와 더 상의해야할 문제지만요.(웃음)”
 
- 민화 화가로서 꿈이 있다면.
 
“죽을 때 까지 민화를 그리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꼭 민화 전문학과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물론 중요무형문화재도 지정되길 바라고요!”

▲ 윤인수 [사진=양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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