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장] 임영주 “전통문양, 한 분야로 정립한 것 자부”

강이슬 기자 입력 : 2013.11.27 09:26 |   수정 : 2014.02.0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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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주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문양이란 한 분야를 만들었다고 자부해요. 제가 문양을 연구하고 나서야 문양의 역사를 다룬 ‘문양사’가 정립됐으니까요.”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임영주 이사장은 한국전통공예와의 운명을 타고났다. 살아있는 문화재라 불리던 고고미술가 임천(林泉/1908~1965)의 아들로 태어나 말 그대로 문화재 속에 둘러싸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개성 태생의 임영주는 3살 때 서울에 와 국립박물관에 근무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박물관 관사에서 생활했다. 당시 이전이 많았던 박물관은 경복궁, 남산, 덕수궁 내에 자리 잡고 있어 임영주와 문화재의 인연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아버지 덕에 주요 문화재들 사이에서 지내다보니 관심이 저절로 생겼죠.”
 
아버지 덕에 아버지 뒤를 이어 ‘살아있는 문화재’가 어색하지 않은 임영주를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사무실을 찾아 만나고 왔다. 
 

▲ 임영주 [사진=양문숙 기자]


■ 문화 특혜 받고 자란 임영주를 사로 잡은 ‘문양’
 
불국사 대웅전을 비롯해 수원 팔달문, 경복궁, 보신각, 남한산성 등 국보급 건축물 보수 및 중수공사를 도맡아 했던 임영주의 아버지 임철 선생은 단청(丹靑)에도 조예가 깊었다. 단청은 목조 건물의 여러 가지 문양과 색으로 장식한 것을 말한다. 임영주는 그런 아버지의 재능을 꼭 이어 받아 단청, 그 중에서도 아무도 깊게 파고 든 적 없는 ‘문양’을 심도 깊게 다뤘다.
 
홍익대학교 재학시절 목칠공예를 전공한 임영주는 이후 조선호텔 디자이너로 취업했다. 디자인 업무는 물론, 당시 고소득군이었던 은행원보다도 3배가량 높은 월급을 받았으니, 그에게는 아주 만족스런 직업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조선호텔에 다닌지 1년 여 지났을 무렵 박물관 측에서 강진고려청자 발굴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그 길로 임영주는 국립박물관에 들어가게 됐다.
 
박물관에 들어간 임영주는 왜 하필 아무도 심도 있게 연구하지 않았던 ‘문양’을 연구했을까?
 
“처음 박물관 들어가서 제 전공분야인 공예를 연구하려고 열심히 했어요. 박물관에 있는 공예품들 다 조사하고, 글로 남기는 작업을 했어요. 또 도자기 발굴 작업에 많이 참여했어요. 발굴을 하고 나면 문양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요. 문양은 시대를 알 수 있는 것으로, 시대 편년을 맞출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죠.”
 
- 문양 연구는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일단 도자 문양을 계속해서 수집했어요. 그렇게 모은 도자 문양만 만장이 넘었죠. 그 뒤로는 박물관 안에 있는 모든 공예품의 문양을 조사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렇게 공예품에 있는 문양들의 실측을 모은 것도 수 만장이 넘었어요. 그 뒤로는 전국을 돌며 문양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량을 다 합치면 용달차 1대는 거뜬히 실었을 거예요.”
 
- 그렇게 모은 자료, 어떻게 쓰였습니까.
 
“도자문양을 수집할 때 김수근 선생께서 박물관에 놀러오셨다가 제가 수집한 자료를 보고는 깜짝 놀라시며 책으로 내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펴낸 것이 ‘고려청자편 문양집’이었어요. 그 뒤로 ‘조선백자편 문양집’도 내고. 복사기도 없던 시절이라 전부 일일이 그리고 다듬어서 펴낸 거라 5~6년에 걸린 작업을 했었죠.“
 
“그 후에 ‘한국문양사’라는 책을 썼어요. 꼬박 10년이 걸렸습니다. 방대하고 희귀한 자료에 처음에는 큰 출판사에서 욕심을 냈지만 잘 안됐어요. 그렇게 출판사 찾는 데만 2~3년 걸렸어요. 자료가 하도 광범위하다보니 출판사에서도 굉장히 어렵게 작업을 했죠. 출판사에서 편집진을 아예 새로 뽑아서 이 작업에만 몰두했을 정도니까요. 분량이 너무 많아지니깐 조선시대 문양은 넣지도 못 했어요. 나중에 펴내기로 했는데, 그게 또 잘 안되더라고요.(웃음)”
 
- 그 전에는 문양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었나요?
 
“없었어요. 저 이후에도 거의 없어요. 제가 박물관에 있을 때 미술과 직원이 7~8명 정도였는데 각자 불상, 도자기 등 분야을 선택해 연구를 했는데, 제가 택한 문양은 어떤 장르에도 속해있지 않았어요. 제가 문양을 연구한 뒤로 ‘문양사’가 처음 생겼어요. 홍대, 숙대, 명지대, 단국대 등 몇 군데 대학에 문양사 수업이 생기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생겨났죠.”
 

▲ 임영주 [사진=양문숙 기자]


■ 문화재 전문위원이 되다
 
박물관에 있으면서 문양사를 정립한 임영주는 본격적으로 문양사를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대학교수를 위해 박물관을 나온 임영주. 그러나 그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았다. 이번에는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서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고, 그렇게 그는 전문위원이 됐다.
 
박물관장, 교수, 학예관, 전문위원 등 다양한 직함을 지닌 임영주가 지금에와서 돌이켜볼 때 가장 즐거웠던 때로 꼽은 것이 바로 문화재관리국 전문위원 당시였다.
 
“문화재관리국에 잠시만 있다가 교수를 하려고 했는데, 막상 일하다보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문화재관리국에서는 건축물을 담당했어요. 단청을 전공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죠. 우리 아버지께서 끊어지던 단청의 맥을 이어서 하시면서 책도 많이 내셨거든요. 그러니 저도 어려서부터 아버지 밑에서 많이 봐왔고, 단청에 대해 좀 아니깐 단청을 맡을 사람이 저뿐이었던 거죠. 그렇게 단청 전문가가 되어 전국에 있는 단청을 다 손보러 다녔어요. 건축문화재 지정도 하고, 보존 공사 등을 지휘하며 다녔죠.”
 
- 우리 단청의 유래는 언제부터인지.
 
“단청의 기원은 고구려 벽화라고 볼 수도 있어요. ‘단청’은 삼국시대부터 발달했고요. 주변에 중국이나 일본이랑 비교해도 우리나라가 일찍 발달했어요. 지리, 환경 등 모든 면에서 봤을 때 중국은 문화변동이 너무 크다보니 종교도 다양할 뿐 아니라, 지역적인 문화의 특성도 달라서 오히려 단청이 퇴보했어요. 특징이 있다고 하더라고 한국 만큼 뚜렷하지가 않아요. 우리나라 단청은 줄곧 시대마다 발전을 해왔어요.”
 
- 단청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와 쇠퇴한 시기는 언제인가요?
 
“불교가 왕성할 때 단청도 활발했습니다. 그러다 조선시대 유교가 자리 잡으면서 쇠퇴했죠.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수준 높은 그림문화가 단절되었던 겁니다. 그랬던 것이 조선 후기에 몇몇 사찰에서 간신히 살아나긴 했어요. 그렇지만 훌륭한 단청에서 변천이 된 거예요. 더군다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 취향에 맞는 건축문화가 들어오면서 많이 변질되기도 했고요.”
 
- 우리나라 문화재 중 특히 아름다운 단청을 볼 수 있는 문화재를 꼽자면.
 
“많아요. 우리나라 고건축에서 가장 고격하게 남아있는 것이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무위사의 벽화, 화엄사 등 몇몇 고려풍의 단청이 남아있는 곳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단청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수덕사 대웅전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은 보수를 하면서 속 안에서 찾아낸 단청이 있는데, 아주 수준 높은 단청을 엿볼 수 있어요. 무의사 벽화는 고려시대 아주 좋은 채색을 볼 수 있어요. 요즘 보는 문화재 채색하고는 급이 다를 아주 고격한 채색과 문양을 볼 수 있습니다.”
 

▲ 임영주 [사진=양문숙 기자]


■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현재 임영주는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의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사실 이 협회는 임영주의 주도아래 설립된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8년 세계 최초로 열린 세계무형문화재엑스포를 준비하던 임영주는 우리나라 무형문화재의 문제를 직시하게 된다.
 
“현재 문화재 제도가 2개가 있어요. 문화재청에서 지정하는 중요무형문화재와 각 시도에서 지정하는 시‧도 무형문화재. 엑스포를 준비하면서 제도가 다른 문화재 간에 갈등이 있더라고요. 사실 실력만 본다면 백지 한 장 차이로 모두 그 실력들이 뛰어나지만, 중요무형문화재에만 혜택이 많았던 거죠. 중요무형문화재는 지원도 받고, 그들만의 협회도 탄탄하게 있는 반면 시도무형문화재는 지원도 없고, 협회도 없었죠.”
 
“그러던 중에 몇 년간 전국의 무형문화재를 아우르는 협회를 설립하려던 분들이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 때를 계기로 협회 설립을 위해 노력한 것이죠.”
 
- 협회 설립, 무엇이 어려웠나요?
 
“몇 년간 협회 설립을 위해 찾아갔던 곳이 문화재청이었어요. 저도 부탁을 받고는 문화재청에 찾아갔죠. 그런데 사실 문화재청은 이미 중요무형문화재를 지정해 지원‧관리하고 있으니 새로운 협회를 설립해 지원해 주는 것이 어려웠던 거죠. 그래서 외교통상부와 문화체육관광부로 시선을 돌렸고,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협회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 협회 운영은 힘든 것이 없는지.
 
“협회를 유지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에요. 지방문화재들이 다 흩어져 있기 때문에 친목회 정도로는 유지가 쉬운데, 함께 일을 꾸리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협회 설립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내진 못 했지만, 협회로써 마땅히 인정받을 일들을 해서 지원도 많이 받고 싶어요.”
 
- 한국전통문화예술교류협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세계 공예가협회에 가입하고 싶어요. 현재 세계 공예가 협회에 우리나라만 빠져있거든요. 협회에 가입하게 되면 매년 회원국을 돌면서 전시를 개최할 수 있어요. 그 전에도 협회에서 우리나라에 초청 공문을 받았는데, 엉뚱한 곳으로 그 공문이 갔고, 현대 공예하는 사람들이 끼면서 허가를 받지 못 했거든요. 저도 그 사실을 알고 현대공예와 전통공예를 합치려고 노력했으나, 잘 안됐어요. 이제는 한국전통문화예술교류협회로 세계 공예가협회에 가입하려 합니다.”

▲ 임영주 [사진=양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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