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장] 최병인 “저승길 안내 ‘꼭두’, 체험 통해 알리고파”

강이슬 기자 입력 : 2013.11.20 09:13 |   수정 : 2014.05.1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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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인 꼭두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꼭두? 생소하다.
 
어렴풋이 머릿속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꼭두의 모습이 떠오르더라도 대충 나무인형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꼭두 명장을 만나기 전에 ‘꼭두’를 알 필요가 있다.
 
‘꼭두’는 우리 전통 장례에 망자를 운구하는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이다. 꼭두로 상여를 장식하는 것은 죽은 망자가 저승길을 편히 또 정확히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주로 사람과 동물 형상을 띈 꼭두로 그 종류가 나뉜다.
 
전통적인 장례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 ‘꼭두’는 더더욱 낯설어지고 있다. 그런 꼭두를 옆에 꼭 끼고 살아가는 이가 바로 최병인이다.
 
과거 ‘목재골목’이라 불릴 정도로 목공소가 즐비했던 거리지만 현재는 많은 목공소가 문을 닫은 서울 중구 을지로에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목공소 ‘한성조각’에서 최병인 명장을 만나고 왔다. 알면 알수록 재밌는 꼭두이야기를 들어보자.
 
▲ 최병인 꼭두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 저승길, 즐겁게 안내해주는 ‘꼭두’
 
“만두의 기원을 아시나요?” ‘꼭두’의 유래를 묻자 되돌아온 질문이다. 중국의 제갈공명이 산 사람의 머리 49개를 제사상에 올리던 야만적인 제사 방식에서 ‘사람의 머리’를 대신하기 위해 사람 머리 모양을 빗대어 만두를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꼭두를 만드는 최병인은 이런 만두의 유래를 말하며 ‘꼭두’의 유래도 이와 비슷하다 설명했다.
 
“오래전 생애 망자를 따랐던 하인 등을 함께 묻던 장례문화가 있었잖아요? 만두와 마찬가지로 산 사람을 대신하기 위해 ‘꼭두 상여’를 만든 것이 시작이라 보고 있어요.”
 
- 쉽게 말해 ‘꼭두’는 무엇인가요.
 
“망자의 저승길을 함께 가는 것이 꼭두에요. 저승 가는 길을 안내해주고, 잡귀도 물리쳐주고, 또 즐겁게 갈 수 있도록 재주도 부리고 음악도 들려주는 것이 바로 꼭두입니다.”
 
- 꼭두의 종류는 어떻게 나뉘나요?
 
“꼭두는 사람, 동물, 상상 속 동물, 식물 등 다양하게 나뉘어요. 일단 사람으로 본다면 잡귀를 물리쳐줄 호위무사들, 길을 안내해줄 시종들, 즐겁게 해줄 악사들 등이 있어요. 호위무사들은 용, 해태, 호랑이 등을 타고 있기도 하고, 악사들은 피리 대금 등 악기를 들고 있죠. 대표적인 동물로는 용과 봉황이 있습니다. 용은 잡귀를 물리쳐주고, 봉황은 망자를 하늘로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봐요. 식물로는 종교적인 의미를 담은 연꽃이 있고요.”
 
“무궁무진한 종류로 꼭두를 만들 수 있어요. 꼭두는 그 시대상을 반영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대식으로 만든 꼭두는 총을 들고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도 있거든요. 현대적인 요소로 얼마든지 혼합해서 만들 수 있는 거죠.”
 
- 꼭두는 언제부터 쓰였습니까.
 
“꼭두의 재료로 쓰이는 나무들은 다른 나무보다 약한 나무를 써서 오래되면 삭아요. 또한 꼭두상여는 장례를 모두 치르고 나서 태우기 때문에, 사실 꼭두의 유래를 정확히 알기는 힘들어요. 현재도 많이 소실되어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는 실정이라 참 아쉬워요. 남아있는 꼭두로만 보자면, 조선시대에 많이 쓰였습니다.”
 
- 상여는 보편적으로 꽃상여(꽃으로 장식한 상여)를 많이 쓰지 않았나요?
 
“꽃보다 꼭두를 만드는 데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에 돈이 있던 지배계층이 주로 꼭두 상여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꼭두들도 지위가 높았던 사람들의 것이고요.”
 
“예외로 공동 상여로 꼭두를 만드는 경우도 있었어요. 마을 단위로 꼭두를 만들어 보관해 놓고,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를 때 마다 사용하고 다시 보관하는 방식에 공동 꼭두를 만들기도 했었죠. 대신 아무래도 공동 꼭두는 개인 꼭두 보다 화려하진 못 했습니다.”
 
▲ 최병인 꼭두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 40년 목조각 외길인생
 
전라남도 영암이 고향인 최병인은 청년기에 이웃집 아저씨의 소개로 서울에 한 공방에 취직을 하게 된 것이 목조각과의 첫 만남이다. 그것이 1974년이었다. 그가 목조각과 함께한 시간이 무려 40년이다.
 
“학창시절에 그림에 소질이 꽤 있었어요. 그림을 한 번 그리면 누가 옆에서 불러도 전혀 모를 정도로 집중을 하곤 했거든요.(웃음) 나름 예술 쪽이 저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시작한 목조각 일이 참 재밌었어요. 조각을 하기 전에 도안을 그리는데, 조각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재밌었죠.(웃음)”
 
- 처음 목조각을 배우실 때, 어땠나요?
 
“사실 그때는 ‘공방’이란 개념이 별로 없었어요. 그냥 ‘목조각집’이라 불렸죠. 공방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수업을 받는 식은 아니었죠. 주로 조각하는 일을 했는데,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도안을 그리던 분 뒤에서 눈대중으로 배웠죠. 잘 그린 도안들은 복사하면서 그려보기도 했어요.”
 
- 처음 목조각을 배웠을 때와 현재를 비교해본다면.
 
“제가 배우던 70년대는 한창 경제가 살아날 때라서 일자리도 많았고, 사업도 엄청 잘됐어요. 뭐 저는 봉급 받고 일하던 직원이라 휴일과 봉급은 적었지만, 그래도 참 재밌고 행복하게 일했었죠. 그때에 비하면 지금 시장은 정말 많이 죽었죠. 그래도 어려운 시기 견디고 나니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어요.”
 
- 40여 년간 한 비결이 무엇인가요?
 
“주위에서도 어떻게 40년 간 했냐고 물어봐요. 오래한다는 건, 그냥 하는 거예요.(웃음) 그냥 하다보니 어느새 40년이 흘렀네요. 지금 공방에 함께 있는 친구도 목조각을 처음 배우던 시절에 만나 40여 년간 같이 조각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약삭빠르지 못 해서 다른 길을 못 가고 있는 거죠.(웃음)”
 
- 그래도 40년간 할 수 있었던 원동력 하나를 꼽자면.
 
“좋아서 했기 때문이죠. 스스로가 좋아하니까 지속할 수 있었던 거죠. 좋아하지 않고 억지로 하라고 하면 아마 하루도 제대로 못 했을 거예요.”
 
▲ 최병인 꼭두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 알면 알수록, 하면 할수록 재밌는 ‘꼭두’
 
- 꼭두는 어떻게 만들기 시작했나요?
 
“민속박물관에서 우연히 꼭두 상여를 보게 됐는데, 정말 멋있었어요. 보존 상태도 좋았고요. 특히 그 꼭두가 남달랐던 이유는 저와 같은 전주 최 가(家)가 쓰다가 기증한 상여였기 때문이었어요. 그 때부터 꼭두에 매력에 매료되어 틈나는 대로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어요. 의뢰받아 만드는 목조각과 다르게 꼭두는 순수하게 제가 좋아서 만드는 것이죠.”
 
- 꼭두 하나 만드는데 작업 소요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하나만 가지고 딱 이야기 할 순 없어요. 제가 만들고 싶은 꼭두 여러 개를 틈나는 대로 동시에 만들거든요. 한개씩 작업하는 것이 아니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말할 순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2~3일에 하나씩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 꼭두를 만들 때는 주로 어떤 나무를 사용합니까.
 
“주로 적송과 은행나무를 많이 사용합니다. 건축재료로도 주로 쓰이는 적송은 나무가 아주 부드럽고 칼을 잘 받아요. 또 은행나무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나무라 많이 사용하죠. 그 전에는 피나무를 많이 썼고요.”
 
- 요새는 왜 피나무를 안 쓰나요.
 
“피나무로 바둑판을 만들면 아주 고급 바둑판이 되는데, 예전에 바둑판 만든다고 다 베어서 지금은 거의 없어서, 못 쓰는 거죠.”
 
- 직접 만드신 꼭두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자면.
 
“다 좋아요.(웃음) 천경자 선생이 ‘어떤 작품이던 간에, 다 자기새끼라서 아픔으로 낳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똑같아요. 크기가 작건 크건, 화려하건 그렇지 않건 다 또 같이 애착이 가는 제 새끼들입니다.”
 
- 공예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공예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텐데, ‘인성’이 가장 중요해요. 나보다는 남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도 간혹 있는 것 같아요. 인성이 좋지 않으면 조각 자체를 잘 할 수가 없어요.(웃음)”
 
- 조각에도 조각가에 인성이 묻어나나요?
 
“그럼요. 옛날 물건들을 재현한 것들이 있는데, 만들다 보면 그 옛날에 이 분이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만들었겠구나가 다 느껴져요. 그리고 칼질을 어떻게 했는지 보더라도 만든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죠. 정확히는 아니지만 느낌으로 느껴져요. 참 재밌죠?(웃음)”
 
▲ 최병인 꼭두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 꼭두를 살리자!
 
전통 분야가 힘들다고 하지만, 그 중 실생활용품이 아닌 장례문화 속 전통공예인 꼭두는 더욱 힘들어하고 있다. 상여를 사용하는 전통 장례문화가 사라지면서 꼭두는 물론 상여도 점점 현대인에게서 잊혀져 가고 있다. 전통 장례가 사라져 버린 현재, 꼭두를 살릴 방안은 없을까?
 
- 꼭두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꼭두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전통장례가 사라진 지금은 체험을 통해 꼭두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 고군 벽화에 나오는 인물상이나 기물들을 꼭두로 전부 만들 계획을 갖고 있어요. 그 다음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용으로도 만들 거예요. 학생들과 함께 꼭두로 유물을 만드는 체험을 통해 꼭두도 알리고, 우리 역사 공부도 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꼭두 상여를 만들어서 임사체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옛날 방식 그대로 상여를 들어보기도 하고, 상여 소리도 내보기도 하고. 그런 체험을 통해 꼭두를 알리는 것은 물론 죽음을 체험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도 갖는 거죠. 또 외국인에게는 이러한 체험이 깊은 생각을 나누는 것과 동시에 우리 전통 문화도 알릴 수 있으니, 아주 유익한 체험이 될거라 생각해요. 정말 꼭 해보고 싶어요.”
▲ 최병인 꼭두 명장 [사진=양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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