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 에그아트] 잊지 말아 주세요(Don't Forget to Remember)

입력 : 2013.08.28 08:10 |   수정 : 2013.10.1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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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 : 레아알 (Rhea Egg) 과 거위알


묵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책상과 책꽂이를 정리하던 어느 날,  노트 속에 곱게 접혀있던 후배의 손 편지를 발견하면서 저의 기억은 과거로 날아갑니다.

오래전 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유난히도 남학생이 많았던 우리 학과에서  말없이 성실함을 보여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렴풋한 수줍은 미소를 떠올려보지만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단지 희미한 형상만이 그림자처럼 생각납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면서 어렵게 학교를 다녔던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사무실에 찾아와 서툴게 포장된 선물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박스를 열어보니  정성들여 쓴 편지와 함께 아주 낡은  권투 글러브가 나왔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조교님
생일 축하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더욱더 사랑받고 존경받는 분이 되세요.  건강하시구요.
김 성환(올림)
글러브는 제가 중3때 쓰던 것입니다.


여기 저기 찢어지고 색마저도 바랜 빨간 글러브였습니다. 의아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니 자신의 어렸을 적 꿈이 권투선수였고 아마추어 선수로도 잠시 활동했었다는 경력을 이야기 하면서 이 글러브는 그가 첫 번째로 사용했던 의미 있는 글러브라고 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운동을 계속 할 수 없었다면서 어색한 웃음 보였던 맑은 눈동자가 기억납니다. 제가 특별히 고맙게 해준 것도 없었는데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 중 가장 소중한 것을 저에게 꼭 주고 싶었었나 봅니다. 그 후배의 정성스런 마음을 받아 글러브는 1년 동안 사무실 책상 앞쪽 벽에 걸려 모든 학생들에게 그 사연을 전했습니다.

이듬해 저는 결혼과 함께 갑자기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떠나기 전 저보다도 그 학생에게  무척 소중했던  글러브를 돌려주고 싶어 연락을 취했는데 방학 중이라 연결이 되지 않았고.. 그렇게 아무런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후배의 일생에 가장 소중한 물건을 꼭 돌려주었어야 했는데 확실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저의 행동이 무척 후회가 됩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시간으로 돌아가 항상 가슴 한편에 응어리진 기억으로 남아있는 상황을 돌려놓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그때 그  남학생을 찾아서 더 값진 선물로 보답해 주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빛나는 다이아몬드보다도, 아름다운 꽃보다도 더 값진 선물로서 기억되는 낡은 권투글러브입니다.  불현듯 과거의 일상에 묻혀있던 소중한 추억과 더불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 * *

소중한 기억들은 내 지나온 삶을 연결지어주는 보석과도 같은 발자취인 듯합니다. 내 인생의 추억의 상자를 열면 우린 모두 삶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입니다.

위 사연은 2006년도에 출간된 저의 첫 번째 에그아트 화보집에 작품과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책이 출판된 뒤에 저의 작품의 모티브가 되고 주인공이 되어 주었던 분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었기에 여러 경로를 통해 이 후배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수소문해 보았습니다.  시간은 걸렸지만 잠시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 직접 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 보고 싶다는 제안에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며 지금보다는 더 안정이 된 후 멋진 모습으로 뵙고 싶다는 후배의 말을 들고 화보집만 우편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부인과 함께 안산 쪽에서 작은 사업을 시작했고 주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그 후배를 결국엔 만나보지 못하고 저도 곧 외국으로 출국해야 했고 그 후로도 장기간 외국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지금쯤은 안정적인 기반위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있기를 기원하며 19살 청년이 보여주었던 그 순수한 마음을 모티브로 이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어느 순간 찾아와 소중한 추억을 주고 간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 Don't Forget to Remember는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헬레나 김 주 (Helena Kim Ju)
뉴질랜드 에그아트 재단 이사
한국공예예술가협회 상임이사
Institute of Helena Egg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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