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 에그아트] 엘리자베스 1세, 대영제국을 만들다

입력 : 2013.06.18 08:42 |   수정 : 2013.10.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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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 : 타조알, 스와로브스키


역대 여왕이 그녀의 국민에게 했던 것처럼
나도 나의 국민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여왕이 될 것입니다.

-Queen of England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지난 천년동안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가장 영향력 있는, 가장 영감을 주는 지도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마도 모든 면을 가장 잘하는 지도자였을 것이다.”   

-1999. 4월 뉴욕 타임즈

 
엘리자베스는 1533년 9월 7일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궁에서 태어났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왕 헨리 8세이고 어머니는 헨리의 두 번째 부인인 앤 블린이다.

헨리 8세는 에스파냐의 공주였던 캐서린과 결혼 후 메리 1세를 낳았지만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이 없음을 고민했고, 결국은 캐서린과 이혼하고 당시 젊고 쾌활한 궁녀였던 앤 불린과 혼인하려 한다.  그러나 교황 클레멘스 7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결국 이혼을 금지하는 로마 카톨릭과 결별하고 영국 국교회를 창설해 앤 불린과 결혼한다.

하지만 헨리 8세는 앤 불린과의 사이에서도 딸인 엘리자베스만 갖게 되고 아들을 얻지 못하자  3년 뒤 앤 불린이 사내아이를 사산한 뒤  죄를 뒤집어 씌워 참수해 버린다. 이후 세 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 에게 태어난 왕자 에드워드가 10살의 나이로 왕에 오르지만 몇 년 후 병으로 죽고  헨리 8세의 첫째 딸 메리가 영국의 여왕이 된다.

메리 1세의 치세 동안 엘리자베스는 런던탑에 갇히고,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는 등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엘리자베스는 어떠한 경우에도 냉정을 잃지 않고  또 한명의 왕위계승자로서 그 처참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위한 생존을 한다.

메리 1세가 여왕으로 즉위한 지 5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1558년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할 때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뒤쳐진 혼돈의 나라였다. 스코틀랜드와의 끊임없는 분규, 스페인 및 프랑스와 지속적인 대립, 막대한 빚으로 바닥난 국고,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신·구교 간의 종교대립으로 사회 혼란은 극에 달할 때였다.  하지만 반세기 후인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45년간의 통치를 마치고 서거했을 때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계역사에 남을 위대한 제국이 되었다.

“나 엘리자베스 1세는 대영제국과 결혼하노라”

이는 그녀가 남긴 유명한 말로,  ‘강한 영국’ 그리고 절대적 왕권을 유지하고 수호하기 위해 개인적인 애정을 쏟을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통과 원칙을 중시하는 군주였지만 기존의 형식과 관습을 과감하게 벗어던졌던 그녀는 많은 프로포즈를 받았지만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튜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인 엘리자베스는 칠십 살에, 성공적인 사십 사년의 통치를 끝내고 잠들었다.

영국 역사 속 위대한 지도자이며 영광의 여왕으로 기억되고 있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 헌정합니다. 


 * * *

“이 자리에 더 강하고 지혜로운 왕들이 앉아있었고 앞으로 있을 수도 있지만, 당신들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  엘리자베스 1세의 마지막 의회 방문 연설중 -


헬레나 김 주 (Helena Kim Ju)

뉴질랜드 에그아트 재단 이사
한국공예예술가협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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