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이상봉 디자이너 “한글 의상은 나의 정체성”
윤한슬 기자 | 기사작성 : 2013-04-10 08:20   (기사수정: 2014-02-0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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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e Sang Bong 부티크에서 이상봉 디자이너를 만났다. [사진=강지연 기자]
(뉴스투데이=윤한슬 기자) “제가 한글 디자인 의상을 하기 전에도 한국적인 의상들이 많았어요. 백의민족을 콘셉트로 한다던가 태극기로 의상을 만들기도 했죠. 잊고 살았었는데 이미 86년도에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시키겠다는 인터뷰도 했었어요. 이런 정서가 내게 끊임없이 내재돼있었던 것 같아요. 제 정체성인 거죠.”

이상봉 디자이너는 명실공히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패션디자이너로 국·내외의 인정을 받고 있다. 특히나 한글 의상과 ‘한국의 미’를 모티프로 한 의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홍보대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서울 선릉 부근에 위치한 이상봉 부티크에서 이상봉 디자이너를 만났다. 서울패션위크가 갓 끝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 부티크에는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의상들이 고스란히 진열돼 있었다. 책 발간에 뒤이어 강연과 서울패션위크 컬렉션 등을 연달아 소화하느라 컨디션 난조를 보인 그는 밀려오는 인터뷰 요청에 하루에도 3개의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디자이너, 그 배경엔 특별한 어린시절이 있었을 것 같아요.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중·고등학생 때까지 ‘학교-집’만 반복했으니까요. 그렇다고 모범생은 아니었는데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그 대신 꿈이 많았어요. 혼자 달을 보거나 뒷동산에서 혼자있는 시간을 가지며 상상도 많이 하고…. 감성도 풍부했고 문예활동에서 두각을 보였어요. 미술이나 음악시간에 항상 반 대표였죠. 전문적으로 예능을 배운적이 없고, 부모님이 이 분야에 조예가 깊으신 것도 아니었는데 재능이 있었나봐요.”

▲ Lie Sang Bong의 이상봉 디자이너 [사진=강지연 기자]

-언제부터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꾸셨나요? 초등학생 때 부터였나요?

“저는 어렸을 때 음악이나 미술 쪽으로 꿈을 꿨었어요. 그러나 꿈이 계속 바뀌었죠. 초등학생 때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절밥을 먹은 적이 있어요. 그때 절밥이 너무 맛있어서 스님이 되겠다고 했었죠.(웃음) 그 이후 중학교 때는 ‘오페라를 해볼까?’해서 예고시험도 봤었죠. 물론 떨어졌지만요.”

“그리고 고등학생 때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서울예대에 들어가게 됐어요. 대학가서는 소리지르고 무대에서 뛰노는 연극이 너무 신기해서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극부에 들었고, 계속 연극을 했었는데 정작 연극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도망갔어요. 남앞에 선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다라고요. 그 이후로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거죠.”

-왜 하필 패션 디자이너를 선택하신 건가요?

“친구가 늦게까지 바느질하는 걸 자주 봤었어요. 그 친구와는 ‘먹고는 사니?’ ‘응, 먹고는 살아’, ‘재밌어?’. ‘응, 재밌어’ 이런 대화를 자주 나눴었죠. 그 영향 때문에 연극을 그만둔 이후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수선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학원도 다녔었고,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연구원도 다녔었어요. 제가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고, 돌파구가 없다는 생각에 정말 옷에만 몰두했어요. 사람도 안 만나고 신문도 안 보고, 세상과 단절하면서 옷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온거죠.”

-처음부터 이 분야에 재능이 있으셨나요?

“남들보다 뛰어났던 건 아닌 거 같아요. 대신 정말 열심히 했죠. 제가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이것밖엔 없었거든요. 연극을 포기한 것이 너무나 충격이 커서 다시 다른 일을 찾는다는 걸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재능이나 적성에 상관없이 꾸준히 할 수 밖에 없었어요.”

▲ Lie Sang Bong의 이상봉 디자이너 [사진=강지연 기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연극을 다시 선택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그럴 수도 있죠. 만약 제가 그때 도망가지 않고 견뎌냈다면 저는 계속 그 계통에 있었을테니까요. 연극배우가 됐던 기획을 했던 글을 썼던…. 지금도 죽기 전에는 그 당시 마무리하지 못한 것(연극)을 마무리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무대 위에서 저를 채워보고 싶고 저를 드러내고 싶고, 제가 도망감으로 인해 생긴 그 상처를 치유하고 싶고…. 하지만 지금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어차피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고요.

-이상봉 디자이너의 정확한 나이는 그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어요. 나이가 37살에서 멈췄다고 들었어요.

“신인 디자이너 때는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디자이너를 하면서 정말 힘든 시기가 찾아왔어요. ‘또 도망가야 하나, 이 직업을 포기해야 하나’라고 생각한 시기가 37살 때 였어요. 그 때 생각했죠. ‘그래, 나는 못났으니까 나를 사랑하자’라고요. 원점으로 돌아가기로 한 거에요. 개인적으로 홀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3과 7을 더하면 뒷자리가 0이 되요. 이것은 곳 원점을 의미하죠. 그래서 그때 나이를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게 됐어요.

-85년에 Lie Sang Bong 브랜드를 런칭하셨는데, 본인의 이름으로 브랜드 명칭을 정한 이유가 있나요?

“저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었어요. 제 브랜드를 런칭하기 전에 기성복 분야에 있다가  제 브랜드를 처음 한 것이라 ‘내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그 당시만 해도 자기 이름을 걸고 브랜드는 하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특히나 저는 성을 Lee도 아닌 Lie를 써서 욕을 많이 먹었어요. ‘왜 이걸 썼냐, 당장 바꿔라’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죠. 하지만 저는 세상에서 그 누구도 안 쓰는 것을 쓰고 싶었고, 나만의 것을 쓰고 싶어서 Lie라고 썼어요. 고집이 있던거죠.”

 
▲ 이상봉 디자이너의 명함

-명함이 굉장히 독특해요. 작은 편지 봉투를 보는 기분이에요.

“명함에 제 마음을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봉투형태로 만든거죠. 이 명함도 85년도에 사용하던 것 그대로에요. 물론 명함에 있는 점자나 주소 등 이정도만 바뀌고 디자인과 색상은 변하지 않았어요. 또한 원래는 오리지널이라는 문구가 이름과 함께 있었는데 나중에 그걸 뺐어요. 오리지널은 ‘하나의, 유일한’ 그런 뜻인데 저 역시도 누군가의 것을 보고 영감을 받기 때문에 부끄럽더라고요.(웃음)” 

-주로 여성복만을 디자인하세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 런칭했을 그 당시는 남성복은 양복밖에 없는 시대였어요. 남성복 디자이너 자체가 별로 없었죠. 물론 나중에 장광효 디자이너 등이 남성복을 했지 그 전에 남성복 디자이너라 함은 양복점 아저씨가 전부였어요.(웃음) 그래서 자연스레 여성복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거죠. 하지만 컬렉션 무대에는 남성복도 선보여요. ‘전통미’를 여성복뿐만 아니라 남성복으로도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남성이 여성의 옷을 디자인 하는 것이 어렵진 않나요?

“제가 남자라서 여성복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여성(디자이너)들은 스스로 여성복을 만들고 거울보면서 빠져들고…. 하지만 저는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잖아요. 저는 제가 남자여서 제 스타일을 만들지 않았기에 여태까지 여성복을 디자인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처음에는 여성의 스타일을 맞춘다기보다 제가 하고 싶은 스타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여자가 입고 싶은 스타일은 뭘까’라고 생각하긴 하죠.”
▲ 이상봉 디자이너의 2013 F/W 서울패션위크 서울컬렉션 [사진=강지연 기자]

-2013 F/W 서울패션위크 서울컬렉션의 콘셉트가 굉장히 독특했던 것 같아요. 이번 컬렉션에 대해 소개부탁드려요.

“이번 컬렉션의 주제는 ‘창살에 비치는 달’이었어요. 이 주제는 ‘단청’을 주제로 한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데, 한옥 건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문이잖아요. 그래서 창살에 비치는 달을 주제로 잡았죠. 창 밖의 모습이 1부라면 2부에 나온 드레스는 방안의 모습이었어요. 달이 방안에 젖어드는 모습을 그린거죠. 모델들이 드레스와 함께 매치한 모자는 하나의 달을 표현했던 것이에요. 실질적으로 외국에 많은 문양이 있지만 우리의 문양이 기하학적이기도 하고 다양해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컬렉션의 콘셉트는 어떻게 정하시나요?

“우연히 떠오를 때도 있긴 하지만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저는 이미 ‘자수, 가구, 한복, 자개, 민화’ 등 많은 주제를 다뤘어요. 그래서 컬렉션을 할 때마다 ‘이제 뭐를 해야하지?’라는 고민을 해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콘셉트를 찾긴 하지만 잘 안될때도 많죠. 그럴 때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조언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 Lie Sang Bong의 이상봉 디자이너 [사진=강지연 기자]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데, 한국적인 의상에 대해 해외에서의 반응은 어떤가요?

“반응이 안 좋았다면 벌써 포기했겠죠. 제가 아무리 애국자여도 옷이 안 팔리면 계속 한국적인 의상을 선보일 수가 없어요. 그 옷을 사는 사람들이 있고, 한국에 호기심을 가지니까 제가 계속 할 수 있는 거죠. 제가 한글 디자인 의상을 처음 선보였을 때 인터뷰를 할 때마다 ‘외국인들이 한글 옷 좋아해요? 한글 옷 팔아본 적 있어요?’ 라는 질문을 꼭 받았어요. 외국에서 좋은 반응과 응원이 없었다면 저는 한글 의상 못했을 거에요.”

“저도 처음엔 의문을 가졌었어요. 외국인들에게 ‘이게 정말 좋아? 예뻐? 정말 괜찮아?’ 이렇게 물어봤었어요. 사실 그들은 이것이 글자인지도 몰랐는데 신비롭고 아름답다고 말하더라고요. 파리에서 전시회를 했을 때 글자로 가방도 만들고 구두도 만들었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다 아름답다고 극찬을 해줬었어요. 그래서 자신감과 확신이 생겼죠.”

-세계적으로 ‘한글 의상’이 인정받았는데, 국내에서의 반응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이야 그렇지만 오히려 처음엔 국내에서 한글 의상을 못 팔았었어요. ‘이상봉은 한글 의상 덕분에 때돈 벌었겠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오히려 초창기엔 한글 의상 때문에 적자 봤었어요. 한글 의상 만들어놓고 안 팔려서 계속 쌓아두고 그랬죠. 하지만 나중에 해외에서 한글 의상을 발표하고 전시한 걸 보시고 인정을 해주셨죠.”
▲ 이상봉 디자이너의 패션 이즈 패션

-이번에 책 ‘패션 이즈 패션(fashion is passion)’을 발간하셨어요. 책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릴게요.

“제가 칼럼을 쓰면서 느꼈던 것들, 생각했던 것들을 담아낸 책이에요. 패션이 이젠 일반적인 요소가 됐어요. 인생도 디자인이고… 모든 것이 디자인이에요. 이런 것에 대한 얘기도 담겨 있고요. 제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고, 어떤 것이 저한테 소중한 것인지를 책에 담으려고 했어요. 한마디로 저의 진실, 저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한 책이에요.”

-책을 내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감회가 새로웠죠. 소설이나 시를 쓰고 싶긴 했었지만 한 때 작가를 꿈꿨으니까요. 하지만 작가를 꿈꿨었기에 책을 발간하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책을 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 몰랐어요.”

▲ Lie Sang Bong의 이상봉 디자이너 [사진=강지연 기자]

-책에 향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있어요. 디올(Dior) 이나 샤넬(Chanel)처럼 향수를 런칭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향수를 런칭하겠다는 꿈을 꾼지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그러니 앞으로도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요. 저는 향수에 대한 추억이 많고, 향수는 패션의 완성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향수는 냄새만으로도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게 하죠. 저만해도 제가 출근할 때 5층에 있는 직원들이 제 향수 냄새를 맡고 출근한 것을 알아차리기도 해요. 때문에 언젠가 향수를 꼭 하고 싶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떤 디자이너로 남고 싶으신가요?

“그저 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디자이너가 있었어’라고요. 물론 제 브랜드가 남아있다면 더욱 좋겠지만요. 후세에 어떻게 평가되어지는 것 까지는 욕심이 없어요. 그냥 열심히 할 뿐.”

-그동안 굉장히 많은 것을 이루셨는데, 또다른 목표가 있으신가요?

“목표는 끊임없이 생기죠. 인간의 목표가 어떻게 완성이 될 수 있겠어요. 다만 그 꿈을 쫓아가는 과정이 아름다운 거지. 저는 아직 꿈을 쫓고 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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